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배반포' 길러냈다..불임·발달과정 질환 연구 활용 기대

조승한 기자 2021. 3. 1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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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미국-호주 연구팀 연구 논문 2편 소개
호주 모나시대 연구팀이 사람의 피부세포를 이용해 만든 배반포의 모습이다. 배반포는 수정란이 분열하며 만들어진 50~100개 세포가 둥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으로 자궁에 착상하기 전 단계에 해당한다. 모나시대 제공

미국과 호주 과학자들이 사람의 피부세포와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간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기 전 단계인 배반포와 유사한 조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 세포분열을 일으켜 약 4,5일 뒤 공 모양의 배반포가 되는데 이는 나중에 혈액, 신경, 뼈 등 몸을 구성하는 22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세포들로 알아서 발달한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수정란을 직접 쓰지 않고 배반포를 만들어 사용할 수만 있다면 난치병과 불임 연구와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17일(현지시간)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인간 세포를 이용해 배반포 조직을 만든 미국과 호주 연구팀의 논문을 동시에 공개했다.

우준 텍사스대 분자생물학부 교수팀은 신체의 다양한 조직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인간다능성줄기세포(hPSC)’를 덩어리로 만든 뒤 배반포로 키웠다. 호세 폴로 호주 모나시대 발달생물학 및 해부학부 교수팀은 유전자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세포 기능을 다시 부여하는 '재프그래밍' 기술을 이용해 신체 조직을 연결하는 피부세포인 섬유아세포를 배반포로 바꿨다.

두 연구팀이 만든 인공 배반포는 모두 6~8일 후 인간 배반포와 비슷한 형태와 구성을 갖춘 조직으로 자랐다. 배반포 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현상도 그대로 확인됐다. 우 교수팀의 배반포는 형태와 크기, 세포 수와 구성 면에서 인간 배반포와 모두 유사했다. 배반포 속 줄기세포가 착상 전 단계로 분화하는 모습도 관찰됐다. ‘유도 배반포(iBlastoids)’라는 이름을 붙인 폴로 교수팀의 배반포도 배아로 자라나기 위해 속에 만드는 줄기세포와 바깥에서 이를 감싸는 영양막세포를 만드는 모습이 관찰됐다.

두 연구결과가 동시에 소개된 것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배반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배반포는 수정란에서 배아를 거쳐 인간으로 발달하는 초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반포에 문제가 생기면 태아에 장애가 남거나 배아가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는 유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란성 쌍둥이 중 3분의 2가 배반포 단계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인간 배반포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배반포는 인간 초기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이미 살아있는 생명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어 연구에 활용하기 어려웠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시험관 아기를 착상하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남은 배반포만 연구에 쓸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배반포의 발달 과정을 이해하면 인간의 발달 질환을 치료할 뿐 아니라 초기 불임을 막고 인공수정의 확률을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손미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융합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두 연구는 결국 다른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세포를 준비한 후 배반포로 키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공장기(오가노이드)와 같은 조직을 만든 경우는 있어도 다른 조직으로 다시 자라날 수 있는 조직을 만든 것도 처음이다. 손 책임연구원은 “단순한 체내 조직을 만든 게 아니라 하나의 개체까지 갈 수 있는 초기 단계까지 만들었다는 게 의미가 크다”며 “기존에는 인간 발달 단계를 조사할 수단이 없었지만 이를 활용하면 수정이나 착상, 발달 단계 질환을 고치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폴로 교수는 “인간 배반포를 쓰지 않고도 인간 발달 초기 단계와 선천성 질환의 원인을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처음으로 배반포를 만든 만큼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실제 연구팀이 세포를 이용해 배반포를 만들어 낸 비율은 18% 정도다. 줄기세포 연구 권위자인 마틴 존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연구결과에 대해 “발생률이 낮고 세포 기증자가 다르면 세포주 내 세포 구성 등에 아직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피터 러그건 영국 바브라함연구소 줄기세포 연구 책임도 “효율성이 떨어지고 세포가 자라는 속도가 배반포마다 다른 만큼 제작 과정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팀들이 만든 배반포 속 세포 구성은 매번 일정하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세포 형태도 존재하는 한계를 보였다.

배반포 연구가 아직 일부 생명윤리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도 과제다. 저자들도 아직은 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폴로 교수는 “배반포가 섬유아세포에서 만들어진 만큼 배아를 보호하는 투명대 같은 조직이 없다”고 말했다.  투명대는 난자를 보호하는 막으로 배아에도 남아 나팔관에 붙지 않고 자궁에 가는 것을 돕는다. 우 교수도 “배반포가 실제 배반포와 같지 않아 살 수 있는 배아를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푸지안핑 미국 미시간대 세포발달생물학부 교수는 네이처에 “점차 실험 조건이 최적화되면 인공 배반포가 실제 인간의 배반포에 가까워지게 되고 생명윤리적 질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책임연구원도 “배아는 관점에 따라 생명인지 아닌지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윤리적 공감대가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존슨 명예교수는 “과학자들은 선을 넘기 전 그들의 발견에 대한 대중의 승인을 원할 것”이라며 “과학자들이 기술의 한계와 이점을 명확히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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