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해자 편만 드나요".. 학폭 피해자 울리는 학폭위

구승은,이한결 2021. 3. 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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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심해도 전학 처분 드물어
애들 싸움 치부.. 보복 가능성 경시
피해자 중심주의 기조 강화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A군(15)은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5월 중학교 3학년 선배 4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A군이 이른바 ‘일진’ 선배들을 인터넷 메신저로 험담한 게 발단이 됐다. 선배들은 A군 친구 휴대전화를 빼앗아 대화 내용을 알게 됐다. 이후 A군 등을 SNS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해 “좀 맞아야겠다”고 했다. 동네 아파트에서 A군은 수차례 따귀를 맞았다. 이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렸고 A군은 보복이 두렵다며 가해자들의 전학을 원했다. 하지만 4호 처분(사회봉사 10시간)을 받은 1명을 제외하고 가해 학생들에게는 모두 3호(학교봉사) 이내 경미한 처분만 이뤄졌다.

경기도에 사는 고등학생 B군(16)도 지난해 6월 한 공원 화장실에서 동급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B군의 다리를 걸레 자루로 때리고 목을 졸랐다. B군은 전치 2주 진단을 받았고 충격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하지만 학폭위에서는 폭행 주도 학생에게만 출석 정지 5일(6호 처분) 등을 내렸다. 나머지 가해 학생들은 학교봉사 처분 등을 받았다.

B군 부모는 처벌이 너무 약하다며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행정심판위원회에서도 “전학은 최후 수단”이라며 전학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B군 어머니는 7일 “아이는 아직도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과 약을 먹는데 치료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며 “학폭위가 피해자보다 가해자 편인 것 같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학교폭력 피해자들 사이에서 학폭위가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폭위 운영이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폭위는 지역 교육지원청 관리하에 구성돼 학교폭력을 조사하고 조치를 내리는 기구다.

피해자들은 학폭위가 아직도 학교폭력을 아이들 싸움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호소한다. 위원들이 가해자와의 화해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반응도 있다. A군 아버지는 “가해자가 사과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는데 학폭위원이 사과하면 용서할 생각이 있냐고 반복해 물어봤다”고 말했다. B군은 학폭위에서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았느냐.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학폭위에서 화해 가능성을 질문하는 것은 처분이 폭력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 정도, 화해 정도 등을 기준으로 점수화돼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 측은 피해자가 얼마나 다쳤는지,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학교 및 학폭위에서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수도권 교육지원청 학폭위원으로 활동하는 C변호사는 “기준들이 가해자 중심인 측면이 있다.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 피해 정도에 대해 별도로 점수를 부여하는 기준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학폭위원으로 활동하는 D변호사는 “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이 점수와 최종 처분에 크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위원들의 전문성과 자질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B군 어머니는 “학폭위원이 같은 반이 아니라 보복 가능성도 작다는 취지로 말해 답답했다”고 말했다. C변호사는 “경찰이 용기를 내서 학폭위 심의를 올리라고 했는데 학폭위원이 피해 학생에게 ‘보복이 두렵지 않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위원들이 피해자에게 ‘네가 원인을 제공했던 것 아니냐’고 물어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학폭위원들이 학폭위 당일 현장에 나와 사건을 확인하는 만큼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피해자들은 현재 사회적으로 학교폭력 폭로가 뒤늦게 이어지는 것도 결국 사회가 피해자 아픔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벌어진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A군 아버지는 “학교폭력은 범죄인데 사회적으로 범죄로 인식을 안 하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또 학교의 역할이 미비하다고 호소한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징계 권한이 학교에서 학폭위로 넘어간 만큼 학교는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과거에는 학교에서 훈계와 정학 등 강한 처벌도 가능했지만 요즘 학교에서 피해자 편을 들었다간 가해자 측의 각종 민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학폭위 절차에 대응하는 것도 공공연한 일이 됐다. D변호사는 “부모의 관심과 정보력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수 있다”며 “변호사들에게는 또 하나의 시장”이라고 전했다.

교육 당국에서는 학폭위 제도 자체가 분쟁 조정과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교육 현장에서 운용되는 제도인 만큼 가해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엄벌 기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는 6월에는 학폭위 심의과정에서 피해자가 요구할 경우 소아청소년과 의사 등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심의위원들의 역량이나 심의 역량을 개선하기 위한 연수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구승은 이한결 기자 gugiz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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