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중앙시평] 맑은 공기에 필요한 혁신

입력 2021. 03. 23. 00:38 수정 2021. 03. 23.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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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없이 부족한 미세먼지 해결 노력
생산과 소비 규제는 근본대책 안돼
탄소제로, 기술 혁신에 해법있어
정치적 관심과 정부 역할이 필요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다시 미세먼지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산책길에 연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한 먼발치의 산을 보며 잠시 코로나 블루를 벗어나 보려 했지만 뿌연 장막에 더 우울해진다. 아침마다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자니 이러다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마스크를 벗기 어렵겠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는 화석연료 발전소, 제조업의 생산 공정, 이동 수단의 배기가스 등에서 발생한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데 필요한 생산과 소비 활동을 위해 대기 오염을 감수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기 오염의 대가는 상상 이상이다. 최근 하버드대 연구팀은 초미세먼지로 인해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1천만 명이 조기 사망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년간 발생한 코로나 사망자 수보다 4배나 많다.

하지만 대기 오염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은 덜 시급해 보인다. 한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악인데도 말이다. 대기 오염의 영향이 점진적이라 당장 실효적인 대책이 없어도 표심의 영향이 없다고 믿는 것일까. 즉각적인 피해가 없는 소비자와 기업 역시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은 낮다. 이타심이나 사회적 책임감이 높아야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미세먼지와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자동차를 덜 타야 하고 공장 가동을 줄여야 하는데 물질적 풍요를 자발적으로 줄이면서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자발적 수요 감축이 어려우므로 많은 환경 정책은 생산과 소비 활동을 직접 규제하지만, 경제와의 상충 관계 때문에 규제 수준의 한계가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수요를 제한하는 정책은 환경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미세먼지와 탄소배출을 어느 정도 줄이는 효과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적극적인 해법은 공급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기술혁신이다. 기술혁신은 삶의 편리함을 유지하면서 대기 오염을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빌 게이츠는 최신 저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소극적인 목표로는 기후재앙을 피할 수 없으며, 탄소배출 제로의 적극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에너지뿐만 아니라 제조, 사육과 재배, 교통과 운송, 냉방과 난방 등 전 분야의 기술혁신을 통해 ‘그린 프리미엄’, 즉 청정 기술의 가격과 비용을 낮춰 시장에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제조, 수송, 난방 등의 에너지원을 최대한 전기로 바꾸고, 청정한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기술혁신을 시급한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후 선진국들은 탄소 제로 실천을 위해 화석연료를 친환경 대체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에 주력해왔다. 탄소배출 7위 국가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한국은 탈원전 기조하에 재생에너지에 집중해왔다. 탄소배출 측면에서 효율성이 가장 높은 것은 원자력 발전이지만, 희박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원전 사고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선택된 국정과제이다. 그렇다고 재생에너지가 탄소 제로 목표에 완벽히 부응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광 발전을 위해서는 설비 투자와 부지가 필요한데, 여기서 유발되는 온실가스와 환경 파괴가 만만치 않다. 풍력 발전 역시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문제가 있다. 재생에너지가 미래 급증할 전력 수요를 감당할 만큼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대체에너지의 선택지가 좁은 것은 기술혁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혁신은 낮은 성공 확률에도 불구하고 인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투자이다. 무분별하게 태양광 발전을 보조하는 것은 결코 혁신이 아니다. 태양광 설비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과 그로 인한 간접적인 건강 위험까지 없애는 노력이 진정한 혁신이다. 또한 작은 위험 때문에 원전을 포기하기보다는 원전 위험 제로 기술에 도전하는 것이 혁신이다. 불확실과 부작용을 이유로 혁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율 주행이나 전기 자동차의 상용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혁신의 시작은 대학과 기업이 아니라 정부와 정책이다. 아무리 유익한 아이디어라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들고 성공 확률이 낮으면 기업이 발 벗고 나서기 어렵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성과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합리적인 규제와 보조금 정책은 시장에서 생산과 소비 방식의 혁신적인 선택을 유인할 수 있다. 따라서 기술혁신에서 정부의 철학과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중요성에 비해 우리의 환경 정책은 혼란스러운 정보 속에 명확한 비전과 대책 없이 불필요하게 양분되어 있다. 좀 더 신중하고, 투명하고, 과학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빌 게이츠는 저서에서 “유권자들이 한목소리로 기후변화 정책을 요구할 때 정치인들은 움직인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부는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기업 활동을 자극하고 시장을 유인해야 할 것이다. 내년 봄에는 더 맑은 공기를 마셔보길 기대해 본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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