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자꾸 때립니다, 너무 수치스럽습니다

박점규 입력 2021. 3. 2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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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의 갑질만상] 법개정으로 처벌 강화, 문제는 근로감독관

[박점규 기자]

현민(가명)씨는 스포츠클럽에서 강사로 일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고객이 줄어 힘들기는 했지만 그런 대로 클럽은 운영됐다. 성격이 좋아 고객에게 인기가 많았고, 운동을 좋아해 회사 일이 즐거웠다. 대표의 폭언과 폭행만 빼면. 

대표는 입이 거칠어 욕을 달고 살았고, 술버릇이 고약해 술만 먹으면 욕을 하고 심지어 손찌검도 했다. 술자리에서 취해 후배들을 주먹으로 치고 뺨을 때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대표에게 맞고 그만둔 직원도 있었다. 현민씨도 2년 전 대표에게 뺨을 맞았고, 직장 동료는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았다. 다 큰 어른들이고,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인데 대표에게 맞고 다닌다는 게 수치스러웠지만 먹고 살기 위해 참고 견뎠다. 

2020년 가을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휴관중이던 클럽이 문을 열 준비하려고 수영장과 헬스장 대청소를 했다. 청소 후 저녁을 같이 먹었고, 회식은 2차를 거쳐 3차로 이어졌다. 현민씨는 술에 취해 졸고 있었는데, 화가 난 대표가 소주병을 던지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눈은 점점 검정색으로 변해갔다. 안과병원을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대학병원에서 CT 촬영 결과 안구를 받치고 있는 뼈가 부러져서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을 하고 한 달 가량 입원했다. 전치 8주.

대표는 달리기하다 충돌해 다친 것이라고 신고해 실손보험으로 치료를 하라고 강요했다. 현민씨는 보험사기의 공범이 되고 싶지 않았고, 계속되던 폭력과 갑질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폭행과 산업재해로 신고하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노동부는 폭행에 대해 "해당 업주의 폭행 행위가 자행된 것으로 보이지만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지 않는다면 사업주와 근로자 폭행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고, 산업재해에 대해서도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사업장 또는 공식 회식 자리에서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어온 대표의 폭행인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표는 변호사를 선임했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현민씨는 직장갑질119에 편지를 보냈다. 
 
더 이상은 제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저처럼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그 상처들을 표현도 못한 채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경찰은 대표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현민씨는 대표가 다시는 권력을 이용해 직원들을 폭행하지 못하도록 폭행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작정이다. 
 
 직장갑질119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연 직장갑질 근절 가면무도회. 2017.12.7
ⓒ 직장갑질119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직장폭력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여성입니다. 나이 많은 상사가 카톡으로 밤늦게 사적인 연락을 하고, 불필요한 터치를 하는 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화가 난 상사가 "상사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라며 주먹으로 어깨를 때렸습니다. 어깨 통증이 지속되었고, 정신적 충격도 커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2021.3)
회장 아들이 사장인 회사입니다. 회사의 매출이 계속 늘어났지만 10년 동안 월급은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사장은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사용합니다. 사장과 가까운 사람들을 시켜 직원들을 감시합니다. 사장이 마음에 안 들면 수시로 직원들을 해고합니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최근에는 폭행을 했습니다. 도와주세요. (2021. 3) 

연예인, 운동선수들이 학창 시절 저지른 학폭(학교폭력)으로 세상이 뜨겁다. 유명 가수, 방송인, 배구 선수들이 학폭이 터지면서 사과하고 줄줄이 하차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진위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학창 시절에 저지른 폭력도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물며 성인이고, 자신의 삶터인 직장에서 권력을 이용해 직원에게 폭력을 가하는 '직폭'(직장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3월 17일부터 23일까지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 지난 1년 동안 폭행·폭언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13.5%였다. 올해 1~2월 직장갑질119에 신고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397건 중 폭행·폭언은 103건으로 26%였다. 오늘도 직장인들은 먹고살려고 '死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법적 처벌 강화됐지만

근로기준법 제8조(폭행의 금지)에서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라고 못박고 있고,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제107조). 사용자는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로 폭넓게 규정되어 있다. 

형법상 일반 폭행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것에 비해 높은 형량으로 처벌하는 이유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무기를 이용한 특수폭력(5년 이하 징역, 1천만 원 이하 벌금)처럼 '지위'라는 '무기'를 이용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청에 직장 내 폭력으로 신고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경찰서로 돌려보낸다. 사용자의 폭행도 대표가 아닌 임원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선 근로감독관들의 안일한 태도 때문에 사업장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법원이 직폭을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할 이유다. 

3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개정됐다. 사용자가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인 조사를 하도록 조사 의무를 구체화했고,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도록 '비밀유지' 조항을 신설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사용자가 객관적인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 유지 등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특히 사용자 또는 사용자의 친·인척이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일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직장인들이 사장의 폭언을 녹음해 노동청에 가져가면, 근로감독관은 처벌조항이 없어 회사에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끝냈다. 법이 개정됐기 때문에 오는 10월부터는 사장이나 사장 가족의 폭언은 과태료 1000만 원을 물게 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노동청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7953건 중에서 폭언이 3571건으로 45.18%에 이르렀다.

사장님이 욕하는 녹음 파일을 가져가면, 정부에서 과태료를 물리고, 사장님이 욕을 그만하게 될까? 글쎄... 법은 개정됐지만 근로감독관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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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점규는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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