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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트인 서울야경에 뻥뚫린 마음 .. "그래, 이제 다 괜찮을거야" [밀착취재]

최은영 입력 2021. 03. 06. 18:01 수정 2021. 03. 0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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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오려고 날도 잡았죠. 이 언니는 서울에 살구요 저희들은 인천에서 왔어요. 김신조가 침투했다는 길도 보고 싶었구요. 걱정했었는데 날씨도 포근해 더 기분이 좋아요" 선후배 사이라며 인천에서 왔다고 밝히는 그네들의 대화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철책으로 둘러싸인 북악 구간 한양도성길은 이른 오전이라 고즈넉했고 몇몇 산책자들의 나지막한 대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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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길 트래킹
서울 한양도성 낙산성곽길의 밤 풍경. 대학로에서 가깝고 접근성이 좋아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다. 낙산 구간은 경사가 완만해 산책길로도 손색이 없다. 백악 구간을 빼곤 낮에도 저녁에도 자유롭게 한양도성길을 다닐 수 있다. 각 구간마다 특색이 있지만 서울을 다시 볼 수 있는 색다름을 선사한다.
“여길 오려고 날도 잡았죠. 이 언니는 서울에 살구요 저희들은 인천에서 왔어요. 김신조가 침투했다는 길도 보고 싶었구요. 걱정했었는데 날씨도 포근해 더 기분이 좋아요” 선후배 사이라며 인천에서 왔다고 밝히는 그네들의 대화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철책으로 둘러싸인 북악 구간 한양도성길은 이른 오전이라 고즈넉했고 몇몇 산책자들의 나지막한 대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창의문에서 시작해 말바위 안내소까지 이어지는 2km 남짓의 백악산 코스, 쉬엄쉬엄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창의문에서 받은 북악산 탐방로 통행 카드는 말바위 안내소에서 반납해야 한다. 군사기지 및 시설이 있는 곳이라 야간엔 개방되질 않는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 5년) 때 백악(북악산), 타락(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개축, 보수했다고 한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간) 도성 기능을 수행했다. 왕이든 백성이든 생을 마감하면 반드시 도성 밖에 묻혀야 했기에 한양 도성은 서울과 지방을 구분하는 경계선인 동시에 삶과 죽음을 가리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4대문과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 4소문을 아우르는 서울 한양도성은 크게 4개의 구간으로 나뉜다. 백악 구간, 낙산∼흥인지문 구간, 남산∼숭례문 구간, 인왕산 구간이다.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에는 “18.627km의 서울 한양도성 전체를 걸으면 성인 남자(73kg) 기준으로 약 3660칼로리가 소모됩니다. 쉽게 말해 쉬지 않고 수영을 8시간 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어요”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1·21사태 소나무.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김신조 등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다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을 벌여 총탄 흔적이 남았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을 찾는다는 유경창·정부성 부부가 잠시 쉬며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에 오르길 좋아하는데 자주 오진 못한다고 한다.
조금만 땀 흘리며 도성에 오르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어깨를 조금은 펼 수 있는 야외 공간이기도 하다. 손을 잡고 백악산 구간을 걷던 노부부는 “그냥 자주 이곳에 옵니다” 한마디 하고는 길을 걸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말바위 안내소에서 1년 정도 일해 왔다는 봉사자는 “별 탈 없이 잘 운영되고 있지요. 탐방로 카드 반납 안 되는 일은 없어요. 공기 좋은 이곳에서 일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종로구 행촌동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유경창, 정부성 부부는 “인왕산길 오른 지는 오래됐어요. 예전처럼 많이 다니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옵니다. 지금은 정비도 잘돼 있고 주말에는 줄을 서 올라야 할 정돕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가파르기도 하고 계단이 많아 나이 든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70, 80년대엔 여기도 군인들 위세가 대단했어요. 외국에서 사온 망원경으로 서울 시내 구경하다 압수당하기도 했다니까요. 요즘은 그런 거 없어요. 사진도 마음껏 찍고 구경도 편하게 할 수 있고 아주 좋아졌어요.”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돈의문터에서 시작해 인왕산을 넘어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이어진다. 해발 339m의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지만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맛이 꽤 괜찮다.
낙산 한양도성길은 젊은 남녀들이 자주 찾아 데이트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직은 쌀쌀한 2월 말 낙산공원의 한양도성길, 여기저기서 찰칵대는 스마트폰 셔터음이 들린다. 나지막이 깔깔거리는 젊은 소리가 들린다. 체육복 차림으로도, 굽 높은 구두를 신고 회사 가는 복장으로도 오르는 한양도성길.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오를 수 있는 서울의 길이다. 날씨가 좀 더 풀리면 야외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한갓진 시간, 주변의 한양도성길을 찾아 잠시 신선한 바람을 쐰다면 코로나19 블루를 조금은 떨쳐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사진=허정호 선임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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