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일사일언] "우린 70대 신혼부부요"

윤치규 입력 2021. 03. 15. 03:00 수정 2021. 03. 15. 03:04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대출 창구에 나이가 지긋한 칠십대 남녀 두 분이 다정하게 손을 붙잡고 찾아온 적이 있다. 전세 자금 대출에 대해 알아보고 계셨는데, 상담 중에 신혼부부 혜택에 대해 물었다. 자제나 손주가 결혼하는지 되물으니까 수줍게 웃으며 맞잡은 손을 내게 보여주었다. 두 분이 바로 신혼부부였던 것이다. 신혼부부 혜택은 혼인한 지 5년 이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나이나 재혼 여부와 전혀 상관이 없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신혼 생활이 어떤지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두 분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척 설레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작년 겨울에 장모님이 생애 첫 소설집을 출간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책 표지에는 신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당당히 씌어 있었다. 장모님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소설 합평 수업에서 나이가 다소 많은 노년의 수강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겪었던 가슴 아픈 연애담을 소설로 쓰기 위해 수업을 신청했고, 또 다른 초로의 신사는 격동기에 겪었던 추억을 기록하고 싶다며 펜을 들었다. 은퇴 후에 소일거리나 취미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중에는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열정으로 그동안 미뤄두었던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진지하게 도전하는 분도 있다. 해마다 신춘문예에서 고령의 당선자가 심심치 않게 배출되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만년의 신인 작가들이 서점가를 휩쓸 날이 오게 될 것 같다.

‘신혼’이나 ‘신인’ 같은 단어는 나이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 인생의 어떤 시기라도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면 ‘신혼’이고, 해보지 않았던 분야에 도전한다면 ‘신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용기를 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다.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내게 전세 자금 대출을 신청하러 온 그 신혼부부처럼 누구나 ‘무척 설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도 항상 그런 설렘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