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표 대신 '클릭'.. 위·변조 막고 막대한 선거비용 70% 줄인다 [심층기획 - 주목받는 '블록체인 선거']

안승진 2021. 3. 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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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지급해 투표권으로 활용
동 대표·주주 투표 등 민간서 확산
유권자 확인∼결과 다수 서버에 공유
외부서 삭제·변경 원칙적으로 불가
선관위, '케이보팅' 15건 시범 운영
오류 발견 없어.. 내년 중 시스템 구축
대리투표 우려·관련 법 개정 등 과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대전환 당원인 이종학(34)씨는 지난해 10월 초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당 대표 선거에 참여했다. 이씨는 선거 3일 전 회원가입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로 가상화폐를 지급받았다. 이때 지급된 가상화폐는 일종의 투표권으로 활용된다. 당시 1인당 3개가 발급됐는데 유권자의 선호도에 따라 후보자 3명에 1개씩 쪼개거나 몰아서 투표할 수 있었다.

지난해 4·15 총선부터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위·변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차세대 선거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술은 아파트 동 대표 선거를 비롯해 정당 투표, 주주 투표 등 민간선거 영역에서 점차 사용되고 있다. 블록체인 선거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고 공공기관에서도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대리투표 방지 등 기술적인 보완만 이뤄진다면 공직자 선거 영역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블록체인 선거, 예산 70% 절감 효과

블록체인 선거는 중앙서버에 기록을 저장하는 기존 전자투표와 달리 투표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서버(노드)가 모여 네트워크와 데이터를 유지하고 관리한다. 유권자 본인 확인부터 투표실시, 결과저장, 검증 등 전 과정의 정보가 다수의 서버에 각각 공유되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삭제나 변경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해킹, 조작 등 기존 전자투표 문제에 해법이 될 수 있는 기술이다. 유권자, 후보자, 참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 등 이해관계자들은 즉시 선거결과를 확인하며 서로 교차 검증할 수 있다.

블록체인 선거가 이뤄지면 수천억원대까지 달하는 선거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이나 투·개표 인력이 필요 없는 전자투표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만 각각 570억9900만원, 253억38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 공직자 선거 비용은 유권자 수와 비례해 크게 증가하지만 블록체인 선거는 가변비용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블록체인 기업 코나아이 홍연수 차장은 “블록체인 선거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운영 비용 등을 감안해도 기존 오프라인 선거 대비 70%가량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선관위 “내년까지 블록체인 선거 시스템 구축”

중앙선관위도 이런 점을 주목해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케이보팅’(K-Voting)이라는 전자투표 시스템을 통해 민간선거와 공공기관 투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시범사업 운영에 나섰다. 2019년 송호대, 울산대 등 총학생회장이 블록체인 선거로 선출됐고 대구경북 첨단의료산업 진흥재단, 한국자원식물학회 등 내부 선거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됐다. 중앙선관위가 15건의 블록체인 선거를 검증한 결과 선거 과정에서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는 시범사업 운영 결과를 토대로 내년까지 블록체인 선거 기반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스페인 등 세계 7개국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전자투표를 시행하거나 도입 준비 중”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고도화와 시스템 보안, 신뢰성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정책을 직접 제안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투표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9년 2월부터 블록체인 기반의 정책 투표 시스템인 ‘엠보팅’(M-Voting)을 활용해 시민들의 의견을 묻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엠보팅이 도입된 1년간 시민들이 275건의 발제에 참여했다.
◆대리투표 가능성과 관련 법 개정 등 과제 남아

전자투표 논의 과정에서 가장 우려됐던 대리투표 가능성은 블록체인 선거에서도 깊이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블록체인 선거가 원격으로 이뤄질 경우 투표시점에 제3자 개입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권자가 투표소를 찾아 블록체인 방식으로 투표를 진행하는 등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현행법에서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 공직자 선거에서 전자투표를 금지하고 있다. 관련 법 개정과 함께 정보 취약층의 경우 투표장에서 전자투표 과정에 잘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극복해야 할 난관으로 꼽힌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소장은 “블록체인 선거도 과거 전자투표의 문제로 제기됐던 대리투표나 안정성 문제 등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법적인 제도 등을 통해 보완하면 기술발전 속도를 볼 때 2025년 정도면 블록체인 선거가 실제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소장은 “모바일 신분증이나 은행 인증서, 핀테크 영역까지 블록체인 기술이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블록체인 육성전략을 외치면서도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에 집중하면서 정책적인 뒷받침을 못 하고 있는데 관련 규제를 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시민이 지역화폐 노원(NW)을 사용해 결제하고 있다. 노원구 제공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NW’ 잘 나가네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는 분야는 단연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이 개당 7000만원을 넘어서며 가치의 변동이 심한 투기나 도박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지만 수수료 없이 빠르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은 가상화폐의 큰 매력이다. 정부는 기존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늘리고 있지만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가치를 고정한 지역화폐로서 블록체인의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는 2018년 2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지역화폐 NW(노원)을 발행했다. 1NW은 1원의 가치를 지닌다. NW은 지역상점에서 사용을 위해 발행되지만 자원봉사, 기부, 자원순환 같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했을 때 보상의 개념으로 지급된다. 가령 자원봉사 1시간은 700NW, 돌봄, 배움지도, 미용, 수리 활동 1시간 700NW, 물품거래는 판매액의 10%, 기부는 기부액의 10% NW가 적립된다. 단 1명당 NW 최대 적립 가능액은 5만 NW로 3년 안에 NW를 사용해야 한다.

김선화 노원구 자원봉사센터 팀장은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 지역화폐에 대한 문의와 참여가 늘었다”며 “지역화폐가 쌓여가니 봉사자들이 보람을 느끼고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노원구에 따르면 서비스 도입 첫달 1526명이었던 지역화폐 회원은 3년 만에 8858명으로 늘었고 이달 기준 NW 발행액도 2억2000만원어치를 넘어섰다. NW를 사용할 수 있는 지역 가맹점 수도 처음 87개소에서 현재 279개소로 3배 넘게 늘었다. 이 같은 흥행에 서울 서초구, 경기 남양주시, 대구 등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한 지역화폐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가 2018년 추진한 서울형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하나같이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지난 19일 1인당 10만원의 재난위로금을 블록체인 기반의 KS서울디지털화폐로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지급 후 6개월 이내 소멸하는 지역화폐를 지급해 지역 소상공인을 살리고 블록체인 분야의 투자와 관심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아동수당 선별 과정에 블록체인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행정 분야 도입을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블록체인 기술을 정부 시스템에 도입한 유럽의 에스토니아의 사례를 들어 서울시 행정에 블록체인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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