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LH 투기 사건에 檢 수사 배제..盧, 16년 전 '투기와 전쟁' 대검에 맡겼다

손덕호 기자 2021. 3. 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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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전 대통령 "부동산 정책은 정말 전쟁하듯 하는 것"
그날 대검 나서 국세청·건교부와 합동수사본부 구성
文대통령 "전수조사 빈틈 없이 하라", 지휘는 총리실
검찰 빠진 합수단…文 "감사원 감사는 감사원이 판단"
검찰이 대대적 수사해 성과내면 與 '검수완박' 여론 악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지 의혹이 국민들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사흘 연속으로 LH와 국토교통부 직원, 청와대 근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심각성을 느끼고 있으며, 부동산 투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측면에서 이같은 지시를 내렸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그러나 야당은 여전히 문 대통령의 대처에 문제가 있다며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 지시로 진행되는 전수조사가 ‘셀프조사’이기 때문에 ‘제 식구 봐주기’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3기 신도시 후보지 투기를 조사하는 주체에는 대형 경제·비리 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이 유독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는 달랐다. 2기 신도시를 추진했던 노 전 대통령은 16년 전인 2005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당시 검찰이 수사를 주도하도록 했다.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부동산 투기에 가담한 공무원 27명을 적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동수사본부장, 대검 형사부장이 맡아

노무현 정부가 2기 신도시 조성을 발표했을 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2기 신도시는 경기 김포(한강), 인천 검단, 화성 동탄1·2, 평택 고덕, 수원 광교, 성남 판교, 서울 송파(위례), 양주 옥정, 파주 운정 등 수도권 10개 지역과 충청권 2개 지역(아산·도안) 등 총 12곳이다. 그러자 이들 지역에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7월 7일 중앙언론사 보도·편집국장 간담회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정부가) 부동산에 매달리는 이유는 양극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라며 "투기 소득으로 인한 양극화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상실감이 큰 만큼 부동산 정책은 정말 전쟁하듯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검찰이 나섰다. 대검찰청은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특별단속' 방침을 발표하고, '사실상 부동산 투기사범과 전쟁'이라고 천명했다.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특별 단속안'은 이동기 당시 대검 형사부장이 발표했다.

정부는 대검과 경찰청, 국세청, 건설교통부로 부동산 투기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했다. 합동수사본부장은 이동기 대검 형사부장이 맡았다. 합수본은 노 전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한 그해 7월 7일부터 10월 31일까지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특별 단속을 벌여 9700명을 적발하고 이 중 300명을 구속했다. 당시 의정부 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고 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2005년 9월 5일 대검 기자실에서 이동기 당시 형사부장이 부동산 사기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선DB

적발된 공무원은 27명이었다. 건교부 5급 공무원 박모씨는 경기 성남 분당구 임야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서 풀린다는 정보를 부동산 투기꾼에게 제공하고 1000만원을 받았다. 경기 화성시청 도시계획과와 건설과 공무원 6명은 화성시 일대가 도시개발지구로 지정되고 대규모 택지 개발이 진행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같은 시청 공무원, 인근 토목측량설계사무소 직원들과 결탁해 임야 1만1000여평을 21억원에 공동 매입했다. 이들은 매입한 임야가 도로와 인접해 토지형질 변경이 쉽지 않자 담당 공무원을 매수해 형질 변경을 받은 뒤, 설계사무소 대표의 부인 앞으로 명의 신탁했다.

이보다 15년 앞선 1990년 2월 노태우 정부 때에도 검찰이 다른 관계부처와 함께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대대적 조사를 벌였고, 1만여명의 부동산 투기 사범을 적발하고 776명을 구속시켰다. 당시 수사는 정부가 1989년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개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1년 뒤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9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 배제', 文대통령이 직접 지시…조사 대상도 한정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이후 16년만에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되는 부동산 투기 조사에는 '검찰'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세 차례 지시에선 '자체 조사'를 강조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국토부와 LH, 관계 공공기관 등 직원과 가족 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하면서, "전수조사는 총리실이 지휘하고, 국토부와 합동으로 충분한 인력을 투입해서 하라"고 했다. 4일에는 "감사원 감사는 감사원이 판단할 문제"라면서 '정부 차원의 선제적 조사'를 지시했다. 5일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행정관 등 전 직원 및 가족에 대한 3기 신도시 토지거래 여부를 신속히 전수조사하라"고 지시했지만, 조사는 청와대 자체적으로 한다.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총리실 직속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합동조사단은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경기도, 인천광역시가 참여한다. 16년 전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하면 총리실과 행정안전부가 들어가고 검찰이 빠졌다.

조사 대상도 착수 단계부터 한정돼 있다는 점도 노무현 정부와 다르다.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조사 대상은 국토부와 LH 등 관계 공기업 전 직원, 신도시 관할 지자체의 신도시 담당부서 공무원 본인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이다. 그나마 지난 3일 문 대통령이 지시에서 조사 대상을 '국토부·LH·관계 공공기관 등의 신규 택지 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 및 가족'으로 한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와 함께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 앞서 사과를 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오른쪽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이 같은 방식으로는 공무원이나 LH 공공기관 직원이 사촌 등 관계가 다소 먼 친척 명의로 차명거래를 했을 경우 투기 사실을 밝혀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왜 다음 주까지 서둘러 국토부 4000명과 LH 1만명 토지 거래내역 전수조사를 끝내나"라며 "차명 거래, 옆 동네 투자, 대면 조사, GTX 등 철도역 인근 투기는 눈 감을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왜 조사 주체에 감사원과 검찰을 빼냐"며 "1·2기 신도시 투기와의 전쟁에서 계좌추적, 압수수색으로 성과를 올렸던 검찰을 배제하고 국토부가 앞장선 수사결과를 믿으라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7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토부) 자체 조사로 시간을 끌고 증거 인멸하게 할 것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LH나 청와대 직원 상대로 등기부만 보면서 땅 샀는지 안 샀는지 말로 물어봐서 뭘 밝힐 수 있겠나"라며 "실명보다 차명 거래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검찰의 개입은 배제하고 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부동산 투기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면서 '자체 조사'를 강조했다. 그 문 대통령의 지시 내용을 언급한 뒤 "이낙연 대표 역시 당 윤리감찰단에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진,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고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일 대검에 "각 청별로 부동산 투기사범 전담 검사를 지정하고, 경찰의 영장신청 시 신속하게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부동산 투기 사범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경찰의 영장 신청을 신속히 검토하고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라는 주문만 한 것이다.

최근 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대대적 수사에 나서고 투기 사범을 밝혀낼 경우 '검수완박'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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