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발달장애인.."'실종아동' 개념 탈피해야"

김용준 입력 2021. 3. 27. 15:38 수정 2021. 3. 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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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장준호 씨

꼭 90일 만입니다.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 사진 속 21살 장준호 씨의 환하게 웃는 모습은 결국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이었는지 예년보다 더 춥게 느껴졌던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중증 자폐가 있는 발달장애인 장 씨가 실종됐습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지난 1월 실종 추정 장소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서 장 씨의 점퍼가, 또 76일 뒤인 오늘(27일) 새벽, 다시 8km 정도 떨어진 일산대교 인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장 씨는 실종 당시 입고 있던 신발과 옷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었고, 두 차례 지문 확인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잡기 놀이와 숨바꼭질을 유난히도 좋아했다던 장 씨는 그날도 산책 중에 어머니를 앞질러서 갑자기 앞으로 뛰어가 숨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발달장애인 실종, 매년 8,000건…"발견 시 사망 비율 너무 높아"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실종 접수 건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8,000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최근 5년간 18세 미만 아동 인구수 대비 실종 접수 건수 비율은 0.25%이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 2.47%로 치매 환자 중 실종되는 비율(1.72%)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더군다나 이 가운데 실종된 발달장애인을 뒤늦게 찾더라도 사망한 건수는 271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종 아동보다 실종 발달장애인이 평균적으로 미발견된 비율도 2배 가까이 높았는데, 발견 시 사망한 비율 역시 약 4.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장준호 씨처럼 실종된 발달장애 '성인'은 실종 '아동'과 달리 봐야"

현행 실종아동법을 보면 실종아동에 관한 업무는 아동권리보장원에, 실종 치매노인에 관한 업무는 중앙치매센터로 위탁해 수행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실종률도 실종 후 사망 사례도 높은 '실종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담당 기관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아동 정책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실종 발달장애인 관련 대응을 병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근 국회에서는 실종된 발달장애인을 조속히 찾을 수 있도록 '실종아동법'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이 개정안에는 실종 발달장애인에 대한 업무는 전문성을 고려해서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담당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은 실종 아동과 실종 발달장애인 그리고 실종 발달장애인 중 성인은 달리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장 씨의 경우를 포함해, 실종된 발달장애인에 대한 대응 시스템을 들여다보니 결국 '실종 아동을 찾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더라고요. 길에서 만약 아이가 혼자 돌아다니거나 헤매는 것을 보면 '엄마는 어디있니? 길을 잃었니?'라고 묻는 등 도움의 손길이 가기 쉽잖아요? 그런데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이 혼자 돌아다니거나 배회한다고 해도 누가 가서 물어보지 않은 경우가 흔하죠.

문제는 이런 상황인데도 실종 아동을 찾는 시스템을 적용해서 찾는다는 점이 한계라고 생각해서 이번 개정안도 대표발의 했습니다. 실종 발달장애 아동이나 실종 발달장애 성인에 맞춤식 대응을 하려면 인력과 정책, 시스템이 모두 바뀌어야 하는데 결국은 예산 문제거든요. 제가 발의한 개정안과 별개로 안타까운 점은, 故 장준호 씨와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으면 관련 공무원도 정부도 환기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이 법안의 취지에 공감하면서 실종 발달장애인에 대한 개념을 달리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준호 씨는 언어로 의사 표현하는 건 힘들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실족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가족 품에 돌아가지 못한 많은 실종 발달장애인들은 어쩌면, 먼저 말을 하진 못하지만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누군가 먼저 알아봐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용준 기자 (ok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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