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에 '부패완판'으로 맞선 尹.. 중수청 반대 여론전 본격화
중대범죄는 수사·기소 융합 추세"
검사·수사관 30여명과 간담회 가져
중수청 추진에 비판·우려 쏟아져
尹, 반부패수사청 등 대안도 제시
일각선 "與, 대화 창구 모색 여지"
박범계 "무게감 갖고 참고할 것"
“나중에 지능범죄가 창궐하고 국가의 근간을 흔들 때 집이 불탄 것을 알게 될 텐데 그때 가면 늦을 것 같아 걱정이다.” (윤 총장과의 간담회 참석자)
3일 대구고검·지검에서 열린 윤 총장과 직원 간담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이 밀어붙이려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윤 총장 주재로 이날 오후 4시부터 2시간 30분여간 진행된 간담회에는 검사와 수사관 30여명이 참석했다. 윤 총장은 이 자리에서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소가 융합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면서 미국 뉴욕 검찰의 증권범죄 대응 등 해외의 반부패 대응 시스템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윤 총장은 평소 검찰개혁 방향으로 삼은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도 강조했다. 그는 “공정한 검찰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고, 국민의 검찰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힘 있는 자도 원칙대로 처벌해 상대적 약자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이는 헌법상 책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폐지되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후퇴할 것이라는 윤 총장의 우려에 참석자 사이에선 “갑자기 이런 법안이 추진되는 속뜻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날 윤 총장이 여권의 ‘검수완박’에 대응해 작심하고 ‘부패완판’으로 맞불을 놓자, 법조계 안팎에선 ‘윤 총장이 대국민 여론전을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개혁 시즌 2’로 밀어붙이는 중수청 설립이 현실화할 경우 ‘부패가 만연할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국민이 막아주도록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공룡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중수청 설치 법안을 제정할 수 있는 만큼 윤 총장으로선 사실상 여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윤 총장이 이례적으로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수청 설치 움직임을 매섭게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적절치 못한 방식”이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윤 총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검사 생활 처음으로 인터뷰란 것을 해보았는데 대한민국의 공직자로서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검찰제도를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다)”며 “제 경험에 비춰 지금 거론되는 제도들이 얼마나 부정확하게 소개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올바른 설명을 드리는 게 공직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尹 지지·반대세력 ‘팽팽’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검찰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기 위해 방문한 대구검찰청 앞이 윤 총장 지지자들과 반대 시민들이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
하지만 민주당이 윤 총장의 대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여권의 검찰개혁 최종 목표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인데 이들 기관은 수사·기소권을 모두 갖는다. 다만 윤 총장이 직접 구체적인 타협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검찰과 여권 사이에 일종의 대화 창구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날 “검찰 총수께서 하신 말씀이니 상당히 무게감을 갖고 참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여지를 남겼다.
앞서 오후 1시50분쯤 윤 총장을 태운 검은색 제네시스 승용차가 대구지검 앞에 나타나자 청사 주변은 윤 총장 지지자와 반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00여명의 지지자들은 “윤석열! 윤석열!”이란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한쪽에선 “정치 검사 윤석열 탄핵!”“대구에서 물러가라!”는 외침이 나왔다. 급기야 양 측이 한데 엉키면서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기도 했다. 특히, 권영진 대구시장은 예고 없이 대구지검 청사를 찾아 윤 총장에게 꽃다발과 악수를 건네며 “총장님 행보를 응원한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중대범죄수사청을 겨냥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틀 연속 ‘작심발언’에도 청와대는 직접 대응을 자제했다.
전날 ‘차분한 의견 개진’을 주문한 것 외에 특별한 입장 표명을 삼가고 있는 것이다. 윤 총장의 정치적 입지를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다. 속내는 편하지 않다. 불편한 기류가 감지된다. 청와대는 3일 오후 윤 총장이 공개 질의·응답을 통해 여권의 중수청 설치 추진을 강하게 비판한 것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날 내놓은 입장 그대로라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윤 총장에게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라고 전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윤 총장의 언론 인터뷰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 “전날 입장이 지금까지 유효하다”고만 말했다.
청와대의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엔 윤 총장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이 오히려 윤 총장의 존재감을 부각했다는 학습효과 탓이다. 의도적 침묵이다.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변수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윤 총장이 왜 저렇게 직접적으로 나서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향후 정치를 위한 포석 다지기 아니냐는 의미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윤 총장의 행보가 매우 성급하고 부적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계속 작심 발언을 이어간다면 청와대가 직접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과 청와대·법무부를 이어주는 신현수 민정수석의 거취가 청와대 의중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신 수석 거취에 대해 청와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대구=이창수 기자, 이도형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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