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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았더니 전기가.. 썩은 나무 마루, 우리집 발전소 된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1. 03. 11. 08:38 수정 2021. 03. 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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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카페]
잔나비걸상버섯. 발사 나무에 감염시키면 목질을 이루는 리그닌과 헤미셀룰로스를 분해해 밀도를 낮춘다./위키미디어

썩은 나무로 만든 마루가 집안의 발전소(發電所)가 될 수 있다. 마루를 발로 밟을 때 발생하는 압력이 집에서 쓸 수 있는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나무 바닥을 깐 실내 경기장이나 무도장이 대형 발전소로 변모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잉고 버거트 교수 연구진은 1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나무에 버섯을 감염시켜 썩게 하면 밀도가 낮아져 전기 발생량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나무에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나무가 압축되면 안에 있던 (-)전기를 띤 전자와 (+)전기의 정공이 나무의 표면으로 분리되면서 전류가 발생한다. 이른바 압전(壓電)효과이다.

나무의 압전효과는 1940~50년대 상용화가 논의되다가 나무에서 나오는 전기량이 너무 작아 잊혀졌다. 연구진은 이번에 나무를 전처리하면 압전효과가 55배나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무에 버섯과 같은 균류를 감염시켜 썩게 하는 방법이다.

에너지 마루의 원리. 나무에 버섯을 키우면 목질을 이루는 부분이 분해돼 밀도가 낮아진다(위). 이때 나무에 압력을 가하면 내부의 (-)전자와 (+)정공이 서로 분리돼 표면으로 이동하면서 전류가 발생한다(아래),/사이언스

◇버섯 키우면 발전량 55배 증가

버거트 교수 연구진은 발사 나무에 잔나비걸상버섯(Ganoderma applanatum) 종균을 접종했다. 발사 나무는 밀도가 낮고 세포벽이 얇아 압전효과가 크다.

버섯은 자라면서 나무의 목질을 이루는 리그닌과 헤미셀룰로스를 분해했다. 발사 나무는 무게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연구진은 종균 접종 후 6주 정도 됐을 때 나무가 내구성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잘 압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때 나무에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버섯을 처리한 나무 조각 9개를 나란히 붙이고 아래위로 구리판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표면을 나무 박판으로 덮어 발전용 ‘에너지 마루'를 만들었다. 마루에 압력을 가하자 구리판과 전선으로 연결된 LED(발광다이오드)에 불이 들어왔다.

발전량은 길이 15㎜인 나무 조각 하나에서 0.85볼트 전압이 나오는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 정도면 원격 감지 센서를 작동시켜 홀로 사는 노인이 넘어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에너지 마루 면적을 실내 경기장이나 대형 무도장 정도로 키우면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연구진은 업체와 에너지 마루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버섯을 감염시킨 발사나무는 목질부가 분해되면서 밀도가 크게 낮아진다. 누르면 쉽게 압축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사이언스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

에너지 마루는 목재 건축물의 보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나 철재보다 목재로 건물을 짓는 일이 늘고 있다. 콘크리트나 철재는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나무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자란다. 목재로 집을 지으면 그만큼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전기까지 만든다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수 있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는 현재 목재가 주택 건축자재에서 15~28%를 차지하지만 2050년에는 40%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에너지 마루는 현재로는 발사 나무에서만 가능하다. 연구진은 앞으로 다른 나무에 어떤 버섯을 전처리하면 같은 압전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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