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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의 사람이야기]靑 일자리 상황판, 생산성 상황판으로 바꿔라

안승찬 입력 2021. 03. 0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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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봄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라 더욱 혹독했던 겨울도 곧 지나가리라. 특히 올해는 잃었던일상과 멈춰버린 세상을 털어내고자 저마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도약의 새봄을 맞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할 듯하다. 코로나가 할퀴고 간 뒤 가까스로 남아 있는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가 동시에 러쉬(rush)하는 그야말로 ‘일자리 빅뱅’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대전의 시작이다.

지금은 치열한 봄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하고 체력을 다져야 할 때다. 쇠 재두루미는 겨울을 나기 위해 해발 8000m 히말라야 산맥을 일년에 두 번 넘는다. 바람만이 넘는다는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선 체질을 바꾸고 힘을 비축한다. 철새도 생존을 위한 처절히 몸부림 치는데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대비한 기본기와 플랜B를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미 OECD 37개국 중 36개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며 속도전과 조기 경제회복 작전이 한창이다. 우리는 이 경제전쟁 경기장에 마지막 주자로 입장했다. 채비가 늦어진 만큼 시간과 격차를 줄이기 위한 스퍼트가 절실하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답은 다시 ‘생산성’이다. 일자리에 생산성이 결여되면 생존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자동차 산업만 보아도 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삶의 공간이 되는 모빌리티 패러다임의 변화로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지만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의 완성차 3사는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시장 점유율이 20%를 넘나들었지만 작년 기준으로는 15.6%로 줄었고 그 자리를 수입차들이 빠르게 메웠다. 문제는 해가 바뀌었지만 위기를 돌파할 동력이 보이지 않는단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이 원인이라고 특정하기 쉽지 않을 만큼 대내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친환경,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업계의 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고 공유차의 확대로 전반적인 판매대수가 준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존폐의 기로에 서게 한 데에는 극심한 노사분규, 친노동 반기업적 규제환경에 따른 생산성 감소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르노그룹 호세 부회장이 부산공장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에는 생산성 악화에 대한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부산공장 제조원가가 스페인 공장의 2배이며 작년 기준 제조원가 점수가 전세계 르노 19개 공장 중 17위에 그쳤다는 부분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회사의 명운이 촌각을 다투는데도 노조는 “작년 한 해 적자로 직원을 사지로 모는 것은 직원을 단순 소모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쟁의권을 발동해서라도 막을 것이라 예고했다. 그게 과연 답일까.

경직된 고용환경, 대립적 노사관계가 불러온 생산성 악화는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HPV)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년 현대차 울산 공장의 대당 투입시간(HPV)가 26.8시간, 르노삼성이 20.86시간, GM군산이 59.31시간에 달했다. 미국의 GM포트웨인이 20.04시간, 스페인의 르노 바야돌리드가 16.24시간을 기록했다. 이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니 본사에서는 물량배정을 줄이고 그에 따라 이익이 줄어든다. 이익이 없어지면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노조는 파업에 들어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자동차 산업 생태계 자체가 고사할지 모른다. 2018년 기준 자동차산업에 직간적접으로 고용된 인원이 국내 총 산업계 고용인원의 7.1%에 해당하는 190만명에 달했다. 2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의 일자리가 달린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었다. 고용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이라는 근원적 치유 없이 고용지표에만 매몰되면 헛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생각만큼 만들어지지 않자 정부는 90만개에 달하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드는 저임금, 단기 일자리라도 만들어서 해결할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 경쟁력을 유지하고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도록 해 양질의 일자리를 지킬지 방향성을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다시 논란이 점화된 ILO 협약 비준 또한 언젠가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지금이 적기인지는 의문이다. 해고자의 노사가입은 노사관계를 더욱 경직시킬 것이고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한 문제인데 이를 예방할 대안도 함께 마련되고 있는 것일까.

노동과 생산성은 국내문제가 아닌 국제문제다. 점점 더 가혹 해지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노사관계 불균형은 기업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킨다. 한쪽 날개만 가지고는 날 수 없다. 기업이 원하는 방향도 듣고, 다듬으며 다른 쪽 날개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루 살고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할 텐가. 기업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는 정치사회적 힘도 필요하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 다는 것을 한마음으로 말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을 넘어 ‘이전백(이십대 전체가 백수)’으로 갈 수 있다. 그냥 두는 것은 책임의 방기 아닌가.

생산성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 과감한 세제, 법률 지원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생산성 향상을 통한 국가경쟁력의 근본적 개선. 이것이 일자리 문제의 해답이다. 청와대에 걸린 일자리 상황판을 생산성 상황판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세상의 진보와 진화는 세상에 대한 체념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체념을 넘어설 때 도달할 수 있다.

이제 또 한 번의 시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강한 국가에 대한 꿈은 없는가. 더 이상 눈물 흘리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안승찬 (ahns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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