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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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정부·환경단체 합작 '사용後핵연료 수챗구멍 틀어막기'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입력 2021. 03. 31. 00:01 수정 2021. 09. 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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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정부가 세운 로드맵 적폐 취급해 폐기 후 발족시킨 재검토委
"국회가 법 만들라" 허무한 얘기 하고 끝내.. 또 '폭탄 돌리기' 원점으로 으로

2년 전,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라는 반핵(反核) 단체 주최의 국회 토론회를 참관했다. 전국회의 대표는 인사말에서 “3만달러 시대에 굶어 죽는 사람은 이제 없다. 양적 성장보다 내포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원자력은 양적 경제 발전 수단이다.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물질 성장은 더 필요 없으니 물질 성장의 동력인 원자력은 폐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근본주의 세계관이 있는 건 알았지만 직접 듣긴 처음이었다. 그 단체는 사용후(後)핵연료 처분 시설 건설에 반대해왔다. 사용후핵연료 시설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원자력발전소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 시설을 막아 원자력 생태계를 붕괴시키자는 전략이다. 이런 종류의 환경운동을 ‘수챗구멍 틀어막는다’고 표현한다. 수챗구멍을 막고 있으면 시스템 전체가 가동될 수 없다.

김소영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사용후핵연료 정책 관련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산중공업이 지난 25일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에 공급할 사용후핵연료 저장 캐스크를 공개했다. 캐스크는 원전 단지 내 습식 임시 저장고에서 수년 보관 후 방사능이 약해진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거나 운반할 때 쓰는 강철통의 특수 용기이다. / 두산중공업 제공

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설에는 중간저장 시설과 영구처분장의 두 가지가 있다. 중간저장은 기술 진화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이 가능해질 것까지 염두에 두고 수십 년 장기 보관하는 걸 말한다. 영구처분은 지하 동굴을 파서 최종적으로 묻어둔다는 의미다. 우리는 원전 단지별로 임시저장 수조(水槽) 시설을 갖고 있지만 중간저장, 또는 영구처분 시설을 마련하지 못했다. 2015년 경주에 중·저준위 처분장을 짓긴 했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아무 대안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발족시킨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再)검토위원회가 지난 18일 대(對)정부 권고안을 내고 21개월의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권고안은 ‘특별법을 제정해 부지 선정 절차를 법제화하라’, ‘정책을 총괄할 독립 행정위원회를 신설하라’는 것이 골자다. 핵심은 부지 선정 절차와 방법인데, 재검토위는 ‘과학기술적 타당성과 국민·주민 수용성을 확보할 부지 선정 원칙과 절차를 마련하라’고 허무한 얘기를 하고 끝냈다. 중간저장과 영구처분 시설은 “동일 부지에 두는 걸 우선하되 별도 부지 설치와 원전 단지별 분산 설치도 함께 고려하라”고 했다. 회의를 43번 열었다지만 아무 알맹이가 없었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에는 공론화위원회(2013년 10월~2015년 6월 활동)를 거쳐 정부가 2016년 7월 ‘관리 기본계획’을 세웠다. 그때는 ’2029년까지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 2036년 중간저장 시설 완공'이라는 개략적 로드맵이라도 제시했다. 문 정부는 그걸 주민·환경단체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며 적폐(積弊) 취급해 폐기시켰다. 그래 놓고는 1년을 허비한 후 재검토준비단이라는 걸 만들었고 그로부터 다시 1년 더 지체하고서 재검토위를 발족시켰는데, 그 위원회는 맹탕 권고로 끝내고 만 것이다. 애당초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다음 정부로 떠넘긴다는 생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권엔 근본 생태주의적 사고 패러다임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고속철 터널이 천성산을 뚫는 걸 반대했던 어느 스님과 비슷한 생각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 시절 단식 중이던 그 스님을 두 차례 찾아갔고 그런 과정을 거쳐 고속철 공사가 상당 기간 중단됐었다.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을 악(惡)으로 보는 반핵 단체 대표의 시각도 같은 계열이다. 그런 관점도 성장 일변도 흐름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측면에서 존중받을 부분이 있다. 그러나 국가 미래를 책임지는 정부만큼은 정책 현안에 대해 반대가 많더라도 여론을 충분히 듣고 때로는 여론 흐름을 형성해나가면서 소신을 갖고 밀고 나가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며칠 전 두산중공업이 미국 수출 예정으로 제작한 사용후핵연료 저장 용기(캐스크)를 공개했다. 작은 용달차 크기(직경 2.5m, 길이 4.5m)의 원통형 강철통이다. 그런 것 두 개면 원전 한 기의 1년치 사용후핵연료(20t)를 담을 수 있다. 대형 석탄발전소에선 한 해 20만~30만t 석탄재 폐기물이 나온다. 500만~700만t 온실가스도 뿜어낸다. 고속철 터널이 지상 노선보다 생태 파괴가 훨씬 덜한 친(親)환경 공법이듯, 국토가 좁은 우리로선 석탄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고 태양광의 300분의 1 부지면 되는 초(超)고밀도 원전 에너지가 친환경 발전 설비다. 이런 관점이 현 정부와 환경운동권엔 먹히지 않는다. 이 정부에 환경운동가들이 장관, 청와대 수석 등으로 들어가 있지만 턱없는 논리로 가덕도공항을 밀어붙이고 있다. 친환경은커녕 반(反)환경 정부다. 환경단체들도 반대 성명 한 장씩 내놓고 가덕도공항 논란을 구경만 하고 있으니 진짜 정체가 뭔지 알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설은 정부 정책이 탈원전이건 아니건 꼭 있어야 하는 시설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먼 산 보듯 하는 걸 보면 정부와 환경단체가 이심전심 손잡고 수챗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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