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승계' 정치권 약속은 '공약(空約)'으로..텐트 친 LG 청소노동자

전현우 2021. 3. 2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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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 기온이 3도 안팎까지 내려갈 거라고 예보된 어제(22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인근 보도에 텐트가 하나둘씩 설치돼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40개인 텐트 주변에는 'LG 트윈타워는 청소노동자 집단 해고를 철회하라'는 등의 현수막들이 걸렸습니다.

■ 희망의 새해 첫날…그들은 수년간 일했던 직장을 잃어

2021년 1월 1일.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 82명은 소속 회사인 '지수아이앤씨'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고용 승계 거부'였습니다.

LG트윈타워를 관리하는 LG 그룹 계열사 '에스엔아이코퍼레이션'은 지난해 말 '지수아이앤씨'와 LG 트윈타워 청소 용역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했습니다. 기존의 관례대로라면 용역 업체가 변경되더라도 기존 업체의 노동자들은 그대로 새로운 업체에 고용이 승계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LG 트윈타워의 청소 용역을 맡은 '백상기업'은 기존 청소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보장할 수 없다고 나섰습니다. 새롭게 청소 노동자들을 공개경쟁 채용하겠단 거였습니다.

협상 시도에도 '고용 승계'는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LG트윈타워에서 길게는 10년 넘게 일했던 청소 노동자 80여 명은 '실업자'가 됐습니다.

올해 1월 1일, 전기와 난방이 끊어지고 도시락 반입까지 막히자 항의하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 해고 노동자 98일째 "고용 승계하라"…불매 운동도 이어 나가

해고된 청소노동자 중 30명은 집단 해고가 가시화된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지금까지 LG트윈타워 인근에서 고용 승계 촉구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LG가 '사실상의 원청'이라며 면담과 교섭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됐습니다. 새해 첫날이자 해고 첫날인 1월 1일엔 노조는 LG 측이 LG트윈타워 로비 농성장의 전기와 난방을 끊고 도시락 반입까지 막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또 지난 10일엔 노조와 사측 경비 인력 간 몸싸움이 벌어졌고 노조 조합원 1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는 '사회적 압력'만이 이번 사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라며 LG 제품 불매 운동을 지난 1월부터 지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오늘(23일)로 청소노동자들이 LG트윈타워에서 농성한 지 98일이 됐습니다.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는 LG 트윈타워 노동조합


■ LG 측 "타 사업장 전환배치" vs 노조 "트윈타워에서 계속 근무"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노사는 고용노동부의 주재로 1월과 2월에 교섭을 벌였습니다. LG트윈타워를 관리하는 '에스엔아이코퍼레이션'은 "LG트윈타워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 노동자 30명 전원을 인근에 있는 LG마포빌딩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만 65살 이상인 청소 노동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제안했습니다.

다른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하는 이유로는 "트윈타워는 올해부터 새로운 건물 미화업체가 장애인 근로자 30명을 포함해 90명을 신규 채용해 청소 용역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소 노동자들은 "'원래 일하던 일터'인 트윈타워에서 계속 근무하게 해달라"면서 "(LG마포빌딩으로 전환 배치는)LG트윈타워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을 분리·고립시켜서 멀리 있는 낯선 사업장으로 보내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와해를 시킬 수 있는 것이다"면서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LG마포빌딩에도 일해왔던 노동자들이 있는데 LG트윈타워는 안되고 LG마포빌딩만 된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좌)용역 근로자 근로 조건 보호 지침, (우)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정책 공약


■ '고용 승계 의무화' 공약(公約)했지만 공약(空約)돼

사실 정부·여당은 '고용 승계 의무화'를 이미 약속했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는 2019년에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새 업체와 용역 계약을 체결할 때 '(고용 승계)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적용 대상은 공공기관일 뿐이어서 민간기업엔 효력이 '사실상' 없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약속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더불어민주당의 21대 총선 공약에서도 '영업양도 등 사업이전 시 고용승계 제도화로 하청업체 노동자의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을 보호하겠습니다'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 논의만 이어지고 있을 뿐 결실이 없는 상태입니다.

정부·여당의 '약속'이 '공약(空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뿐 아니라 OB 경인직매장,포스코 성암산업, 하이트진로 서해인사이트 등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은 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고용 승계가 안 돼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22일) 오후 5시 30분쯤 LG트윈타워 인근에 설치된 ‘행복한 고용승계 텐트촌’


■ 청소 노동자 "시민들과 행복한 고용승계 텐트촌 만들 것"

결국,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시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어제(22일)부터 LG트윈타워 인근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싶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복한 고용승계 텐트촌'을 만들겠다고 한 것입니다.

LG트윈타워 노동자들과 힘을 보태고 있는 황지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차장은 "파업 농성 100일이 되는 모레(25일)까지 텐트 100개를 쳐 LG 측에 '사회적 압력'을 강화하겠다"면서 "텐트촌은 고용 승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어지며 여의도 일대에서 '촛불 투쟁 문화재' 등을 이어가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전현우 기자 (kbs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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