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천안함 폭침이 해난사고? 87쪽 '음모론 진정서' 살펴보니

원선우 기자 2021. 4. 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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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지난해 9월 접수했던 천안함 재조사 진정서. 87쪽 분량 진정서엔 ‘천안함 좌초설’ ‘군 증거인멸설’ ‘북한 어뢰 조작설’ 등 11년 전 음모론이 반복돼 있다./국민의힘 이채익 의원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천안함 좌초설’ ‘군 증거인멸설’ ‘북한 어뢰 조작설’ 등 11년 전 음모론을 반복하는 87쪽 분량 진정서를 접수했던 것으로 4일 나타났다. 진정서엔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46명 전사(戰死) 장병들의 사인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사실이 없는데도 규명위는 재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규명위는 지난해 9월 7일 천안함 음모론자 신상철씨로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을 속였습니다’라는 제목의 진정서를 접수했다. 신씨는 87쪽 분량의 이 진정서에서 11년 전 주장했던 ‘천안함 좌초설’ 등 내용을 열거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민·군 합동조사단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신씨는 “조사 결과 ‘좌초’의 강력한 증거를 발견했으며, ‘충돌’의 증거를 발견했다”며 “천안함이 좌초 후 충돌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군 당국은 무슨 의도에선지 폭발로 결론을 내렸고, 그것도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최종 발표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지난해 9월 접수했던 천안함 재조사 진정서. 87쪽 분량 진정서엔 ‘천안함 좌초설’ ‘군 증거인멸설’ ‘북한 어뢰 조작설’ 등 11년 전 음모론이 반복돼 있다./국민의힘 이채익 의원

신씨의 진정서 주장은 11년 전 음모론과 전혀 다를 바 없는데도 규명위는 3개월 뒤인 같은해 12월 14일 천안함 전사자 사인 재조사를 개시했다. 신씨는 진정서에서 “46명 승조원 가운데 폭발로 사망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며 “천안함 승조원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은 천안함 사건의 진실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해소하는 일”이라고 했다. 신씨는 진정서에서 ‘전사’ 대신 ‘사망’이라는 용어를 썼다. “희생자들이 해난 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사망한 것과 군 경계업무에 실패하여 적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것의 차이는 대단히 큰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해난 사고’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씨는 진정서에서 11년 전 음모론에 동조했던 인터넷 언론 기사, 민주당 박영선 의원 보도자료 등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천안함 선체 외판을 국방부와 군이 ‘고압 세척’해 증거를 인멸했다거나, 당시 합조단이 공개한 북한 어뢰 설계도는 ‘가짜’라는 등의 당시 음모론도 그대로 반복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엔 “진정 내용이 명백히 거짓이거나 이유가 없는 경우 진정을 각하(却下)해야 한다”(제17조)고 돼 있다. 그런데도 규명위는 ‘음모론 진정서’를 접수하고서도 3개월 뒤 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지난해 9월 접수했던 천안함 재조사 진정서. 87쪽 분량 진정서엔 ‘천안함 좌초설’ ‘군 증거인멸설’ ‘북한 어뢰 조작설’ 등 11년 전 음모론이 반복돼 있다./국민의힘 이채익 의원

규명위는 제대로 된 요건을 갖추지도 않은 진정서를 정식 접수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신씨는 사망인 이름에 ’2010 천안함 승조원 중 사망자'라고 썼다. 주민등록번호란엔 아무것도 기재하지 않았다. 군번 항목엔 ‘해군’이라고, 계급을 적는 칸에는 ‘이병~상사’라고만 썼다. 이채익 의원은 “엉터리 진정서를 접수하고도 진정을 개시한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연합뉴스

규명위는 지난 2일 신씨의 진정을 각하했다. 규명위는 “진정인(신씨)이 천안함 사고를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자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았다”며 “7인 위원이 만장일치로 각하 결정했다”고 했다. 규명위가 천안함 재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지난달 31일 본지 보도로 뒤늦게 알려지며 전사자 유족, 생존 장병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뒤늦게 ‘없던 일’이 된 것이다.

당초 진정 내용 자체가 음모론으로 가득찬 데다, 진정 요건에도 부합하지 않은 재조사를 밀어붙인 건 천안함 음모론에 관대했던 여권 전반의 인식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이인람 위원장을 비롯해 규명위 주요 인사가 민변(民辯) 출신임을 들어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재조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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