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선철 위원의 반론에 부쳐: 텍사스 손가락질할 여유가 없다 / 석광훈

한겨레 2021. 3. 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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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기고에 대한 반론은 미국 텍사스주의 정전사태가 전력산업 민영화의 결과로 전력망에 대한 규제와 감독도 시장에 떠넘겼고, 단기적 시장경쟁에 밀려 기후변화에 대한 중장기 대비를 못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미국의 다른 주들처럼 텍사스의 전력산업은 애초부터 민간이 주도해왔고 1999년 지역별 민간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개방하였을 뿐 민영화라는 개념은 맞지 않다.

최근 텍사스 의회는 정전사태에 대한 전력시장 규제기관인 공공사업위원회(PUC)의 책임을 추궁해 위원 3인의 전원 해임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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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훈ㅣ녹색연합 전문위원

필자의 기고에 대한 반론은 미국 텍사스주의 정전사태가 전력산업 민영화의 결과로 전력망에 대한 규제와 감독도 시장에 떠넘겼고, 단기적 시장경쟁에 밀려 기후변화에 대한 중장기 대비를 못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미국의 다른 주들처럼 텍사스의 전력산업은 애초부터 민간이 주도해왔고 1999년 지역별 민간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개방하였을 뿐 민영화라는 개념은 맞지 않다. 결국 반론은 경쟁체제와 규제·감독을 모두 원인으로 주장한 것인데, 좀 더 분명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지면 제약상 국내의 사례를 들어 재반론하고자 한다.

우선 경쟁체제가 원인인지부터 따져보자. 국내의 경우 공기업인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이 전력을 공급하고 있지만, 2011년 불과 섭씨 33도의 가을 늦더위에 9·15 정전사태를 일으켜 전국 753만호의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리원전 총 5기가 태풍 ‘마이삭’에 변전시설이 고장 나 모두 정지되기도 하였다. ‘치열한 경쟁’과 상관없는 국내 공기업들도 약간의 이상기후에 정전과 발전소 정지를 면치 못한 것이다.

당시 규제기관들은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자. 국내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력시장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전안전을 규제한다. 9·15 정전 당시 산업부는 이명박 정부의 “원전으로 고유가 극복”이라는 구호에 따라 수년째 원전이용률 극대화와 전기요금 동결을 추진하던 차였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인위적 전기요금 동결은 산업, 가정 모든 부문에서 전기 가열, 건조, 난방 수요를 급증시켰고, 겨울 전력수요가 여름수요까지 앞지르게 만들었다. 발전소들은 정기적으로 정비가 필요한데, 발전사들은 여름이 끝나자마자 폭증하는 겨울수요에 대비해 서둘러 대형 발전소들을 정지시켜 정비하던 중 늦더위와 수요 증가로 정전을 맞이한 것이다. 시장수급 상황과 무관한 인위적 요금억제는 이미 복잡하고 거대해진 국내 전력시장에 맞지 않았고, 이상기후에 취약점만 만든 꼴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고리원전은 이미 2003년에도 태풍 ‘매미’에 4기가 정지되는 사고를 겪었기에 지난해 반복된 바닷물에 의한 변전시설 고장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무사안일주의의 결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침수대책을 포함해 이른바 ‘스트레스 테스트’를 요란하게 진행했지만 태풍만 오면 원전이 정지되는 허술함은 그대로 남아 있던 것이다.

최근 텍사스 의회는 정전사태에 대한 전력시장 규제기관인 공공사업위원회(PUC)의 책임을 추궁해 위원 3인의 전원 해임을 이끌었다. 정전사태 기간 도매전기요금의 폭등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 지금도 논쟁 중이다. 사실 텍사스 도매전기시장은 소매요금과 또 다른 주제로 별도 논의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풍력발전의 빠른 시장진입을 견인해 텍사스 전력공급의 23%까지 늘린 반면 석탄화력을 지난 5년 동안 5GW(기가와트) 넘게 폐쇄시켰다. 텍사스 정계가 재생에너지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경쟁전력시장의 역동성은 막을 길이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재생에너지 증가와 석탄화력의 폐쇄가 잘 진행되더라도 기후변화 적응을 등한시할 경우 막대한 비용 발생이 불가피함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2011년 국내 9·15 정전사태의 경우 753만 피해자 중 증빙자료를 구비한 9천여 소비자만 피해보상을 신청했고, 정부는 그마저도 신청액의 12%만 보상하는 데 그쳤다. 경쟁체제이든 공기업이든 규제기관이 무능하거나 태만하면 소비자들이 구원받을 길은 별로 없다. 케케묵은 ‘시장담론’은 이미 심각해진 기후재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회구성원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게 만든다. 우리가 텍사스를 ‘손가락질’하며 여유 부릴 상황이 전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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