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을수록 늘어나는 유럽꽃게의 '히드라 역설'

한겨레 2021. 3. 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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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생물을 마구 잡아먹는 외래종을 아무리 잡아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예가 많다.

세계적인 침입종인 유럽꽃게를 대상으로 한 현장 연구에서 '죽일수록 늘어나는' 역설의 실태와 원인이 밝혀졌다.

유럽꽃게는 세계 100대 침입종의 하나로 대서양 일대가 원산지이지만 선박 평형수 등을 통해 세계 5개 대륙으로 번져 북미, 호주, 남아프리카, 동해 등에 서식한다.

연구자들은 이번 사례가 외래종에 맞서 자연자원을 관리할 때 '쉽지 않은 박멸을 고집하다가는 역습을 당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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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잡을수록 늘어나는 침입종 꽃게, '히드라 역설' 확인
90% 잡아내자 한 해 만에 30배 개체수 '폭발'..퇴치 고집 말고 기능 억제해야
세계 100대 침입종의 하나인 유럽꽃게. 토종 조개와 굴 등이 큰 피해를 일으키지만 무작정 퇴치에 나서다가는 역습을 당한다. 애드윈 그로숄츠,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제공

토종 생물을 마구 잡아먹는 외래종을 아무리 잡아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예가 많다. 세계적인 침입종인 유럽꽃게를 대상으로 한 현장 연구에서 ‘죽일수록 늘어나는’ 역설의 실태와 원인이 밝혀졌다.

유럽꽃게는 세계 100대 침입종의 하나로 대서양 일대가 원산지이지만 선박 평형수 등을 통해 세계 5개 대륙으로 번져 북미, 호주, 남아프리카, 동해 등에 서식한다. 미국에서만 이 외래종 게로 인한 조개 산업 피해액은 연간 2000만 달러(약 226억원)에 이른다.

유럽꽃게의 분포 해역. 파란색은 원산지 붉은색은 침입해 서식하는 해역 초록색은 잠재적 침입 해역 검은 점은 개별 목격지를 가리킨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에드윈 그로숄츠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교수 등은 2009년부터 해마다 이 게 5000∼1만 마리를 잡아 표시하고 놓아주었다가 나중에 다시 잡히는 비율로 개체수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모니터링해 왔다. 이와 함께 석호 한 곳에서는 포획틀을 이용해 유럽꽃게를 잡아내고 인근의 다른 4개 만에서는 포획은 하지 않고 개체수만 측정해 비교했다.

중부 캘리포니아 시드리프트 석호에서 외래종 꽃게 제거작업은 효과를 거둬 2009년 12만5000 마리이던 개체수가 2013년엔 1만 마리 미만으로 줄었다. 그런데 2014년 갑자기 유럽꽃게는 폭발적으로 늘어 30만 마리가 됐다. 전년도보다 30배, 제거작업을 시작하기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캘리포니아 시드리프트 석호에서 포획틀로 잡아낸 유럽꽃게. 포획만으로는 퇴치가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연구자들은 이런 일이 어업에서 이론적으로 예측하는 ‘과잉 보상’이라고 설명했다. 다 자란 물고기를 많이 잡아내면 자원 경쟁이 완화하는 등의 이유로 어린 개체가 급증해 결과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한다는 얘기다.

현장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미국 뉴욕주는 한 호수에서 외래종인 배스를 7년 동안 퇴치하려고 잡아냈지만 어린 배스가 더 많아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시드리프트 석호와 달리 제거작업을 하지 않은 인근 4개 만에서는 유럽꽃게의 개체수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침입종의 갑작스러운 증가가 기상과 해양 상태 변화가 아니라 퇴치 노력 때문이란 추정이 나온 근거였다.

전년도까지 성체가 대부분이던 꽃게 집단이 개체수 폭발이 일어난 해에는 대부분이 미성숙 개체였다. 연구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의 하나는 게나 새우 같은 십각류 성체가 어린 개체를 잡아먹는 동종포식 습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성체의 대부분을 잡아내면 어린 개체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과잉 보상을 일으키게 된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알을 잔뜩 매단 유럽꽃게 암컷. 연구자들은 성체의 번식력이 크고 동종포식 등을 통해 성체가 새끼를 강하게 조절하는 침입종에서 히드라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런 단기간 과잉 보상 현상을 ‘히드라 효과’라 불렀다. 뱀의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머리 2개가 생긴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따 온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사례가 외래종에 맞서 자연자원을 관리할 때 ‘쉽지 않은 박멸을 고집하다가는 역습을 당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준다고 밝혔다. 그로숄츠 교수는 “침입종 자체의 박멸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기능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강조했다.

다시 말해 외래종 개체수를 토종 생물종과 생태계 기능을 보호하기에 충분할 만큼 억제하면서 동시에 개체수 폭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현명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큰 비용을 들여 침입종을 퇴치하는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사업 담당자들에게 시급한 경고”라고 논문에 적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도입한 외래종 포식자인 블루길과 배스를 퇴치하기 위해 여러 지자체가 수매사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실렸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00395511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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