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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서 반도체 장비 수입?'..中 기업에 깜빡 속았다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황정수 입력 2021. 03. 06. 18:05 수정 2021. 03. 0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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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 "中 SMIC, ASML에서 반도체 장비 추가 구매 계약"
1조4000억원 규모 장비 구매 보도
SMIC는 미국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어
업계에서 "ASML이 미국 제재 무시했다" 평가 나와
알고보니 '2018년 계약 납기 연장' 알린 것
ASML, 홈페이지에 "새 계약 체결 아니다" 해명
SMIC가 홍콩에서 공시한 계약 문서가 발단
모호한 표현으로 새 계약처럼 오해 일으켜
네덜란드 ASML의 노광장비. 한경DB


지난 4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세계 5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중국 SMIC에 12억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 장비를 공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SMIC는 미국 상무부가 지난해 12월 블랙리스트에 올린 기업이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장비 등을 공급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ASML이 SMIC에 1조원 넘는 반도체 장비를 수출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전 세계가 놀랐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의 효력이 약해졌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반도체 업계에선 "ASML의 미국 정책에 대한 모독"이란 격앙된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ASML이 SMIC에 반도체 장비를 추가로 수출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논란이 커지자 ASML은 4일 홈페이지에 'SMIC와의 대규모 계약에 관한 설명'이란 글을 올렸다. 이 게시물을 통해 ASML은 "SMIC가 대규모 계약에 대한 공시를 했다. 이는 2018년 1월1일 DUV 노광장비 공급 관련 체결한 '기존 계약'이다. 계약 만료일이 2020년 12월에서 2021년 12월로 연장됐다"고 설명했다. 또 "장비 대금은 2020년 3월16일부터 2021년 3월2일까지 총 12억달러가 거래됐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ASML의 해명 자료. ASML 홈페이지 캡처


정리하면 ASML이 SMIC에 새로운 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 계약에 대한 장비 납기가 연장된 것 뿐이다.

그렇다면 왜 주요 외신들은 ASML이 SMIC에 12억달러 규모 장비를 추가로 공급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일까.

 새 계약 체결한 것처럼 문서 만든 SMIC

답은 SMIC가 지난 3일 홍콩증권거래소에 올린 공시문서에 있다. SMIC는 홍콩거래소 규정에 따라 이날 계약 개정 사실을 알렸다. '기존 계약을 연장했다'고 표현하긴 했다. 하지만 문서엔 SMIC가 마치 새 장비를 들여오는 것처럼 투자자들이 오해할만한 문구가 적지 않았다.

SMIC는 우선 공시문서 1페이지 상단에 "대량 구매 계약에 따라 2020년 3월16일부터 2021년 3월21일까지 12건의 거래를 완료했다"고 적었다. 그 아래엔 "ASML과 수정된 대량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이 12월31일까지 연장됐다"고 알렸다.


2~3페이지엔 재계약 날짜를 지난 2월1일로 명시한 뒤 지불조건, 계약 금액(12억159만8880달러) 등을 마치 새로운 계약서인 것처럼 소개했다. 대량 구매 계약 체결한 이유에 대해서도 "SMIC는 중국에서 가장 발전한 반도체 제조업체고 지속적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ASML에 주문한 것은 정상적인 사업 프로세스에 따라 반도체 장비를 구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모호한 표현 때문에 여러 외신들이 "ASML이 SMIC에 새 장비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고 이게 마치 사실인것처럼 국내외에 알려진 것이다.

 미국, SMIC 대상 EUV 장비 수출도 막아 

미국 정부의 대(對) SMIC 수출 규제 때문에 ASML 뿐만 아니라 AMAT, 램리서치 같은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매출 감소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ASML 연간보고서를 보면 2020년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18%로 금액으론 18억5706만유로(약 2조5000억원)다. 2019년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12%, 금액은 10억7952만유로(1조4542억원) 수준이다. ASML의 중국 매출 상당 부분은 SMIC 몫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TSMC가 있는 대만에 대한 ASML의 매출 비중(2020년 기준 36%),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본사가 있는 한국의 매출 비중(2020년 기준 31%)에는 못미치지만 중국 비중은 '상당한 수준'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ASML은 2019년 11월 최신 EUV 노광장비를 SMIC에 수출하려다가 미국의 반대에 포기한 적도 있다. 당시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해 현지 정부 관계자들을 압박했다는 얘기가 많다.

EUV 노광장비는 파운드리업체들이 회로 선폭 7nm 미만 초미세공정 생산 라인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 SMIC의 초미세공정 진출을 막기 위해 직접 뛰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SMIC는 현재까지 10nm 미만 공정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10nm 미만 공정이 가능한 반도체 업체는 현재 TSMC와 삼성전자 뿐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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