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행정 혁신 통해 에너지 분야 전문인력 길러낼 것"

이종승 기자 2021. 3. 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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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 설립 주도 김종갑 한전 사장
한국에너지공대는 대학 위기 시대에 대학의 모델을 만든다는 역발상에서 출발한다. 도전, 모험, 창의성, 독서를 강조하는 한국에너지공대의 교육방향에는 김 사장의 교육관이 투영돼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전은 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의 내년 개교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한전은 한국에너지공대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하고 이에 걸맞은 학생 역량을 키울 것임을 자신하고 있다. 학령인구 부족으로 지역 대학 통폐합이 거론되는 와중에 공기업인 한전의 대학 설립에 비판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성장 동력 역할을 할 대학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한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면 대학과 산업이 시너지를 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한국에너지공대가 제격이라는 얘기다. 한전은 교육과 연구가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한국에너지공대를 운영할 계획이다. 동아일보는 김종갑 한전 사장을 11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만나 대학과 교육의 미래에 대한 열띤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너지공대 설립을 주도한 김 사장은 정치권 학계 지역사회를 향해 “대학은 역량을 키울 때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1학년도 대입에서 상당수 지방대는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대학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거꾸로 대학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반대 의견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최고급 에너지융복합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대학은 현재 거의 없다. 산업계는 에너지 기술인력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2030년 새로 생길 에너지시장 규모는 17조 달러 수준이다. 이 시장을 선점하려면 기술 혁신과 에너지 전문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 기존 대학의 학사운영과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 방식으로는 이 같은 산업구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에너지공대는 교육 연구 행정 등 대학의 모든 부문을 혁신해 학령인구 급감시대에 왜 새로운 대학이 필요한지 증명할 것이다.”

기존 대학의 혁신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에너지 분야 성과를 내려면 한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예를 들면 그린뉴딜의 핵심인 풍력에너지 기술 수준은 선도국보다 우리가 4년 정도 뒤져 있다. 태양광, 연료전지, 지능형 전력망, 건물 에너지 효율 등도 마찬가지다. 반면 후발국과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대학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한국 대학에 실망한다. 학제간 연구 부족 등으로 시장에서 필요한 연구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혁신이 부족해 대학 경쟁력은 하락하고 있다. 한국 대학교육 경쟁력은 2012년 59개국 중 42위에서 2019년 63개국 중 55위로 급락했다. 그래서 에너지 분야 전문성과 경쟁력을 가진 한전이 직접 나서 혁신의 성과를 내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한국에너지공대가 대통령 공약이기 때문에 설립한다는 지적이 있다.

“잘못 알려진 것이다. 한전은 2014년 본사를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로 이전할 때부터 실리콘밸리 같은 ‘에너지 밸리’가 조성돼야 하며 이를 위해 에너지 분야 고급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대통령 공약은 국가 균형발전에 대학의 필요성이 더해진 것이다. 광주전남의 에너지밸리는 국가 에너지산업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며 그 핵심은 에너지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것이 한전의 인식이었다. 대통령 공약은 이 같은 인식을 뒷받침했다. 대학은 기초 및 신기술 연구를 통해 창업을 촉진하고 산업의 집적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지역과 국가의 성장 동력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김 사장은 미국 시사 뉴스사이트 뉴스위크가 세계 10대 지식기반 선도지역으로 꼽은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예로 들었다. 앙티폴리스는 지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대학이 중심이 된 산업 집적지다.

한국에너지공대 설립이 한전의 이익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한전은 세계 9위권의 글로벌 유틸리티 기업이지만 세계은행은 한전의 기업가치는 세계 1, 2위를 다툰다고 평가한다. 한전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에너지공대가 필요하다. 현재 전력연구원을 중심으로 응용·상용화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데 기초·원천기술 연구는 국내 유수 대학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대가 도전적이면서도 고난도 연구를 수행해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 한전의 새로운 미래 시장을 창출할 ‘고급 연구소’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에너지공대와 전력연구원 간 역할을 체계적으로 분담하고 시너지를 통해 성과가 저조한 외주 연구를 대체한다면 한전의 미래 기업가치는 물론 주주의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너지공대에는 김 사장의 대학관과 교육관이 투영돼 있다. 그는 관직에 있을 때부터 대학 중심의 산업 클러스터(집적)가 국가균형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시절에는 산학협력으로 공대의 역할을 끌어내는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을 사실상 만들었다. 한국산업기술대 재단이사장, KAIST 이사, 포스텍 자문위원 경력도 대학의 역할과 혁신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한국에너지공대는 기존 공대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산·학·연 클러스터의 중심이 되기 위한 두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는 대학원 중심, 연구 중심 대학이다. 학생 1000명(학부 400명, 대학원 600명), 교수 100명 규모로 운영하는데 취업형 인재가 아니라 연구개발 및 창업 중심의 실전형 인재를 양성한다. 미국 올린공대처럼 PBL(프로젝트 기반 학습), 온라인교육, 기숙형 대학 등이 바탕이다. 둘째, 글로벌 에너지 연구·창업 허브를 지향한다. 미국 코넬공대,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처럼 연구 성과물을 (에너지) 산업계가 활용하는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산업 파급력이 높은 에너지 인공지능(AI), 에너지 신소재, 수소에너지, 기후변화 및 환경, 차세대 에너지그리드 등의 특화 연구소를 만들어 집중 연구할 계획이다.”

한국에너지공대의 교육 효과는 무엇인가.

“한국에너지공대에서 하는 교육은 교육적 효과를 염두에 두지는 않지만 지금의 방식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잘못된 교육은 하지 않겠다.”

잘못된 교육이란….

“지식만 전달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지 못하는 교육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6개월에서 3년 정도 재교육한다. 대학이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가 교육 열정은 세계 1등이지만 투자 대비 생산성은 가장 낮다.”

그럼 어떤 교육을 하고 싶은가.

“괴짜를 선발해 전문 역량을 키워줘 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혁신과 창업 의지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고 본다. 일본에 없는 셀트리온 네이버 카카오 쿠팡이 있다. 이들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괴짜들의 새로운 시도 덕분이다. 일부 영역에서 괴짜들이 실력을 발휘하지만 더 많은 괴짜가 도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에너지공대를 다니는 것 자체가 창업을 위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겠다.”

괴짜 선발이 공정성 시비를 불러오지 않을까.

“공정성 문제가 교육의 형식적 기준이 됐지만 얼마든지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다. 수능은 괴짜를 찾는 방법이 아니다.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시장이 수긍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룹과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는 ‘선발 캠프’ 같은 것이다. 선의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과정을 통해 신뢰를 얻는다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사장의 진정성은 한국에너지공대법안 제정 과정에도 잘 녹아 있다는 평가다. 한국에너지공대법은 한국에너지공대의 자율성 보장, 재정지원의 근거 및 설립 인허가 조건 완화 등이 핵심이다. 김 사장은 야당 지도부를 개별 방문해 한전의 의도를 반복적으로 설명해 이들에게 설립 취지를 이해시켰다. 이 법안은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를 통과했다.

정치권 설득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에너지공대 설립 취지를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주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3년간 정말 많은 국회의원을 만나 왜 대학이 필요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설명했다. 여당 내에서도 미심쩍어 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꾸준히 얘기하고 설득했다.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야당 국회의원들도 지금은 잘해보라고 격려한다. 여야가 모두 지지하는 가운데 법안이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 사장은 독서 예찬론자다. 스스로 지식을 쌓고 비판능력을 기르는 데 독서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독서로 길러진 역량은 토론의 바탕이 되고 이를 통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경영에서 중시하는 지속 가능성을 이루려면 친환경, 투명성, 윤리성이 중요하다는 걸 책에서 깨달았다고 했다. 중간간부 대상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서 독서 과제를 통해 한전의 현안과 나아갈 바를 알게 하는 것도 “일처럼 삶에서도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독서는 당연히 한국에너지공대에도 적용된다. 김 사장은 “학생들이 자율적인 독서는 타율에 의한 독서보다 얻는 게 많다는 걸 알고 열심히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김종갑 한전 사장은…
1951년 경북 안동 출생(만70세) 대구상고, 성균관대 학사,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석사. 성균관대 박사 제 17회 행정고시 합격 산업자원부 차관, 특허청장, 미국 허드슨연구소연구위원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지멘스 대표이사

친환경 에너지특화 나주 캠퍼스 내년 3월 개교

한국에너지공대 나주 캠퍼스 조감도.
한국에너지공대 캠퍼스는 전남 나주의 한전 본사 인근에 짓고 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스마트캠퍼스로 제로(0)에너지 및 친환경 기술이 도입된 에너지특화 캠퍼스다. 캠퍼스에는 학생과 교수의 상호교류 및 서로에 대한 몰입력을 높이기 위한 레지덴셜 칼리지(RC·Residential College)기숙사와 학생들이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하는 PBL(Project Based Learning)강의 공간도 있다.

내년 3월 개교를 위해 캠퍼스 핵심시설인 강의 및 연구실은 같은 해 2월까지 임시사용승인을 얻어 활용할 계획이다. 이후 3단계에 걸쳐 2025년 최종 완공할 예정이다. 모자라는 교육시설은 올 9월 완공되는 한전에너지신기술연구소를 활용한다. 기숙사는 학교 인근 아파트를 임차해 사용할 계획이다.

한국에너지공대는 지금까지 교수 요원 10여 명을 선발했고, 개교 전까지 20여 명을 보충할 계획이다. 교수 요원을 뽑을 때는 세계에서 경쟁할 만한 연구 역량이 주요 기준이어서 해외 대학 출신 교수 비율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신입생 선발과 관련해 학부생은 5월에 모집 요강을 발표한다. 수시 원서 접수 및 선발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제시한 일정에 맞춰 9월부터 시작된다. 대학원생 모집 요강은 6월에 발표한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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