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스라엘 "백신 실험실 자처..美보다 값 세게 불렀다"

전수진 2021. 3. 8.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신 모범국 '빛의 접종' 비결 인터뷰
과감한 리더십, 비용보다 신속 확보 집중
화이자,모더나에 접종 자료 공유 전략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지난 3일 중앙일보와 [시크릿 대사관] 시리즈 인터뷰에 응하며 백신 접종 모범국이 된 비결을 밝히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스라엘은 백신 실험실이 되길 자처했다. 우리가 획득한 정보를 한국 등 세계와 나눠 팬데믹 종식에 공헌하고 싶다. 한국은 방역에서,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에서 세계의 롤모델인 만큼 서로 배워가길 희망한다.”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지난 3일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대사관저에서 인터뷰에 응한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의 백신 접종 속도전의 비결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스라엘은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다. 토르 대사는 “(3일 현재) 이스라엘 인구 930만명의 절반 가량인 440만명이 백신 2회 접종을 모두 완료했다”며 “접종은 계속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백신 접종을 두고 국가명 이니셜을 딴 ‘I 백신’이란 말도 회자된다. 이스라엘은 오스트리아ㆍ덴마크와 지난 4일 ‘백신 동맹’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비결이 뭘까. 토르 대사는 정치 리더십과 과감한 비용 투자, 디지털화된 보건의료 시스템과 이스라엘 특유의 군 시스템을 들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백신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 첫째 이유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 이스라엘 국민 1호로 접종해 솔선수범했다. 토르 대사는 “정치 리더십이 공격적(aggressive) 전략을 폈다”며 “백신 제약회사들과 적극 협상하면서 제시된 가격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1호로 맞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화이자 측에 2회 접종분 당 59달러(약 6만6000원)를 지불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 지난해 11월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지불한 39달러보다 약20달러를 더 지불한 셈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백신 구매 가격을 공식 밝힌 적은 없으나, 백신 접종에 있어서 이스라엘 정부의 우선순위는 예산 절감이 아닌 신속한 백신 확보였다.

‘빛의 접종’ 비결은 과감한 계약에만 있지 않았다. 백신에 큰 비용을 치르고라도 확보 경쟁을 펼치는 국가들은 다수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차별화 전략으로 나섰다. 토르 대사의 말을 빌리면 이스라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실험실”이 되기를 자처했다. 화이자ㆍ모더나 측에 “백신 접종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이는 제약사들에게 솔깃한 제안이었고, 화이자ㆍ모더나는 결국 이스라엘에 화답했다. 단 고령층 접종 안전성이 문제가 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이스라엘에선 아직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라고 토르 대사는 밝혔다.

이스라엘은 전 국민의 백신 접종을 독려한다. 임산부 접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텔아비브에서 한 임산부가 백신을 접종받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토르 대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의료보험 체계는 모든 과정과 절차가 전산화돼 있어 민감한 개인 정보를 제외하고 접종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속도감 있게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군 체계가 백신 운송 및 저장과 유통에 한몫했다.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이고, 우리 특유의 징병 및 예비군 시스템으로 인해 운송에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국민의 백신 접종 독려를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접종자에게 피자 등 다양한 선물을 제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토르 대사는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한국에 배울 것도 많다”고 강조했다. 방역 얘기다. 이스라엘은 코로나19 확산세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이유에 대해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 일부 국민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생존과 공동체 유지에 불안감을 크게 느꼈다”며 “그렇기에 정부로서는 백신 접종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토르 대사는 이어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훌륭한 방역 정책을 펼친 것이 인상적”이라며 “방역 모범국인 한국과 접종 모범국인 이스라엘은 서로에게 배울 게 많다”고 강조했다. 토르 대사가 지난달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을 당시, 문 대통령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인터뷰 당일에도 오후에 서울특별시와 이스라엘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웨비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난달 17일 신임장을 제정하는 아키바 토르 대사. 그의 마스크엔 한국과 이스라엘 국기가 동시에 인쇄돼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백신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이스라엘에도 존재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백신 접종자에 대해 각종 행사 참여 등을 가능하게 하는 '그린 패스'를 부여하고, 접종자들에게 피자 등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이유다. 토르 대사는 “홍역도 소아마비도 백신을 맞지 않느냐”며 “네타냐후 총리 등 정치 리더십이 먼저 모범을 보여 이 같은 불안감을 해소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치 불안정에도 정부는 제 할 일 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부터 총선을 연거푸 치러왔지만,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불안감은 커졌다. 이달에도 조기 총선이 또 치러진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서도 오는 11일 주한 교민을 상대로 부재자 투표를 실시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불안감이 정부의 기능 부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백신 접종 속도로 확인됐다. 토르 대사는 “정치에 이슈가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 사회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스라엘에서 백신 접종 효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백신 접종 이전 하루 1만6000명까지 치솟았던 이스라엘의 신규 확진자 숫자는 지난달 중순 기준 2500명대까지 줄었다. 접종을 마친 60대 이상 노년층에선 신규 감염이 53% 줄었으며, 접종자들의 경우 유증상 질환의 예방 효과가 9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수진ㆍ김선미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