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광양시장 '문중묘 도로' 가보니.."평생 쓸 일 없어"

전남CBS 최창민 기자 2021. 4. 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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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건너 마을과 연결되는데 97억 원 투입
일부 주민들 "평생 넘어갈 일 없는 도로"
정 시장 문중묘와 연결돼 이해충돌 논란
전남 광양시 옥곡면 수평마을은 산중임에도 넓은 땅이어서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제대로된 진입로가 없어 주민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최창민 기자
정현복 전남 광양시장의 문중묘 인근에 주민 통행이 뜸한데도 광양시가 1백억에 육박하는 혈세를 들여 도로를 개설하는 것으로 확인돼 또다른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남 광양의 명산 백운산 국사봉 자락에 위치한 옥곡면 수평마을. 산중임에도 농토가 넓게 펼쳐져 있어 바다처럼 넓다고 해 '바닷골'로 불린다. 50여 가구 100여 명 남짓 살고 있는 이 마을은 굽잇길로 한참을 돌아 들어간다.

깨끗하고 넓은 풍광에 전원생활을 꿈꾸는 은퇴자들이 눈독을 들이지만, 망설이다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좁디좁은 길로 잘못 들어서면 차를 넣지도 빼지도 못하는 일이 다반사. 주민들이 광양시에 오랫동안 길을 내어 달라는 민원을 넣고 있지만 좀체 들어줄 기미가 없다.

그런데 이 마을보다 아랫마을인 오동마을 어귀에서 4년 전부터 차량 교행이 가능한 2차선 도로가 개설되고 있다. 도로는 산 중턱을 올라 건너편 삼존마을로 이어진다. 산 반대편 마을과 연결되는 이 도로를 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오동마을이나 삼존마을 모두 기존 도로를 이용해 3~5분이면 면사무소까지 나갈 수 있다. 마을과 마을을 오고 갈 일이 아니고서는 이 도로를 이용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말이다.

광양시 옥곡면 삼존마을에서 산 넘어 오존마을로 폭 6미터의 차량 교행이 가능한 도로가 개설되고 있다. 최창민 기자
"원래 그 길은 레미콘 차도 다닐 정도로 넓은 농로가 있었고 주변에 밭에서 농사짓는 몇몇 사람만 이용하던 길이여."

묵백리 삼존마을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사는 박영수(가명·75) 어르신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박 씨는 "정작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주변에 주민이 많이 사는 먹방마을 삼거리나 진입도로를 넓히는 게 맞다"며 "진짜 필요한 곳은 안하고 애먼 곳에 길을 내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냈다.

별 쓸모가 없을 거라는 오동마을에서 삼존마을 간 길이 3km, 폭 6.5m의 도로 확·포장 공사에 광양시는 모두 96억8000만원을 투입할 계획이인데, 이미 65억5000만원이 쓰였다. 올해와 내년까지 31억3000만원이 더 드는데 모두 시비다.

이 사업의 실시설계 용역이 시작된 건 2015년 5월. 정현복 광양시장이 민선 6기 취임 후 1년이 채 안된 때다. 2017년 4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5년8개월 만은 내년 12월에 공사가 끝날 계획이다.

광양시는 낙후지역 개발에 따른 정주여건 개선과 주민숙원사업 해소 등을 위해 이 도로를 개설했다는 입장이다.

정현복 광양시장의 문중묘 공원. 최창민 기자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오동마을에서 해당 도로에 진입해 조금만 올라가면 왼편에 문중묘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따라 들어가면 차로 1분을 못가 널다랗게 잘 가꿔진 묘지 공원이 나온다. 정현복 광양시장의 문중 묘지다. 길은 여기서 끝난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이 도로가 '정현복 시장의 문중묘 때문에 놓인 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개발 정보를 미리 빼내 호주머니를 채웠다는 LH 임직원들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이 와중에 정 시장이 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광양읍 칠성리 땅에 2차선 소방도로를 내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였다. 옥곡면 일대 마을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주민들 머릿속에선 정 시장의 문중 묘 옆으로 나고 있는 이 도로가 떠올랐던 것이다.

대죽리에 사는 주민 백경환(가명·69)씨는 "대죽리 꼬랑에 있는 수평, 백양, 죽양, 오동 마을 주민들이 묵백리를 넘어갈 일이 뭐가 있느냐"며 "며칠 전에도 주민들끼리 얘기를 했는데 평생 이 길을 넘어갈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백 씨는 "정현복 시장 문중묘를 위해서 낸 길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만일 문중묘 때문에 길을 낸 거라면 LH직원들보다 나쁘다"면서 "LH직원들은 개발 정보를 알아 투자한 것이지만 정 시장이 자기 직을 이용해 길을 냈다면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양시가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정현복 시장의 문중묘 인근에 주민들이 쓸데 없다고 말하는 도로를 내면서 또 다른 이해충돌 논란을 낳고 있다.

한편 전남경찰청 반부패 수사2대는 정 시장과 부인 최씨를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정 시장은 자신과 아들이 보유한 광양읍 칠성리 땅에 도로를 개설하는가 하면 성황동의 자신의 땅이 수용되자 대토 대신 보상금을 받아 이해충돌 논란이 일고 있다. 부인 최씨도 도로개설 예정인 땅을 미리 사들인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광양시민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과 시민의 불안감 해소, 알권리 충족을 위해 정 시장은 제기되는 의혹에 침묵할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협의회는 이어 "수사 당국이 정 시장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사실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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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 최창민 기자] ccmi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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