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힘드니 국립대로? 포스텍 "학교 내놓겠다"

유지한 기자 2021. 4. 2.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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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우 회장, 이사회서 "기부 검토"

사학 명문 공대 포스텍(포항공대) 이사회가 학교를 국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창업자인 고(故) 박태준 회장의 결단으로 설립된 포스텍은 법인 자산이 1조원이 넘지만 학교를 운영하는 데 쓸 수 있는 운용 재정은 국내외 유수 대학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칫 인재 유치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 ‘국립화' 논의가 나온 것이다.

1일 포스텍 등에 따르면 최정우 포스텍 이사장(포스코 회장)은 지난 1월 학교 이사회에서 국가에 포스텍을 기부채납하는 방안을 꺼냈다. 사립대인 포스텍을 정부가 지원하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 중에 나온 언급이었다. 최 회장의 기부채납 방안을 두고 “포스텍이 사립대학으로서 발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약화될 수 있다” “기존 국립대인 카이스트와 경쟁하기 힘들다. 포스텍은 사립대로서 경영 마인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과 “재정 문제와 학교 발전의 지속성을 고려할 경우 기부채납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찬성 의견이 맞섰다고 한다.

◇등록금·기부금 비중 작아

포스텍 이사회에서 국립대 전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재정 문제에서 비롯됐다. 포스텍은 포스코 지분 2%와 그 계열사 주식 등 1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주식 배당금과 투자 수익 등으로 연간 약 500억~600억원의 돈이 학교로 들어온다. 외부에서 받는 연구비가 한 해 2000억원 정도이고, 그 외 등록금과 기타 수입, 기부금 등을 합쳐 대략 800억원이 들어온다. 작년 기준 한 해 3857억원의 예산 운용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립대 카이스트의 1년 예산은 포스텍 예산의 2.4배인 9208억원이다. 재학생 숫자에서 카이스트(1만504명)가 포스텍(3617명)의 2.4배여서 비율로만 보면 큰 문제는 없다.

문제는 현상 유지 외에 캠퍼스에 대한 획기적인 투자나 AI(인공지능) 등에 대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벌일 만한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면 되지만, 주식을 처분해 현금화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포스텍의 고민이다. 포스코 입장에서는 자신의 우호 세력인 포스텍이 포스코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성장 산업과 거리가 먼 철강산업의 특성상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13위인 포스코의 주식 가치와 배당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학생들로부터 받는 등록금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다. 포스텍은 사립대지만 학생 1인당 연간 등록금이 558만원으로 국립인 서울대 공학계열(600만원)이나 카이스트(686만원)보다도 싸다. 전체 연간 예산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8~9%밖에 안 된다.

포스코라는 큰 기업이 뒤에 있다는 이유로 개인이나 기업에서 대규모 기부를 하지 않는 것도 포스텍의 말 못할 고민이다. 카이스트는 최근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등 개인 기부자들이 수백억원씩 내놓았다. 서울대나 명문 사립대의 경우 대기업에서 학교 건물을 지어주며 다양한 지원을 해주지만 포스텍은 그런 건물도 하나 없다. 포스텍은 생명과학과 교수 출신인 제넥신 성영철 대표가 후원하는 게 유일할 정도이다.

◇돈 많은 사립대 모델 가능할까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이 포스텍을 세울 당시 지향했던 포스텍의 모델은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교육과 연구를 하는 미국의 칼텍이나 MIT 모델이었다. 하지만 개교 당시의 ‘돈 많은 사립대 모델’은 지금으로선 실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초대 박태준 이사장의 원대한 비전과 달리 후임 포스코 회장들은 공기업 스타일의 관리에만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MIT 학과장 출신으로 카이스트 혁신을 주도했던 서남표 전 총장 같은 공격적인 외부 인사들보다 무난한 학내 인사 위주로 총장 인선을 해왔다는 것이다. 포스텍 동문들 사이에서도 “박태준 초대 이사장이 내세웠던 자유로운 사학이라는 건학 모델 자체는 문제가 없다”며 “다만 그걸 구현하려는 총장 등 내부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동문은 “국내 명문 사학의 총장들은 대기업 총수들을 상대로 세일즈맨처럼 뛰며 대규모 기부금을 유치했다”며 “포스텍의 총장 대부분은 안정적인 재단 구조에 안주했을 뿐 누가 그런 노력을 했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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