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선일보

구더기·초파리 벗 삼아 은둔 5년.. 히키코모리가 뒤늦게 찾아낸 행복은

최원우 기자 입력 2021. 03. 06. 14:46 수정 2021. 04. 13. 10:09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최원우의 아무튼 인터뷰]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은둔 생활 시작하지만
결국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어설 용기 얻어

편집자주

어느덧 기자 생활 9년차. 이대로 살면 행복할까 스스로 물었지만,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를 찾아가 봤습니다. 그런 고민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하더군요. 그 교수는 지난번에 이런 고민을 안고 썼던 노숙자와 인터뷰 기사를 봤다면서 “이상하게 힐링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용기를 내 어쩌면 기사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이 글을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인터뷰 대상은 중구난방이지만, 행복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보려고 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정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 히키코모리 청년 17명이 모여 산다는 공동 기숙사를 찾아갔다. 히키코모리는 특별한 정신질환이 없는데도 6개월 넘게 집에서 은둔하는 사람들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집에만 갇혀 지내는 우리 모습이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는 정말 정릉 바로 코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주지부터 사회와 동떨어진 곳에 터를 잡았나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막상 들어가 보니 평범한 하숙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벽 곳곳에 맛집 배달 주소가 적혀 있고, 고양이도 키우고 있었다.

◇구더기·초파리 벗 삼아 은둔생활…눈물 섞인 위로에 일어설 용기 얻어

/최원우 기자 히키코모리 공동기숙사에서 만난 유승규씨(오른쪽)와 김호선씨의 명함이다. 은둔생활 이력을 별 개수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자신의 은둔 생활 이력을 ‘별’로 표시했다. 별 1개면 히키코모리 생활을 1년 했다는 뜻이다. 별 5개짜리인 유승규(28)씨를 만날 수 있었다. 보통 일본 영화에 나오듯 비쩍 마른 체형에 안경 너머로 왠지 불안에 떠는 듯한 눈빛을 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의 20대 청년이었다.

/최원우 기자 히키코모리 경력 5년차인 유승규씨는 보통 일본 영화에 나오듯 비쩍 마른 체형에 왠지 불안에 떠는 듯한 눈빛을 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유씨는 “평생의 꿈이 좌절되면서 세상에 등 돌린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중학생 때부터 아프리카TV나 유튜브 같은 곳에서 게임 방송을 진행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게임유튜버가 인기 직종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적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을 때였다. 치과 의사였던 아버지는 특히 이를 못마땅해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유씨에겐 지나친 부담으로 다가왔다. 유씨는 “아버지는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우게 하고 검사하는 식으로 항상 무언가를 가르치고 내 머리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셨다”며 “그런 압박이 부담돼 나중엔 아버지가 현관 근처에 오는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고 했다.

그나마 그를 응원해주던 친구들마저 “이제 그만 정신 차려라. 공부해야지 언제까지 게임만 할 거냐”고 돌아섰다. 유씨는 “인생의 큰 축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유씨의 은둔 생활이 시작됐다. 온종일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등 떠밀려 지방 한 대학에 입학하긴 했지만, 한 달여 만에 자퇴했다. 신기하게도 군복무는 멀쩡하게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유씨는 “억지로 군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을 뿐, 세상에 등 돌리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였다”고 했다.

/유승규씨 제공 유승규씨가 은둔생활하면서 청소를 포기한 방의 모습이다.

실제로 전역 이후 유씨의 은둔 생활은 심각하게 악화됐다. 유씨는 전역하고 지방의 한 대학에 다시 입학하면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아예 자취방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집에 있는 대부분 시간을 게임을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보냈다고 했다. 그래도 그 긴 하루를, 그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그렇게만 보낼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유씨는 “정말이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면서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낸 날이 많았다”고 했다. 모든 식사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부모님이 보내주는 생활비 덕분에 돈 걱정 없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몸을 씻고, 방 청소를 하는 일조차 유씨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삽시간에 집은 쓰레기 천국이 됐다. 유씨는 “초파리, 구더기와 동거 생활이었다”며 “나중엔 화장실 가는 일조차 버거워 방 안에서 대소변을 봤을 정도였다”고 했다.

◇”나 정말 이상해요“...”그럴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유씨라고 그런 생활이 괴로운 줄 몰랐으랴. 그는 매일 아침 “오늘은 밖으로 나가야지”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저히 실천에 옮기질 못했다. 좋은 습관을 길러준다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책을 통째로 필사하거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다룬 뉴스나 소설, 영화를 찾아보기도 했다. 이런 생활을 끝낼 수 있는 실마리라도 찾아 보려던 노력이었다. 하지만 정작 밖으로 나갈 결심이 서질 않았다. 그러다 “내일은 진짜 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잠에 들고 나면 다음날 모든 것이 리셋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의지박약한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반전은 우연히 찾아왔다. 유씨는 아직도 그날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에 잘나가지 않는 그를 대학 동기가 걱정하는 마음에 그를 찾아왔다. 처음으로 그에게 숨겨왔던 자신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처음 털어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화성인 바이러스’(기인들을 소개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방 안은 완전히 쓰레기장이고 옷이 다 썩어서 양말 한짝 없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당연히 비난과 혐오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울면서 유씨를 위로해줬다. 유씨는 “그때 처음으로 내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도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 후 유씨는 한 전화 상담 센터에 전화 상담을 요청했다고 했다.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더니 “그럴 수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유씨가 “그게 아니다. 나 정말 이상하다. 직접 보면 그런 말 못할 거다”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도 있다.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씨는 자신이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정신과 진료도 받아보고, 고민 상담 센터도 갔다. 그러다 히키코모리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다른 히키코모리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유씨는 몇 차례 언론에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한 적도 있다고 했다. 유씨는 “방송에선 이제 완전히 극복했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완전히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난 건 아닌 것 같다. 이겨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확실한 건 혼자 힘으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과거 자신처럼 어디 말도 못하고 괴로워 할 이들에게 “나처럼 일단 도움을 청하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 실명으로 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승규씨 제공 유승규씨가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고 대청소를 시작하는 모습이다.

◇자퇴하고 7년 동안 게임만...지금은 헤어스타일링 즐기는 패셔니스타

별 7개짜리 김호선(26)씨는 화려한 패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펑키한 헤어스타일에 귀에는 피어싱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문신도 제법 한듯했다. 시선을 강탈하는 패션 감각의 소유자가 정작 밖으로 나가는 건 극히 꺼린다는 게 처음엔 의아했다. 하지만 김씨는 “오히려 남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나를 꾸미는 게 좋다”고 했다. 자기만족 시대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김호선씨 제공 화려한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김호선씨(오른쪽)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스타일링해줄 때 큰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은둔 생활을 시작한 경우다. 자세히 얘기해주진 않았지만, 학교 수업을 듣는 게 의미 없게 느껴졌다고 했다. 등교한다고 집을 나와선 PC방이나 공원 같은 곳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결석 일수가 쌓이면서 결국 퇴학 당했다. 학생 신분을 잃고서 처음 느낀 감정은 자유였다. 쉬는 게 마냥 좋았다고 한다. 선생님이나 같은 반 친구들과 불편하게 마주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게임에 매달렸다. 부모님은 밥을 챙겨주고 빨래도 해줬지만, 무기력한 김씨의 상태를 개선해 주지는 못했다. 김씨는 “집에선 가족과 서로 ‘투명인간’인 것처럼 대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가축이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편의점에 갈 때 정도를 제외하면 늘 집에만 있었다. 김씨는 “정말 미칠 것 같다는 생각에 먼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그나마 떠올렸던 게 경찰이었다. 경찰은 김씨를 자퇴한 청소년을 돕는 지원센터와 연결해줬다. 하지만 좀처럼 상태가 개선되진 않았다. 좋아하는 미용 일을 해보려고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한 미용실에 취업해봤지만, 한 달여 만에 사람 상대하는 일이 어려워 그만두고 방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용기를 냈다가 다시 위축되는 일이 7년 동안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김씨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하면서다. 김씨는 은둔생활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면서 은둔생활을 이겨내려는 단체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처음 알게 되고 나서도 1년 넘게 외면했지만, 지금 처지를 이겨내려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연락을 해봤다고 한다. 그렇게 재작년 7월부터 김씨도 이 공동생활에 합류했다.

기숙사에선 완전한 개인 시간이 보장되지만, 하루 중에 딱 한 번 서로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다. 바로 매일 아침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이때 돌아가면서 그날의 기분을 100점 만점에 몇 점인지 말하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 계획인지 이야기를 나눈다. 대단한 것까진 아니지만, 세상과 소통이 완전히 단절됐던 김씨에겐 오랜만에 다른 누군가와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최소한의 규칙적인 생활도 하게 됐다. 제멋대로 밤낮이 바뀐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좋아하던 미용도 계속 하게 됐다. 친구가 많은 건 아니지만, 김씨에게 머리 손질을 부탁하는 모두에게 기꺼이 스타일링을 책임져 주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멋있게 만들어줬다는 느낌을 좋아한다”고 했다. 김씨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서로 부대끼며 살다 보니 조금씩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 행복하냐 물었더니...결국엔 인간관계더라

두 사람에게 언제 행복하냐고 물어봤다. 따로따로 물어봤는데, 대답은 똑같았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과거 은둔 생활과 비교하면 소중한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 떠는 소소한 일상 자체로도 큰 행복이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유씨는 “예전엔 하등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때 행복하다. 히키코모리 생활은 절망적이던 흑역사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른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하나의 스펙이 된 기분이다”라고 했다.

김씨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때 행복하다. 히키코모리로 살았던 지난 7년이 후회 막심하긴 하지만, 마냥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게 됐다. 그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더 성장하고, 비슷한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이들과 관계 맺기가 불편하고 두려워 한때 사회를 완전히 등졌던 이들도, 결국은 관계 맺음을 통해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히키코모리들도 지금은 잠시 그런 행복을 놓치고 있을 뿐, 언젠가 자신들처럼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어느덧 비대면이 대세고 미덕인 사회가 돼가고 있지만, 반대로 서로 거리를 좁혀가면서 행복을 되찾으려 애쓰는 이들이 여기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스크 없이 얼굴 맞대고 부대끼던 과거 평범한 일상들이 유독 그립게만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만나기 조심스러워진 지가 벌써 1년을 넘겼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어쩌면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가 멀어지고 있는데도 거리 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가는 길에 친한 친구에게 괜히 안부 전화를 걸어봤다.

◇그냥 끝내긴 아쉬워서

국내에 히키코모리로 지내는 청년이 13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마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보통 가정 학대, 학교 따돌림, 취업난 등 이유로 사회에서 상처를 받아 세상으로부터 등 돌리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파고 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 숫자가 많아지면서 지원 단체들이 모여 ‘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라는 연합회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 연락해 다짜고짜 히키코모리를 소개받고 싶다고 했다. 예상대로 인터뷰 허락을 받아내기가 쉽진 않았지만 2주 정도 논의가 오간 끝에 지원단체 중 하나인 청년재단을 통해 두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생활고를 겪는 이들을 긴급 지원하고 일자리도 소개해준다고 한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에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