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도 흡혈귀됐다..조선구마사 폐지, 中과 뭐가 다른가"

유성운 2021. 3. 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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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인터뷰
"'조선구마사' 기존 사극과 차이점 없어"
"신윤복 여성 설정은 되고, 세종은 불가?"
"광고주 압박 등 행동, 중국과 다를 게 뭔가"
"스스로 족쇄 채우고 콘텐트 창작 억압"
SBS 사극 '조선구마사' [자료 SBS]

2회 만에 폐지된 SBS '조선구마사’를 두고 역사학계ㆍ방송학계에서 ‘과도한 애국주의’ ‘작가 상상력 제한’ 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콘텐트 관련 대학교수는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 다만 여론 반발이 두려워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28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조선구마사'는 역사왜곡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번 사건은 앞으로 창작활동 위축 등 한국 사회에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 교수는 『만인만색역사공작단』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등의 책을 통해 대중과 학계의 간극을 좁히는 시도를 해온 학자다.
그는 왜 여론에 반하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했을까. 30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사진 기경량 교수]


-왜 역사왜곡이 아니라고 보는가
='조선구마사'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배경을 조선 초로 잡았는데 소품 등의 디테일을 판타지라는 장르 뒤에 숨어 대충 느낌만 나게 얼버무렸다. 하지만 '조선구마사'가 실수한 여러가지 요소들은 결정적인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국경 지역에서 중국 음식이 나온 것은 제작진의 해명이 이해된다. 의주는 한반도와 요동을 잇는 교통과 무역의 거점이었다. 외국인 왕래가 잦은 접경 지역에 외국 음식이 나오는 건 이상하지 않다. 짜장면도 근대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이 모인 인천에서 생겨났다. 놀이패의 대사도 신분 차별에 대한 분노 때문에 최영 등 고려 지배층 전체를 싫어한다는 건데 여기에 '최영 모독'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황당하다. 세종에 대해서도 '감히 우리 세종대왕을?'이라며 위대하고 성스러운 모습 외에 어떠한 재구성이나 재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 중 조선의 기생집에서 충녕대군이 구마사제에게 중국음식인 월병·피단 등을 대접하는 장면. 사진 SBS '조선구마사'

-실존 인물을 두고 실제로 하지 않은 언행을 넣은 게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에서 링컨은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가 실은 흡혈귀 사냥꾼이고, 도끼로 이들을 때려잡고 다니다가 심지어 나중에는 흡혈귀가 된다는 설정의 소설과 영화도 만들어졌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것을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한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예전에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을 여성이라고 설정했다. 실제 역사와는 다른 말도 안 되는 왜곡이다. 그런데 당시 이를 폐지시켰나? 영화 '천군'에선 무과에 낙방한 이순신이 방탕하게 살다가 나중에 각성해서 영웅적 인물이 됐다. 창작물에서 이 정도 캐릭터 설정도 못 하면 그게 더 문제다.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자료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자료 20세기폭스코리아]

-역사 전공자로서 '조선구마사'가 기존 사극과 다르지 않다는 건가?
='조선구마사'에 들이댄 잣대를 사용하면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역사 드라마는 없다. '주몽'의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인데 화약 무기가 나왔다. '태왕사신기'는 주작과 청룡 등이 나오는데 실존 인물인 광개토대왕이 등장했다. 실존 인물을 가지고 창작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도 문제 삼아야 한다. 그 외에도 '선덕여왕', '대장금' 등 대부분의 사극이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조선구마사'는 픽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예전에 하던 대로 했는데 차원이 다른 뭇매를 맞고 있다.

-'조선구마사'에서 폭발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중국에 대해 쌓인 것들이다. 김치와 한복이 중국 것이라는 둥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는 둥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뺏어간다는 인상을 줬다. 또 할리우드에서도 보이는 현상이지만 중국 자본이 콘텐트에 투입되면서 PPL 등 중국의 영향력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데 콘텐트 질을 하락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사극에서 기대하는 좋은 모델은 '킹덤'이라고 생각한다. 좀비에 대한 연기도 좋았지만, 많이 화제가 된 것이 조선의 갓 등 복식이다. 외국에서 다양하고 예쁘다고 하니 한국인들도 좋아했다. 우리가 만든 콘텐트에 한국의 좋고 아름다움을 담아 뽐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조선구마사'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하고 봤는데 중국 음식을 먹고 중국식 소품이 나온 것이다.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선전해야 하는데 이런 게 나오니 논리적이진 않지만 '중국이 관여했고 우리 콘텐트를 망가뜨렸다'는 프레임이 짜여졌고,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안 들게 된 것이다.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여성이라는 재해석을 했다. [자료 SBS]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자료 MBC]

-중국에 대한 위기감 같은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증을 잘 하면 좋지만 잘못했으면 비판하면 된다. 연구자들이 다른 콘텐트를 만들어 반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실력행사를 통해 존재하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청와대에 청원을 한다. 자신이 가진 윤리적 당위와 기호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콘텐트에 대해 애국주의에 기반해 비난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제작자와 배우들을 위협하고, 줄줄이 반성문을 쓰고 작가의 전작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까지 불똥이 튀어 광고가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비판하는 중국 일각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애국한다면서, 위기감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

-다른 연구자들도 같은 생각인가?
=얼마 전 역사를 전공하는 젊은 연구자들끼리 단톡방에서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이번 사태에 대해 염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사극은 실존 인물이나 시대는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킹덤'처럼 가상 세계 외에는 만들기 어려울 텐데 한국 콘텐트에서 엄청난 손실이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콘텐트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꼴이다. 역사 연구자로서 '역사'가 창작 활동을 질식시키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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