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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계 드러낸 사용후핵연료 권고안

입력 2021. 03. 23. 04:06 수정 2021. 03. 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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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동국대 교수·창의융합공학부)


중립적 전문가들로 구성했다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사용후핵연료의 근본 해결책 근처에도 못 가고 월성원전 임시저장소(맥스터) 증설을 위한 편파적 여론조사나 하더니 결국 내놓은 권고안이란 게 절차와 의견 수렴 법제화, 독립적 관리기구 신설, 동일 부지에 중간저장·영구처분시설 건립이다. 거창한 이름을 달고 3년에 걸쳐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놓은 권고가 고작 이 정도라니 실망이다. 정작 중요한 기술적 쟁점은 빠지고 선언적인 것뿐이라 허탈하기 그지없다.

전 세계의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을 결정할 기술 기반 자체가 없다. 차세대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비현실적인 연구에 나랏돈을 낭비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련 법·제도가 앞선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일본은 물론 심지어 독일도 한 치를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적 난관과 정치적 이기주의 때문이다.

미국은 오지 중 오지인 네바다주 유카마운틴의 심층처분과 관련해 20년을 연구하고 수조원의 조사연구비를 탕진한 끝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지진 활동 증거도 이유지만 네바다주 선출 정치인들과 민주당 반대가 주요 이유다. 책임기관인 에너지부(DOE)는 궁여지책으로 민간회사 홀텍이 텍사스주에 최대 규모의 통합식 임시보관시설을 만들도록 해 전국의 사용후핵연료를 이전 보관하려 한다. 영구처분시설이란 오해를 불식하고 비용을 줄이려 지상에 건립하려 한다. 하지만 영구시설은 부지뿐 아니라 방식도 미정이다. 프랑스나 독일도 지역 반대에 부딪쳐 후보지 선정은 진행이 안 되고 있다.

재검토위가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을 제안했는데 중립·독립기관이라고 만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보면 그것도 해법이라 보기 어렵다. 원안위는 정권 눈치를 보는 사무처가 중심이고, 정부와 여야가 추천한 인사들이 힘겨루기하는 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위원회도 공무원 자리나 만들고 중립을 빌미로 핵전문가들은 배제하고 문외한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간저장 자체도 문제거니와 이를 영구처분 부지에 둔다는 것은 최악의 착각이다. 중간저장은 사실상 영구처분인데 어느 지역이 받아들이겠는가. 게다가 발전소 내에 임시저장시설,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장 이렇게 3중으로 만들어 방사능 덩어리를 옮기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중복이라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사용후핵연료를 보낼 곳이 없으면서 원전 해체 분야도 산업이라 과장하는 것도 문제다. 해체 원전들도 부지 내 임시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조차 월성에서 보듯 지역주민 반대가 명약관화하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우선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부지는 지방에 둬야 한다는 인식부터 불식시켜야 한다. 수도권도 후보지의 예외가 돼선 안 된다. 이익도 손실도 나눠야 공정하다. 원전 부지에는 짓지 않는다는 걸 법으로 정하면 더 공평할 것이다. 방식에 있어서도 중간저장이든 영구처분이든 원전 외부는 극히 요원하니 늦었어도 제대로 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전 지연 해체+사용후핵연료 최대 50년 소내 임시저장+30년 프로세스 처분 부지 마련’이 타당하다고 본다.

중간저장은 포기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영구처분 전까지 원전 부지의 분산 보관이 그나마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다. 사용후핵연료가 남아 부지 복원도 못하니 원전 해체도 즉시가 아닌 30년 이상 지연 해체로 가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향후 최소 10년간은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전문가들, 이해 당사자 그리고 일반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참여해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하고 종합할 실질적인 토론의 장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과연 누가 이끌어야 할지 내게도 아직 답이 없다.

박종운(동국대 교수·창의융합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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