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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후쿠시마

강기헌 입력 2021. 03. 15. 00:13 수정 2021. 03. 15.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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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산업1팀 기자

10년 전 오늘.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2호기 격납용기 사이로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새어 나왔다. 사고 이후 현장에 남아있던 대응팀은 이날 철수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88시간이 지난 후다. 일본 공영 NHK는 2016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위기의 88시간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최후를 시간대별로 재연했다. 다큐멘터리의 뼈대는 현장 대응을 책임진 요시다 마사오 소장의 증언이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3시 35분. 11m가 넘는 쓰나미가 원전을 삼켰다. 지하에 있던 비상용 배터리와 전기시설이 물에 잠겼다. 전기가 차단되면서 원전 1·2호기의 모든 기능이 멈췄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원자로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는 순간에도 냉각장치를 잃은 핵연료는 스스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재(人災) 그 자체다. 도쿄전력 본사가 보낸 발전차는 차량정체로 사고 발생 8시간 후에야 현장에 도착한다. 현장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1분 1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현지 시찰을 나갔다. 쓰나미가 발생한 다음 날인 12일 오전 6시 자위대 헬기에 오른 총리가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 대응팀 사무실에 설치된 스피커에 도쿄전력 본사 관계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마스크는 현장에서 준비하셔야 합니다. 소장님께 대관업무도 부탁드립니다.” 요시다 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지시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12일 오후 3시 36분. 원전 1호기 건물 외벽이 내부 수소 폭발로 날아갔다. 14일 오전 11시 1분에는 원전 3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발생했다. 폭발로 원전 내 파이프 등 각종 시설은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다. 10년 전 후쿠시마의 실패를 두고 자연재해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 중대 사고에 대한 대책 미흡 등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도쿄전력의 정보 은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도쿄전력에 책임을 떠넘겼다. 자민당 집권기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런 사실을 고려해도 정치와 과학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은 선명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탈원전 정책이라고 다를까.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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