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0채 줄테니 박물관 땅 다내놔라"..LH의 막무가내 토지수용

최희석,차창희,김형주 2021. 3. 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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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수용, 말뿐인 공익성 검증..과천 한 체험시설 가보니
개관 10년째 맞는 '아해박물관'
지역쉼터·전통보존 역할 해와
LH, 공공개발 강제수용 통보
박물관측 "검증 소홀" 행정소송
"아파트만큼 체험숲도 중요"
토지수용 법률만 110개 난립
전문가들 "독립 기구 필요"

◆ 신뢰 무너진 공공개발 (下) ◆

"박물관을 지켜서 전통을 이어나가는 게 제 책무입니다. 보상금으로 과천 아파트 10채를 준다고 해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올해로 개관 10년을 맞는 경기도 과천의 '아해박물관'은 어린이들이 전통 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팽이와 연날리기, 구슬치기 등 전통 놀이와 관련된 전시뿐 아니라, 주변에 4000여 평 규모의 아해숲은 참나무, 소나무, 철쭉, 진달래 등으로 이뤄져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문미옥 관장(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은 최근 박물관이 '반쪽짜리' 전시공간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민간 임대주택을 짓겠다며 박물관 건물을 제외한 야외 아해숲을 강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문 관장은 "LH가 아해숲에 대한 대토 보상을 통해 과천 아파트 10채의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면서 "보상받은 돈으로 다른 장소에 박물관을 지으라고 하는데, 그럴 만한 땅도 주변에 찾기 어렵고 아해박물관 자체가 역사이고 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LH가 토지 수용 계획을 짜면서 '공익성 검증'을 소홀히 했다고 주장한다. 넓은 땅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한 숲체험장은 사실 수익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아이들에게 전통 놀이문화를 체험토록 하는 공익적 목적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데, 이를 갈아엎고 주택 단지를 짓는 것이 공익 차원에서 합당하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 관장은 "숲체험장과 박물관은 유기적으로 기능하면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데 숲을 없애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발했다. 아해박물관을 지키기 위해 문 관장은 2016년부터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과천시 등 관련 기관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LH가 아파트를 짓겠다며 강제 수용을 통보한 과천시 주암동 소재 아해숲. 이곳은 아이들이 박물관을 둘러본 후 줄다리기, 고누놀이 등 전통문화를 체험하던 공간이다. [한주형 기자]
현행 토지보상법상 국가 기관이 공익사업을 위해 민간 토지를 강제 수용하려면 먼저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고, 토지 수용 사업의 공익성 검증을 위한 견제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토지보상법이 아닌 다른 법에 의한 인허가 때는 공익성 여부를 검토하는 협의 절차가 2019년에야 시행됐다. 그전에는 토지보상법이 아닌 타 법에서 인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공익성'이 제대로 검증조차 안 되고 수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토지보상법' 외에 민간 소유의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도록 한 개별 법률은 무려 110개에 달한다. 이 중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물류터미널사업 및 물류단지 개발사업이나 '자동차관리법'에 따른 자동차서비스복합단지 개발사업,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원조성사업 등 사유재산을 강제 수용할 정도의 '공익성'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 법률도 많다.

토지보상법이 아닌 다른 법에 의해 토지를 수용할 경우 공익성 검증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석호영 한국법제발전연구소 연구위원은 2년 전 관련 논문에서 "개별 법률에서 공익사업에 해당되는 것으로 의제 처리하는 것이 광범위하고 불명확하다"고 꼬집었다.

불투명한 '공익성 심의 절차' 개선을 위해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심의 과정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심의 내용과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토지보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중토위 위원장은 국토부 장관이 아닌 정무직 공무원이 맡도록 했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정호윤 국정리더십포럼 대표는 "최소한 중토위가 국토부 소속이 아닌 감사원이나 권익위 소속으로 들어가야 제대로 된 공익성 검증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제 수용으로 인한 토지소유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절차의 개선도 필요하다. 사업이 확정되기 전에 피수용자를 심의 과정에 참여시키고, 사업이 결정되더라도 뒤집기가 가능하도록 심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재는 국토부가 감정평가법인과 중토위 예산 편성, 집행 등의 권한을 행사해 사실상 관료들이 좌지우지하는 구조다.

[최희석 기자 / 차창희 기자 /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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