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의 죽음, 소수자 차별·폭력 '한국 민낯' 드러냈다

박상휘 기자 2021. 3. 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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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전역 고통 국내 첫 트랜스젠더 군인 '사회적 타살'
성정체성 이유 권리 박탈 '구시대적 생각' 비판 못면해
/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죽더라도 군인으로 죽고싶다던 변희수 전 육군 하사(23)가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 변 전 하사의 죽음은 이 사회 소수자들의 위치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5일 경찰에 따르면, 변 전 하사는 지난 4일 오후 6시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자택에서 119 소방구조대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육군 5기갑여단에서 근무하던 변 전 하사는 2019년 11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1월에는 얼굴을 공개하고 여군으로 계속해서 복무를 하고싶다는 의지를 드러냈으나, 육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강제 전역시켰다.

변 전 하사는 이후 군으로 돌아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강제전역 취소를 위한 인사소청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7월 육군은 해당 요청을 기각했다. 그럼에도 변 전 하사는 멈추지 않았다. 같은해 8월에는 대전지법에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전역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내고 다음달 첫 변론이 잡히기도 했다.

그사이 온라인 공간과 일부 극우 단체에서는 변 전 하사에 대한 수많은 차별과 혐오 표현을 쏟아냈다. '트랜스젠더에게 인권은 없다'는 취지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차별과 성희롱성 발언이 담겨져 있었다. 그에게 내려진 강제전역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지자 차라리 인권위 축소하거나 해체시키자는 댓글마저 달렸다.

그저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겠다는 것만으로도 차별과 혐오가 쏟아진 것이다. 이는 투명인간으로 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사회. 한국 사회는 당연한 것을 꿈꾸는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변 전 하사는 어떠한 제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2019년 12월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등록 성별을 바꿔달라는 청구서를 제출해 판단을 기다리는 중 육군본부로부터 강제전역을 당했다. 육군본부는 판단이 나올때까지 전역 심사를 미뤄달라는 요청을 무시한 것이다. 육군이 제시한 강제 전역 사유는 신체훼손으로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렸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퀴어문화축제를 응원하는 주한미국대사관.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인권위는 육군의 이같은 결정에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심신장애 요건으로 해석해 피해자를 전역 처분했다"며 "변 전 하사의 건강 상태가 ‘현역으로 복무하기 적합하지 아니한 경우’라고 볼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육군은 성전환자를 차별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미국과 캐나다, 벨기에 등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가 인정된 사례가 있는 만큼 공론화 과정과 낡은 시대를 떠나 생각의 전환이 있었어야 한다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BBC에 따르면 전세계에 약 9000명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이스라엘, 볼리비아 등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공개적으로 군복무를 할 수 있다.

AFP는 변 전 하사의 강제 전역 사건을 두고 한국 사회가 성정체성 문제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라고 지적하며 "많은 동성애자와 성전환자가 음지에서 살고 있음에도 다른 아시아국가들보다 LGBT(성소수자) 권리에 덜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외신의 평가대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이고 폭력적이다. 지난 2월 인권위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65.3%가 지난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기간 SNS를 포함한 인터넷(97.1%), 방송·언론(87.3%), 드라마·영화 등 영상매체(76.1%)를 통해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발언과 표현 등을 접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실례로 성전환 수술 뒤 법원에서 성별 정정 허가를 받고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에 2020년 신입생으로 합격한 A씨는 학내 구성원의 반대로 스스로 입학을 포기했다.

A씨는 변 전 하사와 마찬가지로 법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보편타당한 이유없이 정당한 자리를 뺏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 여자대학의 경우 법적으로 성전환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입학도 허가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제주의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였던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숨졌다. 논바이너리(이분법적 성별구분에 속하지 않는 사람) 트랜스젠더 김씨의 마지막 글은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였다.

변 전 하사의 발걸음도 결과적으로는 여기까지였다. 변 전 하사는 전역 처분 이후 자신을 향한 시선과 논란, 행정 소송 준비 등으로 심적 부담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단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선언적 내용의 '차별금지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인권위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민인식조사에선 응답자 10명 중 9명(88.5%)이 ‘차별금지 법제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국회의원들은 기독교계 표심을 우려, 눈치만 보는 실정이다.

다수의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변 전 하사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성소수자단체 트랜스해방전선은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변 전 하사의 용기 있는 선택을 보며 힘을 얻었고 위로받았다”고 밝혔다.

sanghw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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