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Koreangry'로 미국 사회의 차별을 질문하다

임재환 2021. 3. 22. 16: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계 미국인의 역사를 다룬 만화 'Koreangry'가 미국 한인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학생 때 미국에 이민을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겪었던 작가는 이민자의 삶을 표현한 만화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아시안계 미국인 혐오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 등의 사회적 이슈를 조명하면서 비한인 커뮤니티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정은수 작가와 줌을 통해 화상 인터뷰했다.



◆Koreangry로 활동하는 정은수 작가 ©Eunsoo Jeong


Q. 미국 이민 배경은?


20여 년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9.11 사건이 있었던 직후 미국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엄마께 전화를 걸어 미국에서 저를 공부시키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당시 한국에서의 삶이 그리 좋지 않아 중학생 때 엄마의 추천으로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그때는 너무 어려 잘 몰랐지만, 관광객 신분으로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립 중학교에 등록이 됐고, 이후 미등록 이주 아동 (Undocumented Children)의 신분으로 계속 미국에 거주했다. 당시에는 영어도 잘하지 못해 한 학년 아래로 입학했다. 단일민족 한국 사회에서 살다가 미국의 아시안계 소수자가 된 것이다. 다니던 중학교 전체에 한국인이 한 명뿐이었던 게 기억난다.


미국에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살아가는 한인, 아시안계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16년에는 약 7,000여 명의 미국 내 한인이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많은 미등록 이주아동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신의 신분을 부끄럽게 생각해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주변인들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신분을 잘 모르고 지내기도 한다.



Yellow Peril, Rise My Asians ©Eunsoo Jeong


Q. ‘차별’을 정의한다면?


불공평하게 사람을 다루는 게 차별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별’이란 단지 들리는 단어나 보이는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 일상에서의 선호도 또한 무의식적인 차별의 일부다. 어떤 것을 다른 한 가지에 비해 더 선호한다면 그 안에 편견이나 차별의 면모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제일 최근 예시를 들자면 영화 <미나리>가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영화에 수많은 아시안과 아시안계 미국인 배우들이 연기했고 아시안계 미국인 영화 제작자들이 참여한 영화를 단지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차별적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될 수도 있지만 차별에 반대하고 계속 저항해야 차별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ypes of Reactions When I Call Out Racism. ©Eunsoo Jeong


Q.아시아계 여성으로 미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안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해 왔다. 영화 속 착하고 모든 걸 이해해주는 여성 또는 엄청나게 성적으로 묘사된 매춘부나 성 노예뿐 아니라 드세다는 표현의 ‘타이거 맘,’ ‘드래곤 레이디’라는 표현도 아시안 여성이라 붙여진 차별적 수식어다.


나도 한동안 이 표현들이 마냥 웃기다고만 생각했고 나에게 여성 비하성 표현을 하는 친구가 있어도 그냥 웃어 넘겼다. 하지만, 그 우스갯소리가 나를 표현한 것인지 되뇌어보니 그것이 나와 동일시될 수 없음을 인지했다.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캣 콜링 (cat calling)과 같은 성희롱을 당하거나 친구들과 있을 때 나의 인종 때문에 내가 따로 남겨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신기하게도 나와 나의 동료 아시안계 여성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흑인의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아시안계 남성 또는 일반 백인 남성이 같은 말을 할 때보다 더 많은 반발 메시지를 받는다. 아시안 여성이 온라인에서 협박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 또한 성별과 인종에 따른 차별이라 생각한다.


Q. Koreangry는 어떤 만화인가.


Koreangry 속 캐릭터는 나지만 내가 아닌 존재다. 앞서 말씀드린 다른 미등록 이주 아동들처럼 평생 나 자신을 숨기고 살아오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이민자로서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때부터 미등록 이주아동과 이민자 관련된 콘퍼런스도 다녀오고 다양한 활동들에 참여하며 나의 존재를 다시 찾아갔다. 


첫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소속감도 사라진 이후였다. 이런 어려운 순간들이 나의 다양한 정체성을 질문하게 했고 결국 나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Koreangry’라는 만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나와 나의 생각을 반영한 만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초밥집에서 일하며 당했던 차별들, 새로 배우게 된 사회적 이슈들 등 공적 자리와 가족들 앞에서 말하고 싶었지만 억눌렸던 것들을 간단히 만화로 표현했다. 사람들이 캐릭터가 ‘정은수’냐고 묻는데 나는 ‘정은수'를 투영한 존재라고 설명한다. 캐릭터가 완벽히 ‘정은수’ 그 자체가 아니어서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마 그 캐릭터에 관객들이 자신을 반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공감대가 더 많이 형성되는 것 같다.


Q. Koreangry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일상에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다룬다. 사람들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주제다. 예를 들면 미국 이민 세관 집행국 (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ICE) 요원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대처 방법과 성 소수자들을 소개하는 교육 자료 등이 있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만화를 더 많이 제작한다. 


흑인과 한인들 간의 역사를 접한 후 그 두 인종 간의 갈등이 심하다는 걸 알게 됐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한인으로서 흑인들과 연대함이 왜 중요한지 다뤘다. 일반적으로 느끼는 여성성을 벗어나 내가 배웠으면 하는 사회적 이슈를 내 작업에 포함한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Eunsoo Jeong


제작 과정은 즉흥적이다. 글을 먼저 쓸 때도 있고 스케치를 먼저 하기도 한다. 만화 캐릭터의 포즈를 그리고 직접 소품을 만든 후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는다. 컴퓨터로 사진을 옮겨 내 파트너와 함께 만화로 사용되면 좋은 사진들을 선택하고 어울리는 글을 고른다. 


제작 기간은 짧으면 3시간에서 길면 며칠, 심하면 일주일이 걸리기도 한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직접 만들어보니 제작 과정이 오래 걸려 고통스럽거나 막상 만들면 별로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작업을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Q. 사회 다양성 교육을 위한 만화의 중요성은?


만화는 소프트 파워다. 무거운 텍스트가 아니다. 설명만 있는 글이 아니고 시각적으로도 보고 읽는 즐거움이 있고 때때로 웃음도 제공한다. 내가 무거운 주제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만화를 사용한다. 코로나 전에는 강연 자리를 갈 때마다 나를 소개하고 나의 이민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표현한 미니어처 소품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확실히 말로만 할 때보다 만화적 요소를 함께 선보이면 사람들이 소화하기 쉽다고 한다.


Q. 앞으로 계획은?


‘가짜’라는 주제로 10번째 만화 잡지를 선보인다. 한국에 계신 엄마가 학교에 나를 빨리 입학시키려고 진짜가 아닌 생일을 만들었다. 또한 이민자로 오랫동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이 있을 때마다 ‘가짜’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러던 중 한국계 미국인들의 역사를 접하고 난 후 나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 인지하게 됐다. 지난 6개월 동안 책을 읽고 연구를 하며 한국계 미국인들의 역사를 알아갔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었지만 그 전의 역사는 잘 몰랐다. 1900년대 초 미국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들부터 현재 사업에 종사하는 한인들까지 한국계 미국인들의 역사를 배우며 내 인생에 비었던 한 부분을 채운 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찾은 정보들을 기반으로 타임라인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살며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만화로 만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LA 공립 도서관 강연에 초대받아 곧 나의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을 예정이다. 앞으로도 미국뿐 아니라 다양한 차별과 사회적 이슈를 질문하고 교육하며 차별 없는 사회를 형성하는데 도움되고자 한다.


미국 = 임재환 글로벌 리포터 jaehwanlimstudio@gmail.com


■ 필자 소개 

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및 청년 기자

현 Los Angeles Contemporary Archive(LACA) 자문위원

UCLA 다학제적 예술 석사

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문화분과 위원


Copyright © E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