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가" "갖다줘" 5000세대 고덕동 아파트 택배난리

남지현 기자 2021. 4. 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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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후문 인근에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이번 달 1일부터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이 금지됐다./연합뉴스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쩔 수가 없네요.”

1일 오후 5시쯤 서울시 강동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5000세대 가까운 대규모 단지 입구로 택배를 찾으러 온 주민에게 택배 기사가 고개 숙여 말했다. 이날 오후 4시쯤 이 단지 후문 주변엔 다양한 크기의 택배상자 수천개가 마치 돌탑 쌓듯 층층이 쌓여있었다. 주민들이 사방에 쌓인 박스 사이에서 자기 택배를 찾아가려 이리저리 박스를 들었다놨다 하며 혼란이 빚어졌다. 이 아파트가 이날부터 안전 사고와 보도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택배 차량의 단지 진입을 금지하며 벌어진 상황이다.

이 아파트 주민 장모(69)씨는 이날 친언니가 보낸 양념 갈비와 김장 김치를 기다리다가 저녁 9시쯤 택배 기사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단지 내 택배 차량 진입이 불가하니 149동 앞으로 택배를 가지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장씨가 사는 동에서 149동까지는 직선 거리로만 650m가 넘는다. 장씨는 “아들도 없고 남편이랑 나만 있는데 그 무거운 걸 노인 둘이 어떻게 들고오느냐고 했는데 택배기사도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고 했다.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에서 최근 택배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 주민이 택배기사로부터 받은 문자. /남지현 기자

주민들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주민 오모(43)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50분쯤 택배 기사로부터 ‘지상 출입을 막아 문 앞 배송이 어려우니 136동 입구에서 택배를 찾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오씨는 “바깥에 볼 일이 있어 6시쯤에야 택배를 찾았는데 아이들 먹이려고 시킨 냉동 고등어가 다 녹아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24)씨도 “친구 생일 선물로 주려고 입욕제를 주문했는데, 택배 기사님이 후문 쪽에 내려놨으니 찾아가라고 해 박스 틈바구니에서 15분을 쪼그려서 택배를 찾았다”고 했다. 19층에 사는 한 주민은 “평소에 세제나 생수처럼 무거운 물건을 택배로 시키는데 솔직히 주민들 입장에서는 문 앞까지 가져다주지 않으면 무거운 택배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하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며 “관리실에서는 안내 방송으로 기사님들께 집 앞으로 배달해달라고 말하라고 안내를 하던데 기사님마다 다 대응이 다르더라”고 했다.

아파트 내 택배 논란이 벌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에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 신도시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아파트 주민들이 교통사고가 우려된다며 택배 차량 진입을 금지하자 택배 기사들이 배송을 거부해 택배 대란이 불거졌다. 택배 대란은 주로 다산 신도시, 송도 신도시 등 수도권 곳곳에서 벌어졌다.

택배 대란이 벌어진 아파트는 단지 내 차량 진입을 금지하는 곳들이다. ‘공원형 아파트'로 불린다. 이들 아파트는 차량이 지하로 출입하게 돼 있는데 문제는 지하 출입구의 높이가 2.3m 정도라는 것이다. 택배 차량은 통상 높이가 2.5m 안팎이라 공원형 아파트 지하로는 출입이 어렵다.

아파트 주민들은 택배 회사에서 2.3m 높이의 지하 출입구에 들어갈 수 있는 저상 차량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 강동구의 해당 아파트 입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2019년 9월 입주를 시작할 때부터 택배 회사들에 공문을 보내 점차 택배 차량 진입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알려 대비할 기간을 충분히 줬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택배 차량이 단지 내 보도 위로 진입한 뒤 물건을 내리고 손수레로 동 사이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배달이 이뤄지다가 1일부터 차량 진입을 막으면서 ‘택배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2018년 택배 대란이 발생하자 정부는 2019년 1월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한해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를 2.7m로 상향했다. 그러나 서울 강동구 아파트 등은 정부의 지하 입구 높이 상향에 앞서 승인을 받아 문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택배기사들도 불만을 쏟아낸다. 택배기사는 택배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아닌 일종의 ‘자영업자’ 신분이어서 차량을 바꾸는 것도 기사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서울 강동구 지역 담당 택배 기사 A씨는 “택배 차량을 안 바꾸고 탑(화물칸)을 자르는 비용만 150만원 이상이 든다”며 “탑을 자르면 지금은 한번에 배달할 수 있는 물량이 400개쯤 되는데 이게 3분의 1정도 줄어들기 때문에 물류센터에 한두번은 더 왔다갔다 해야한다. 그러면 근무 시간도 늘어나고 또 화물칸 안에서 제대로 허리를 펴고 서 있을 수도 없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 택배회사 관계자는 “주민들의 불편함은 알고 있지만, 택배 기사들 입장에선 저상 차량으로 바꿀 경우 한 번에 실어나를 수 있는 물량이 확 줄어들어 다시 물류센터를 왔다갔다해야 하는 등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공원형 아파트의 경우 지정 택배 장소를 정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방법 외엔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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