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임직원들 실명으로 투기.. 그동안 걸려본 적 없구나" [뼈때뷰]

나진희 2021. 3. 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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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인터뷰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 연합뉴스
정부가 ‘뛰는’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신도시 정책 뒤에는 ‘나는’ 공직자들이 있었다. 국토부가 지난달 24일 경기 광명·시흥 지역을 3기 신도시로 선정해 7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야심차게 발표한 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제보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으로 날아들었다. LH 임직원들이 신도시 발표 전 내부 정보를 이용해 미리 땅을 사들였다는 내용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의혹을 직접 사실로 확인하기까지는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조사 결과 LH 직원 14명과 이들의 배우자·가족은 필지 2만3028㎡(약 7000평)를 100억원 가량(99억 4512만원)에 사들였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8억원은 대출로 마련했다. 농지를 사며 수십 억원의 대출을 받는 용기와 사들인 땅에 마치 모내기한 것마냥 빼곡히 심어놓은 묘목들은 투기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채우기 충분했다.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7일 세계일보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신도시 선정이 발표된 날 제보가 들어왔다”면서 “그 주 주말에 바로 현장에 가보니 제보대로 나무들이 굉장히 촘촘히 심겨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 하에 이뤄졌다는 걸 느꼈을 때 놀라움과 함께 국민 한사람으로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무의 성장에 좋지 않은데도 빽빽이 나무를 심는 건 최대한 많은 토지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라는 게 서 변호사의 설명이다. 보상금 산정 시 식재된 나무 수, 종류 등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임직원들 실명으로 투기…한 번도 걸려본 적 없구나”

서 변호사에 따르면 익명의 제보자는 3기 신도시 발표 당일 오후 단체에 전화해 “해당 지역은 LH 임직원들이 땅을 산 거로 알고 있는데 실제 그 땅이 신도시 발표가 나서 놀랐다”며 “이건 잘못된 것 아니냐. 확인 좀 해달라”고 말했다.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순조롭고 빨랐다. 서 변호사는 “제보자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추가로 연락할 이유가 없었다”며 “제보받은 필지의 소유자와 LH 홈페이지 직원 정보를 대조해보니 실제 임직원 명의인 것이 쉽게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지어 투기 행위자들은 실제로 자기 이름을 걸고 (매매를) 했다”며 “‘여태까지 (투기했다가)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구나, 지금껏 적발돼도 내부 징계에서 끝나는 식으로 이뤄졌구나’ 느꼈다”며 씁쓸해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일부가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 전 해당 지역에서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업무에서 전격 배제됐다. 사진은 3일 오후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에 방치된 작물. 연합뉴스
LH 임직원의 투기가 의심스러운 필지는 파면 팔수록 튀어나왔다. 서 변호사는 “(제보받은) 1필지 외에 추가적으로 근처 필지를 확인했을 때 (투기 의심 정황이) 나오지 않았다면 거기서 조사를 멈추고 개인의 일탈로 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나오니 가만있을 수 없었다”며 “개인적으로도 놀라웠다. 그동안 막연히 의심했던 것들이 눈앞에 밝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민변과 참여연대가 밝혀낸 것은 조족지혈일 가능성이 높다. 서 변호사는 “광명과 시흥을 합치면 총 350만평인데 저희는 시흥 7000평, 전체의 5.5%만 조사했다”며 “전수조사를 하면 당연히 더 많이 (투기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변과 참여연대에는 계속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한 이후 토지 소유자나 LH 측에서 “투기가 아니다”라는 반박이나 해명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고 한다. 민변과 참여연대도 별도로 해당 임직원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LH 임직원들의 과감한 실명 매매가 해명과 변명이 필요없는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서성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이우주 기자
◆“정부 사과의 진실성은 전수조사 결과 따라 판단해야”

LH 수장을 지낸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을 알고 투자한 것은 아닐 것”이라 말해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서 변호사는 “변 장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전수조사가 시작되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에 대해선 “사과의 진실성은 전수조사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며 “‘발본색원’, ‘일벌백계’ 이런 말로만 국민이 설득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이 납득할만한 설명과 실행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기에 가담한 퇴직자나 전직자는 개인정보 문제로 조사가 어렵다는 우려에 대해선 “경기도 등 지자체에서도 전직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해당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법률상 정해진 소관업무를 할 수 없는 경우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의결에 따라 이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가능한 방법들이 있다. 정부가 전수조사의 의지를 더 내려면 이런 부분들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홍남기(왼쪽 두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와 함께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 도중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부패한 공직자는 패가망신한다’는 원칙 확인되길”

이날 정부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부동산 투기 재발 방지 대책을 적극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등록제와 내부정보로 사익을 얻은 경우 그 이익의 수배를 환수하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서 변호사는 “지금 당장의 발표 내용 만으론 추상적인 부분이 있다. 더 많이 다듬어야 한다”면서도 “자본시장법과 같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얻은 경우 3배 내지 5배의 투기 이익을 환수하도록 하면 어느 정도 투기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성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현재 정부는 총리실과 국토부 등에서 투기 의혹에 대해 전수조사 중이다. 앞서 참여연대와 민변은 기자회견 당시 공익감사를 요구했었다. 서 변호사는 감사 요청 이후 별도로 감사가 시작됐다거나 하는 내용의 통보를 받은 것이 없다며 “정부의 전수조사 외에도 경찰 등 수사기관과 감사원의 조사도 진행돼야 한다는 게 저희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서 변호사는 기자회견 이후 민변과 참여연대를 통해 전해진 국민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도 했다. 그는 “가뜩이나 집값이 올라 내 집 마련하기도 힘든데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져 국민이 더 분노를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패행위는 언젠가 적발되고 부패한 공직자는 패가망신한다. 부패한 공직자와 함께 한 일반인도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공정의 원칙이 확인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 세계일보는 주요 이슈와 관련해 ‘뼈때뷰(뼈때리는 인터뷰)’를 연속으로 진행합니다. 뼈때리다는 ‘뼈를 때리 듯 일침을 놓는다’는 뜻의 요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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