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녹인 재활용 도로엔 '이 구멍'이 없다

이정호 기자 입력 2021. 3. 7. 21:40 수정 2021. 3. 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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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이 플라스틱 쓰레기 '도로 포장'에 사용해보니

[경향신문]

도로가 깊게 파인 곳을 일컫는 ‘포트홀’은 주행 중인 자동차의 타이어 펑크나 차량 하부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도로 위 지뢰’로 불린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스팔트 핵심 성분 ‘역청’ 대체
하중 2배로 늘고 유연성 높아져
이산화탄소·건설비도 감소 효과
인도는 2015년부터 활용 의무화
“도로 미세플라스틱 발생”우려도

멀쩡히 계속 달리던 승용차가 쿵 소리를 내며 크게 덜컹거린다. ‘삐리릭’ 소리를 내며 차량용 블랙박스가 작동하고, 깜짝 놀라는 운전자의 외마디가 녹음된다. 동영상을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포트홀’과 관련한 영상을 찾으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포트홀은 도로의 표면 일부가 뜯겨 나간 파임 현상이다. 평탄하던 도로가 크게는 수십㎝까지 푹 꺼지기 때문에 주행하는 자동차에 큰 위협이다.

■ 플라스틱 품은 신개념 도로

그런데 포트홀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이 최근 확산하고 있다. 그것도 지구 환경의 최대 골칫거리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활용한 방법이다. 지난주 영국 BBC는 인도 티아가라자르공대 라자고파란 바수데반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의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는 2000년대 초부터 플라스틱 쓰레기를 도로에 섞어서 까는 실험을 세계적으로 주도해 왔다. 기술의 핵심은 도로 아스팔트의 핵심 성분인 끈적끈적하고 검은 ‘역청’의 10%를 플라스틱 쓰레기로 대체하는 것이다. 식기나 의자, 파이프, 밧줄, 기계 부품 등으로 쓰이던 플라스틱 쓰레기가 도로 속에 들어간다.

이 기술이 각광받는 건 골치 아픈 플라스틱의 처리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영국 리즈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2040년까지 지구에는 13억t의 플라스틱이 쓰레기로 나뒹굴게 된다. 플라스틱은 수백년간 썩지 않고 환경에 남아 생태계를 파괴한다.

특히 해양 동물에게 치명적이다. 플라스틱이 반복된 충격을 받거나 햇빛에 노출돼 잘게 부서지면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크기 5㎜ 이하인 미세플라스틱은 바다 생물의 신체 기관에 걸리거나 함유된 화학물질을 내뿜어 몸을 상하게 한다.

■ 내구성 상승·이산화탄소 감소

플라스틱을 섞은 도로의 품질에 이상은 없을까. 오히려 좋아졌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2012년 바수데반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플라스틱을 함유한 도로를 10년간 분석해 국제학술지 ‘컨스트럭션 앤드 빌딩 머티리얼즈’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플라스틱을 섞은 도로는 지지할 수 있는 하중이 보통 도로보다 두 배 증가했다. 무거운 차량들이 오랫동안 주행하더라도 도로 보수가 필요한 일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플라스틱이 함유된 역청을 쓴 도로 구간에선 포트홀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플라스틱으로 인해 도로의 유연성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특히 온도 변화에 따른 도로의 팽창과 수축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그만큼 포트홀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졌다.

플라스틱을 섞어 도로를 만들면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도 줄일 수 있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소각하는 것에 비해 도로 1㎞를 깔 때마다 3t의 이산화탄소 방출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 건설비용도 보통 도로보다 1㎞당 670달러(약 75만원)가 절감됐다. 플라스틱을 아스팔트에 섞는 데에는 첨단 기술도 필요치 않다. 잘게 부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자갈과 모래에 섞어 170도로 가열하면 된다. 이러면 플라스틱은 자갈과 모래의 표면에 코팅막을 형성한다. 여기에 뜨거운 역청을 혼합하기만 하면 된다.

■ 각국 확대되지만 우려도 제기

인도 정부는 2015년부터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에선 도로 건설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활용하도록 의무화했다. 2018년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플라스틱을 함유한 도로가 만들어졌다. 같은 해 네덜란드에선 플라스틱만 쓴 자전거 도로도 건설됐다. 2019년 영국 정부는 플라스틱을 함유한 도로 연구에 160만파운드(25억원)를 지원했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도로에 섞는 기술을 확대하는 건 신중한 검토 뒤에 진행돼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플라스틱을 섞은 도로가 강한 햇빛에 노출되고 달리는 차량과 마찰하며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지 않을지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플라스틱을 차량과 직접 접촉하는 도로 표면까지 쓸지, 도로 심층에만 쓸지에 대한 분석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관련 기업들은 도로 주변의 미세플라스틱은 자동차 타이어나 브레이크에서 주로 발생하며, 도로에 플라스틱이 섞여 있다고 해서 보통 도로보다 미세플라스틱을 더 만들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폐플라스틱의 새로운 사용처로 떠오른 도로가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이목이 쏠린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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