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후손 분노케 한 요코이야기, 아직 필수도서라뇨
[이윤옥 기자]
요코 웟킨스(Yoko Kawashima Watkins)라는 여자가 있다. 올해 나이 88살의 일본계 미국인이다. 이 여성이 쓴 '일제침략기에 일본 소녀를 괴롭힌 나쁜 한국인을 다룬 주제의 책' <요코이야기>(1986, 미국 출판, 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가 미국에서 요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불쾌한 소식이 들린다. 내가 이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된 사연은 9년 전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독립운동가 오정화 애국지사(1899~1974)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연결된 사람이, 당시 미국 보스톤에 사는 아그네스 안 박사였다(오정화 애국지사의 손녀).
▲ 오정화 애국지사 대구에 있던 오정화 애국지사의 무덤은 2012년 7월 5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여 안장했다. 이장을 위해 아그네스 안 박사 등 오정화 애국지사의 후손 15명이 미국에서 건너와 안장식에 참여했다. |
ⓒ 이윤옥 |
사실 이날 만나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상당수가 바로 요코 웟킨스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 아그네스 안 박사의 이야기를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이야기였다.
"어느 날 열 살 먹은 막내아들 마이클이 학교에서 돌아와 울면서 던지는 질문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아들이 하는 말이 뭐였냐면, '왜 한국인들은 착한 일본인들을 괴롭혔느냐?'라는 질문이었어요."
안 박사는 그러면서, 당시 아들 손에는 <요코 이야기>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이 책은 요코(1945년 8월, 당시 이름은 가와시마 요코)라는 12살 먹은 여자아이가 가족과 함께 함경도 나남에서 부모와 살다가 일본이 패망하자 필사적으로 한국을 탈출하다가 겪은 이야기가 줄거리인데, 아그네스 안 박사의 아들 마이클은 이 책을 읽고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요코이야기> 저자의 과거
요코 웟킨스는 조선에서 탈출해 일본으로 돌아간 뒤 교토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미군기지에서 통역을 했다. 그러다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일본계 미국인이었으나 문제는 그 뒤의 일이다. 요코 웟킨스는 미국에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일본 문화'를 가르치게 되는데 미국의 어린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어느새 유명세를 타는 일본문화 강사가 됐다. 요코 웟킨스가 미국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자신이 겪은 전쟁 체험'을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준 데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겪은 전쟁 때에, 물자가 아주 귀했단다. 그러니까 학용품도 함부로 쓰지 말고 절약하고 아껴서 써야 착한 어린이지..."
▲ 아그네스 안 일본을 피해국으로 그린 《요코 이야기》 영어판을 들고 문제점을 설명하는 아그네스 안 박사. 왼쪽은 통역사 최서영 씨, 가운데 아그네스 안 박사, 오른쪽 필자(201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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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요코 웟킨스의 '일본문화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조선에서 겪은 체험 이야기의 위험성'이다. 당시 대한민국 침략의 가해자인 일본국, 그 일본의 소녀가 피해자인 조선인을 마치 가해자처럼 그린 것은 크나큰 역사왜곡이란 사실을, 요코 웟킨스는 끝내 알지 못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12살 소녀 시절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있는 줄 몰랐다 해도, 이후 성인이 되어 미국에서 살면서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는 등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모국 일본의 전쟁 놀음을 몰랐을 리가 있었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미국이다. 역사에 무지한 요코 웟킨스의 천박한 역사인식이 마치 반전(反戰)의 귀감이라도 되는 양, 부추겨 책을 쓰게 하고 그 책을 미국 어린이의 필수 교양 교재로 채택하고 있으니 이 무슨 해괴한 노릇일까.
2007년 이미 미주 한인 동포들 항의 있었던 책... 왜 되풀이 되나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하고 선량한 목숨과 인권을 짓밟은 원죄가 있는 나라 일본국의 국민, 요코 웟킨스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탈을 쓴 채 순수한 어린 영혼들을 갉아먹는 책을 펴낸 행위에 미주 한인 동포들은 들고일어났다.
아들 마이클이 읽고 있던 책 <요코 이야기>의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내용에 놀라 아그네스 안 박사 역시 분노에 치를 떨었고, 곧바로 학부모들과 연대하여 미국 교육당국에 강력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주 한인들의 노력으로 2006년~2007년에 많은 주(州)에서 필독서 지정을 해제하는 등 일련의 진척이 있었기에 나는 이 사건이 종지부를 찍은 사건인 줄 알았고, 이후 이 책이 학교들에서 쓰이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콜로라도, 코네티컷, 조지아, 매사추세츠, 네바다,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유타주(州) 등에서 공교육 필수 교재로 채택되고 있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 《요코 이야기》 교재 철회촉구 포스터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요코 이야기)> 교재 철회 촉구 포스터(반크 제공) |
ⓒ 반크 |
최근 하버드대 교수 램지어의 '강요된 위안부는 없었다'라는 취지의 불량 논문이 활개를 치는 것도 모자라, 진작 퇴출됐어야 할 역사 왜곡 책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니 '끝나지 않는 일본의 조선침략 연장선' 같아 분통이 터진다. 오정화 애국지사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분한 마음이 들까 싶다. 아그네스 안 박사의 심정 또한 편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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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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