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밥거리 '텅텅'.. 노량진은 '급변' 중

유지혜 2021. 4. 1. 06: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강의 대체되며 노량진 떠나
서점·독서실 "수험생 없어 죽을맛"
상점 곳곳 문 닫아 유령도시 같아
노량진 전철역 유동인구 감소 극명
2019년 222만서 올 2월 147만명
"휑해진 풍경 과거 추억 없어진 듯"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는 일상의 많은 풍경을 바꿔놨다. 2018년 2월 20일 북적이던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오른쪽)와 31일 한산한 컵밥거리 모습이 대조적이다. 장한서·이재문 기자
“유령도시 같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직강(대면강의)을 안 하고 인터넷으로 해버리니까 앞으로도 사람이 북적이는 일은 없겠죠.”

1983년부터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문구점을 운영해온 A씨는 31일 “사람이 없어 장사가 전혀 안 된다”면서 “월세 낼 돈도 없다”고 토로했다. 근처 서점 사장 B씨도 “원래 2∼3월은 최대 성수기라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지금은 파리 한 마리 날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매장 안에는 직원 5명이 택배로 보낼 공무원 시험 서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B씨는 “그나마 인터넷 강의를 듣는 수험생들이 책을 택배로라도 주문해 버티고 있지만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오프라인 수요는 반토막이 났다.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매장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날 노량진 거리는 황량했다. 건물 곳곳에 임대문의 딱지가 붙어 있었고, 전체가 비어 있는 건물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전체 상가 중 절반 가까이는 문을 닫았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수험생들이 고시촌을 떠나면서 노량진 상권 전체가 위기를 맞이한 모습이었다.

수험생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북적거렸던 컵밥거리에도 발길이 끊겼다. 20개가 넘는 가게 중 영업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인 가게는 8곳뿐이었다. 한 컵밥집 사장은 “노량진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했는데 이런 적은 없었다.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열겠냐”며 “이전에 하루에 100개를 팔았다면 요즘은 30개를 판다”고 한탄했다.

지난해 노량진의 한 대형 임용고시학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후 일대 상권이 입은 충격도 아직 가시지 않았다. 학원들이 대면수업을 대폭 온라인으로 전환하자 고시촌에 상주하던 수험생들도 노량진을 떠났다. 노량진의 한 공무원시험 학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시시때때로 학원 문을 닫다 보니 남아 있던 수험생들도 거의 다 지방으로 내려갔다”며 “아무래도 대부분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듣고 있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의 한 서점에 손님 없이 책만 쌓여 있다. 장한서 기자
상인들은 상권 특성상 학원 수강생이 줄면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량진 고시촌의 한 복사집 사장은 “학원들이 안 되는데 복사집이 (장사가) 될 리가 있겠냐”면서 “도미노처럼 무너지니 다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근처의 김밥집 점원도 “학생들이 없으니 식당이고 고시원이고 다 장사가 안 된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 문을 연 피자집에도 주인 혼자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노량진은 다 고시생 장사인데 코로나19 이후론 홀에는 아예 사람이 없다시피 한다”며 “하루에 (손님) 2∼3팀을 받아 많아야 5만원 번다. 고시촌에 고시생들도 없으니 배달도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노량진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C씨는 “점포가 여러 개였던 유명한 독서실도 절반은 줄였다”면서 “그나마 유명한 가게들은 버티고 있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들은 금방금방 방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의 한 건물 전체가 비어있다. 장한서 기자
노량진을 오가는 사람도 크게 줄었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에 따르면 2019년 2월 222만6193명이었던 서울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 유동인구는 지난해 2월 188만6963명으로, 올 2월에는 147만4416명으로 2년 새 75만명 정도나 감소했다. 7급 외무영사직을 준비하는 박모(27)씨는 “평일뿐만 아니라 금요일이나 주말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며 “예전부터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은 사람이 정말 많이 줄었다고 놀라워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 노량진에서 수험생활을 했던 공무원 박모(28)씨는 “예전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량진 길거리가 꽉꽉 차고 독서실과 고시원도 늘 만석이었다”면서 “휑해진 거리를 보니 과거의 추억이 없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유지혜·장한서 기자 keep@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