임기 내내 '공공성' 강조했건만.. '국민 농락' 오점 찍나

나기천 입력 2021. 3. 4. 06:03 수정 2021. 3. 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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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강조 부동산 정책 치명상.. '변창흠표' 대책 표류 위기
3기 신도시 전체 투기 조사
다음주까지 토지거래 기초조사 완료
6개 신도시 전체 규모 4545만㎡ 달해
사전 투기 더 드러날 가능성 높아
"지자체 공무원 등 조사 확대" 지적도
"사실 땐 도덕적해이 극치.. 신뢰 상실"
2·4 대책·3기 신도시 추진 난항 우려
3일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 있다.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 의혹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유례 없는 정부합동조사단을 통한 범정부 차원의 신도시 입지 전체 대상 토지거래현황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의혹 제기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의혹이 신규 택지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적나라하게 보였다는 점에서 심각한 민심 이반과 부동산정책 동력 상실이 우려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가 임기 내내 강조한 ‘공공성’ 우선 개발 정책도 치명상을 입어 3기 신도시 조성과 2·4 주택공급대책 후속 사업 등의 난항이 우려된다.

3일 국토교통부는 국무총리실과 합동으로 광명·시흥을 포함해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토지거래현황 등을 전수조사한다고 밝혔다. 국토부와 LH, 관계 공공기관의 관련부서 직원 및 가족이 대상이다. 국토부는 다음주까지 기초조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조사 대상인 남양주 왕숙과 고양 창릉 등 6개 신도시 규모를 모두 합치면 4545만㎡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 29만㎡의 156배 규모다. 참여연대는 전날 광명·시흥지구에서 무작위로 뽑은 10개 필지에서 14명(국토부 조사 13명)의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전체 신도시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얼마나 더 많은 유관 공직자나 가족 명의의 토지 소유분이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건은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나 추후 추가 적발될 공직자 또는 유관기관 종사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구입했느냐다. 택지지구가 지정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이를 이용해 땅 등을 샀다면 처벌 대상이다. 광명·시흥 지구의 경우 신도시로 지정되는 절차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게 올해 초부터라 특히나 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가 첨예한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정부나 소속 공기업·기관뿐만 아니라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공기업 소속 직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 신도시의 경우 입지가 확정되기 훨씬 전부터 후보지로 거론되며 시청 공무원들이 땅을 사들인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경기 성남과 과천, 서울 용산정비창 등 중소규모이지만 알짜 부지도 신규 택지로 많이 지정됐는데 이들 지역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전망이다.
곤혹스러운 卞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 참석해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변창흠 국토부 장관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한 시기가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한 기간과 상당 부분 겹쳐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이유로 이날 변 장관은 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이와 관련한 경찰 조사가 진행될지도 관심이다.
같은 맥락에서 문 대통령이 ‘변창흠표 공급대책’이라고 힘을 실었던 2·4대책이 제대로 된 추진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2·4대책은 LH 등 공공기관을 통한 도시정비사업 등을 통한 공공성을 강조한 대책이라 이번 투기 의혹이 시장에서의 신뢰 상실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지 주민의 반발로 보상 등이 지체될 경우 조속한 주택공급을 통해 집값 안정의 시그널을 확보하려던 정부 대책이 발목 잡힐 수 있다.
정부는 신뢰 제고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는 우선 신규 택지개발과 관련된 국토부, 공사, 지방공기업 직원은 원칙적으로 거주 목적이 아닌 토지 거래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국토부는 의심사례에 대한 상시 조사 및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위법·부당한 사항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 계획은 관련 법령 정비 등의 시간이 필요해 당장 시행이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전 투기가 사실이라면 일반인이 풍문으로 들어 땅을 산 것이 아니고 부지개발 담당기관 직원이 신도시 후보지에 ‘빨대’를 꽂았으니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며 “당사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이런 사태가 발생한 뿌리를 찾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치된 작물들 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일부가 3기 신도시 택지로 지정되기 전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을 찾은 취재진이 방치된 묘목 등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시흥=연합뉴스
◆野 “고양이에 생선 맡긴 격… 변창흠 고발 검토”

야당은 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건과 관련해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을 요청하며 전방위적 공세를 펼쳤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조사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LH 출신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고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부동산민생 현장 방문 후 기자들에게 “LH 직원들이 사전에 어디가 신도시가 될 거라는 것을 예측했든지, 비밀을 사전에 알았든지 해서 개인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면 일종의 범죄행위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검찰이 철저하게 조사해서 전모가 밝혀지는 것이 정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관련 기관의 전수조사를 비롯해 다른 신도시의 사전투기를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LH 개발 현장에 대해 가급적 전수조사를 통해 직원이나 그 정보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동산을 가졌는지 조사할 계획”이라며 “지금은 부동산들이 전산화돼 있고 직계존비속의 이름만 넣으면 소유 현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당이 상임위를 통해 (관련 자료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도 ‘아주 경악스럽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양당이 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거라 보고 있다”며 민주당의 동참을 압박했다.

사진=뉴시스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문재인정권의 ‘25연속 정책 실패’로 주거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부동산 문제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그런데 ‘공급쇼크’라고 자화자찬한 2·4 부동산대책 이면에 공기업 직원의 사전 땅 투기 의혹이라니 국민들 마음이 어떻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공직자윤리법 위반, 부패방지법 위반의 명백한 범죄이자 부동산 실정에 신음하는 국민 앞에 절대 해선 안 될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며 상임위원회 개최와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즉각적인 상임위 소집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국회 차원에서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며 민주당 측에도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LH와 국토부는 물론 관련 부처와 공무원, 지인·친인척 등에 대한 철저한 공동조사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검찰을 향해선 “이 사건에 대해 즉각 수사에 착수해 달라”고 촉구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힘도 별도의 사법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3일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입구 기념비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진주=연합뉴스
사건 당시 LH 사장이었던 변 장관을 향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들은 “변 장관은 뜬금없이 ‘청렴도를 높이라’는 유체이탈 발언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재임 시절 벌어진 일을 자신의 국토부에 전수조사, LH에 진상조사를 명했다”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고 질타했다. 김은혜 의원은 “정부·여당이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지 않으면 저희는 변 장관이나 의심 가는 사람들에 대해 고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기천·곽은산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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