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빌 게이츠가 쏘아올린 '탄소중립'

김주영 |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기후변화전문관 2021. 3.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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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행보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 재임 기간만큼 지연된 기후변화 대응 시간을 만회하고자 민·관·산·학이 움직이고 있다. 가장 먼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파리협정 복귀’라는 행정명령에 잉크를 묻혔다.

김주영 |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기후변화전문관

2015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재임 당시 체결된 이 협약은 기후위기로 심화될 전 지구적 재앙을 막고자 산업화 시대 대비 평균기온 1.5도 이상 상승 억제를 목표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감축을 국가 목표로 채택·이행한다는 국제적 합의다. 이를 달성하고자 현재 한국 출신 이회성 의장이 이끄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주문하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는 가히 기호지세다. 저명한 기후과학자 마이클 만, 퓰리처상에 빛나는 엘리자베스 콜버트, 그리고 삼척동자도 아는 빌 게이츠까지 최근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이 가운데 게이츠는 한국에 ‘원전 vs 탈원전’ 논쟁을 재점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1963년 DDT 살충제 문제를 조명해 세계 환경정책 판도를 엎어버린 레이첼 카슨 못지않게 현재 기후변화 메신저로서 주목받고 있다.

게이츠가 누군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이자 세계 재산순위 3위로 은퇴 후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국가 규모의 예산을 굴리며 국내외 자선활동을 벌이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출중한 개인능력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빅데이터팀을 거느린 그답게 신종 바이러스 대유행과 방역체계 마비도 이미 10여년 전에 예측했다. 그의 통찰력이 너무 뛰어나 음모론에 시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그가 세계에 ‘탄소중립’ 불씨를 댕겼다. 모두가 테슬라의 전기차나 화성 이주용 스페이스X에 열광할 때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인간활동의 문제점을 과학·통계 데이터를 토대로 조목조목 지적했다. 수송분야 못지않게 중요한 ‘시멘트·철강 산업은? 제조업은? 농업은?’ 세계 과학자들이 탄소배출 제로 데드라인을 2050년으로 못 박아뒀음에도 좀처럼 줄지 않는 온실가스 통계치와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게이츠는 이해가 안 간다는 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은 세계 온실가스 8위 배출국이다. 섬나라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미국, 중국, 독일과 같은 규모와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하려니 민·관·산·학 모두가 고역이다. 그럼에도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2050 탄소중립 선언을 요청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응답하여 전 영역 ‘탄소중립’을 선포한 것은 불가피한 과제임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따라 세계 경제 판도가 새로 짜질 것임은 자명하다. 어쩌면 유엔의 17개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s)조차 2031년부터는 기후변화 중심으로 재편될지 모른다.

빌 게이츠는 기술낙관론자답게 현 코로나 유행이 백신 보급으로 해결되듯 기후재앙도 기술로 해결된다고 봤다. 그러나 단서를 달았다. 복잡다단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선 하나의 혁신기술로는 힘들고 인간활동 전체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원전·탈원전은 여러 기술 대안 중 하나로, 그조차도 각 국가 상황에 따라 면밀히 살펴야 함을 강조했다. 핵심은 얼마나 인류가 허리띠를 졸라 맬 수 있는가에 달렸다. 유엔 IPCC 보고서는 “기술적으론 가능하나 전례없는 탈화석연료 경제사회로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탄소중립의 공은 과학기술에서 사회문화로 넘어왔다. 이제부턴 정치와 시민사회 영역이다.

김주영 |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기후변화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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