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핵발전소는 철회됐으나 / 박주희

한겨레 2021. 4. 4. 12: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말고]

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산비탈을 타고 나지막한 집들이 층층이 살갑게도 들어앉았다. 번듯한 벽돌집 한 채 없지만, 옹색하지 않다. (…) 비탈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은 보기에도 예쁘고,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 돌이 많아 ‘석리’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경북 영덕에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 50년 뒤 석리를 그려보자. 설계수명을 다해 폐기된 원전과 여전히 고운 바닷가 마을,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2011년 이맘때쯤 석리에 가 보고 <한겨레>에 썼던 글의 일부다. 그해 말 이곳을 포함한 인근 지역이 핵발전소 터로 선정됐다. 그때부터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은 수많은 풍파에 시달려왔다. 토지 보상을 둘러싸고 온갖 말들이 엇갈리고, 지역은 발전소 유치 찬반으로 갈려 심한 몸살을 앓았다. 2015년에는 주민들이 나서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도 했다. 투표자 수가 주민투표법상 효력이 발생하는 공식 유권자 수의 3분의 1에 근소한 차로 미치지는 못했지만, 투표한 주민의 91.7%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지역의 성난 여론에 놀란 당시 정부는 “‘내가 뿌리내릴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며 지역민들을 달랬다. 그사이 바닷가 마을의 여러 땅 주인이 바뀌고 곳곳에 낯선 건물이 들어섰다. 말 많던 토지 보상도 20%가량 이뤄졌다.

그대로 핵발전소가 들어서는가 하고 포기할 때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과 함께 2018년 ‘천지원전 1, 2호기’ 건설 계획은 취소됐다. 지난달 29일 최종적으로 핵발전소 예정구역 지정이 철회됐다.

이를 두고 언론에선 ‘천지원전 전면 백지화’라고 정리했다. 혹은 ‘천지원전 없었던 일로’라고 못 박았다. 안도하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과연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취소됐다고 아무 일 없듯 백지화되는 걸까.

애초부터 이전 정부가 ‘60년 지역 발전, 1만명 새 인구 유입’을 내세우며 핵발전소 유치를 부추긴 이유는 분명하다. 도시 사람들이 쓸 전기를 만들기 위해 가능하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인 지방자치단체를 골라 당근을 내민 것이다. 그러니 그 계획이 바뀌자 관심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며 힘을 보태던 반핵, 환경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의 갈등비용뿐 아니라 남은 과제도 고스란히 지역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언젠가 에너지 정책이 바뀌면 이곳이 다시 핵발전소로 내몰릴 것이라는 불안도 여전하다.

영덕군은 ‘정부의 일방적 의사결정 책임을 군이 고스란히 지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미 지급받은 특별지원금 380억원 사용승인, 재산권 행사와 생업에 제약을 받은 토지 소유자들에 대한 충분한 대책, 대안 사업 등을 요구하고 있다. 풍력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단지 등이 대안 사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10년 이 문제로 지역민 모두가 고통을 감내했다. 대안 사업은 지역민 전체의 삶이 지속가능하고, 미래의 먹을거리를 일구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권태용 영덕참여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특별지원금 사용 등도 중요한 문제지만, 지역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해양치유마을과 같이 자연과 치유, 휴양을 아우르는 사업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려던 터를 친환경 에너지 교육의 장으로 바꿔보는 역발상도 가능하다. 제로에너지 주택 마을을 만들어 관광과 휴양을 접목해도 좋다. 문 닫은 핵발전소 터를 박물관, 놀이공원으로 가꾼 국외 사례들도 참고할 만하다. 아이디어는 차고 넘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면 실현 가능한 대안들이다. 탈핵 정책을 시작한 정부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다. 정책에 따라 삶터를 내주고 공동체가 갈라지는 고통을 겪은 지역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