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 車 반도체 품귀..정부, '국교 단절' 대만에 SOS

박진우 기자 2021. 3.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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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TSMC·UMC가 만든 반도체 확보 위해
각국 정부 요청 쇄도로 한국은 후순위
업계 1~3위 자연재해와 사고로 생산 차질
한국차, 버티고 버텼지만 2분기부터는 영향

전기차 ID. 4가 만들어지고 있는 폭스바겐 독일 츠비카우 공장. /폭스바겐 제공

전 세계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자동차 업계에 비상이 걸리자 정부 관계자가 대만으로 날아가 반도체 수급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92년 대만과의 단교 이후, 한국 정부가 이렇게 직접 논의를 요청하고 현지 정부 관계자까지 만난 일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 TSMC와 4위 UMC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TSMC의 경우 자동차용 반도체인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전 세계 생산의 70%를 책임지고 있다.

25일 반도체업계와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초 대만을 방문해 현지 정부·재계 인사들과 함께 자동차 반도체 수급과 관련한 협의 등을 했다. 현재 국내 자동차 기업의 경우 자동차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각하지 않아 당장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현재로선 작지만, 업계는 시간 문제인 것으로 보고 있다.

2만~3만개의 자동차 부품 중 반도체는 200~300개에 불과하나, 자동차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MCU는 마치 사람의 두뇌처럼 작용한다. MCU는 조건을 만족할 경우 특정 기기를 작동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나만 빠져도 정상적인 자동차 생산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자동차 엔진 부근에도 반도체는 들어간다. 엔진은 늘 고열에 노출돼 있어 이곳에 탑재되는 반도체는 내구성이 중요하다. 사진은 현대차 전주공장 엔진 생산라인. /현대차그룹 제공

언제 반도체가 부족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국내 시설로는 단기간 자동차 반도체 수급이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차 반도체만을 위한 증설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설비 확충부터 양산까지는 2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MCU의 경우 주로 55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공정으로 생산되는데, 국내 파운드리 1위 삼성전자는 이보다 훨씬 미세한 공정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2위 DB하이텍 역시 증설에 난색을 표하는 중이다.

대만은 한국 정부의 요구에 "일단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우리 요구를 100% 들어줄 수도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각국 자동차 공장이 반도체 품귀로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자 너도나도 대만 측에 "반도체를 달라"고 나선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대만과 자동차 반도체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지만, 한국이 최우선 순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로서는 (자동차 반도체 수급과 관련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래픽=박길우, 이민경

최근 자동차 반도체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 갑자기 불어닥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 수요와 생산이 줄어 반도체 업계가 자동차 반도체 생산량 상당수를 가전과 정보기술(IT) 기기 등으로 옮긴데 따른 것이다. 이후 자동차 수요가 회복하면서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나타났다.

여기에 최근 자연재해와 사고 등으로 자동차 반도체 업체들이 타격을 입어 당분간 반도체 수급난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불어닥친 기록적인 한파로 업계 1·2위 네덜란드 NXP와 독일 인피니언의 미국 현지 공장이 지난 2월부터 가동을 중단한 상태고, 지난 19일에는 업계 3위 일본 르네사스의 이바라키현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업계는 이 공장들의 반도체 생산이 정상화되려면 최소 3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포드, 크라이슬러, 지프, GM, 폭스바겐, 아우디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감산 또는 공장 가동 중단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 자동차 기업들도 반도체 부족의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이미 한국GM은 부평 공장의 가동률을 50%로 낮췄고, 현대차와 기아 역시 2분기부터는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현대차·기아는 일본 부품회사 덴소를 협력사로 두고 있는데, 덴소는 르네사스의 가장 큰 고객사 중 하나다. 르네사스 화재로 현대차와 기아가 자동차 부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길우, 이민경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 와이어링 하네스 사태로 서플라이 체인(부품 공급망) 관리를 철저히 해오던 현대차는 이번 반도체 품귀에 최대한 재고를 확보해가며 버텨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며 "2분기부터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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