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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없애려 스스로 목을 치는 달팽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1. 03. 09. 08:27 수정 2021. 03. 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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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민숭달팽이(Elysia cf. marginata)가 스스로 목을 잘라낸 뒤 머리와 몸통의 모습. 머리에선 다시 몸통이 자라났다. 하지만 남은 몸통은 몇 달은 살지만 결국 부패했다./나라 여성병원

살기 위해 스스로 목을 잘라야 한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바다에 사는 달팽이에게 일어났다. 일본 나라 여성병원의 요이치 유사 교수 연구진은 9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갯민숭달팽이가 스스로 목을 자르고 나중에 머리에서 다시 몸이 재생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더듬이가 달린 머리는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움직이고 먹이까지 먹었다. 심지어 노폐물도 제거했다. 1~3주가 지나자 심장을 포함한 몸통이 다시 자라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몸통 역시 목이 없어진 상태에서도 심장이 계속 뛰었다. 하지만 머리와 달리 몸통은 결국 살이 썩기 시작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논문 1저자인 사야카 미토 연구원은 “머리는 뇌와 먹이를 씹는 치설(齒舌)처럼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원래 광합성 능력을 연구하기 위해 갯민숭달팽이(Elysia cf. marginata)를 실험실에서 키웠다. 하지만 달팽이들이 머리만 남고도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연구 방향을 틀었다. 연구진은 실험실의 갯민숭달팽이의 목 둘레에 홈이 나있는 것을 보고 분리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하루 안에 달팽이 6마리가 모두 목에 있는 홈을 따라 머리와 몸통이 분리됐다.

미토 연구원은 “갯민숭달팽이의 머리는 몸통과 분리되기 전이나 후에도 해초를 먹고 엽록체가 녹색으로 변했다”며 “달팽이의 소화샘은 머리를 포함해 몸 전체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덕분에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머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갯민숭달팽이(Elysia cf. marginata)가 스스로 몸통을 잘라낸 뒤의 머리 모습. 나중에 머리에서 몸통이 다시 자라났다./나라 여성병원

◇물벼룩 감염된 달팽이는 모두 몸통 잘라내

연구진은 이후 다른 종류의 갯민숭달팽이(Elysia atroviridis) 160마리를 자연 상태의 수명인 2년까지 관찰했다. 실험실에서 키운 달팽이 15마리 중 5마리와 야생 달팽이 145마리 중 3마리가 스스로 목 아래 몸통을 잘라냈다. 야생 달팽이 39마리는 이동에 쓰는 꼬리 부분처럼 더 작은 부분을 잘라냈다.

도마뱀 같은 일부 동물은 천척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꼬리 같은 몸의 일부를 잘라낸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도 같은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천적처럼 몸통을 찔렀다. 하지만 달팽이는 이런 공격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연구진은 대신 자연에서 채집한 달팽이 일부에서 몸 안에 물벼룩 같은 기생 갑각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목이 잘린 달팽이 42마리는 모두 몸에 물벼룩이 있었다. 연구진은 최소한 이 달팽이 종은 몸 안의 기생충 때문에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스스로 목을 자르는 이유가 기생충을 떨쳐내려는 것이었다면 대가가 너무 컸다. 나이든 달팽이는 몸통을 잘라내고 머리가 살아남지 못했다. 연구진은 어리석은 판단처럼 보이지만 나이든 달팽이는 어차피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번식을 막는 기생충을 없애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갯민숭달팽이(Elysia cf. marginata)가 몸통을 잘라낸 뒤 22일만에 다시 머리에서 몸통이 자라나는 과정./커런트 바이올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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