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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찍어누른 전기요금..생색은 정부가, 부담은 국민이 진다

김기환 입력 2021. 03. 24. 05:02 수정 2021. 03. 2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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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두부(전기)가 콩(원가)보다 싸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야 하는 상황, 딱 한국전력 얘기다. 그런 상황이 잠깐이라면 어찌어찌 버티겠지만, 길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규제 권한을 가진 정부가 마침 '올해부터 콩값 등락을 두부값에 반영해 준다'고 나선 만큼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여지없이 공수표(空手票)로 드러났다. 22일 한전의 2분기(4~6월) 전기요금 동결 조치를 빗댄 얘기다.

전기요금 인상을 누르겠다는데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전은 각종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2013년 11월 이후 7년 4개월 동안 한 번도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다. 시장은 그동안 꾸준히 내린 전기요금에 이미 면역됐다. 혜택받을 수 있는 전기요금 규모도 4인 가구 기준 월평균 최대 1050원 수준이다. 전기요금이 버거워 폭염에 냉방기기도 마음껏 못 트는 저소득층에게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가구당 따졌을 땐 크지 않은 혜택도 한전 입장에선 수천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따지고 보면 혜택도 아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이라서다. 한전은 정부 지분이 절반 이상인 전력 공기업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해를 제외하고 연속 수조 원대 적자를 냈다.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값싼 원자력ㆍ석탄 발전 대신 LNGㆍ신재생에너지로 전력 공백을 메운 영향이다. 한전이 입는 손실도 결국 나중에 국민이 떠안아야 할 짐이다.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생색은 정부가, 부담은 한전(국민)이 지는 꼴이다.

무엇보다 원칙을 흔들었다. 정부가 올해 처음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는 연료비 변동분을 발전 원가에 제대로 반영하자는 취지다. 경제 원리에 충실한 제도인데도 도입하자마자 무력화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비상시 조정 요금 부과를 유보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들었다. 당장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심 악화를 우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요금 올라서 좋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상 요인이 수두룩한데 언제까지 받아들 청구서를 마냥 뒤로 미룬 채 요금을 찍어눌러야 하나. 더욱이 한전은 외국인 투자 지분율이 16%가 넘는 거래소 상장기업 아닌가. 한전 주주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상장 폐지하자", "배임 소송을 하자" 등의 격한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줄곧 전기요금 ‘현실화’를 주장했지만 이번에도 좌절한 한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요금 인상) 유보 통보를 받았다”란 해명을 내놨다. '통보'라니, 마치 “부당하지만 꾹 참는다”란 얘기로 들렸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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