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의 투기꾼에 놀아난 한국, 이 수치는 뭘 말하나

박진도 2021. 4. 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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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화국 떠받치는 핵심은 농지 전용.. 제2의 농지개혁에 준하는 대책 세워야

[박진도 기자]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 3월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 667-1,2,3번지에 보상을 노린 수백 그루의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2021.3.9
ⓒ 유성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농지 투기가 부동산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부동산 투기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공직자의 투기행위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국민 분노가 임계치에 달한 듯하다. 문재인정부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부동산 투기와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투기의 뿌리인 농지 수탈(임야 포함)을 멈춰야 한다.

1960년대 초까지 강남 일대는 행정구역상 경기도였고, 대부분 논과 밭, 과수원이었다. 1963년 서울시로 편입 당시 인구 2만 7000명에 지나지 않던 조용한 시골 마을 강남은 이른바 영동지구 개발이 추진되면서 상상을 초월한 토지 투기장으로 변해 갔다. 1966년 1월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착공되자, 한 평에 200원에 지나지 않던 땅값이 3000원으로 뛰어올랐다. 이렇게 시작된 강남의 땅값은 1963년 기준으로 1977년에 강남 지역 평균은 176배, 학동은 1333배, 압구정동은 875배, 신사동은 1000배 올랐다.

이처럼 강남 땅값이 폭등한 것은 단순히 인구 증가에 따른 주거용 및 산업용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땅 투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농지를 수용하여 그 땅에 공공용지·공공시설을 지어 땅값을 올리고 남는 땅을 팔아 개발비용과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교수가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따르면,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윤아무개는 당시 청와대 지시로 강남구 토지의 2%인 24만여 평을 매매해 차익을 남긴 뒤 청와대에 바친 것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박 정권은 각종 토지개발 이권을 재벌들에게 넘겨주고 막대한 정치헌금을 강요했다. ([관련기사] 헬리콥터 타고 땅 보러 다닌 공무원 그의 뒷배 http://omn.kr/1sjrg)

정권 차원의 땅 투기, 정경유착과 재벌들의 땅 투기로 국토는 투기장으로 변해 갔고, 정부는 부동산 개발을 주요한 경기 부양책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재벌기업·건설업자·공직자는 물론이고 중소기업·중산층·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부동산 '대박'을 노리는 부동산공화국이 건설됐다. 부동산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승자는 한 줌의 투기꾼이고 패자는 국민이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동산에 의존해서 성장했는가는 국제비교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토지자산 통계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토지자산 비율은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이다. 2015년 기준으로 독일의 3.5배, 핀란드의 4배 이상, 인구밀도가 비슷한 네덜란드의 3배, 심지어 토건국가로 유명한 일본의 2.5배이다. 국가 전체 비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토지자산 비중도 53.6%로 OECD 전체에서 압도적으로 1위인데, 일본의 38.9%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높다.

핵심은 농지 전용

1960년대 이후의 땅 투기는 농지 수탈의 역사다. 농지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기반 정비가 잘 돼 있어 다른 용도로 전용이 용이하다. 농지가 전용되면 적게는 수 배 많게는 수십 배 가격이 폭등하여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땅 투기꾼이 농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땅 투기꾼은 스스로 농지가격을 끌어올릴 힘이 없다. 그들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농지 수탈에 기생할 뿐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로·철도·공항·산업단지·주택단지 등 다양한 명목으로 농지를 수용하여 크고 작은 지역개발사업을 시행한다. 이로 인해 개발지역과 주변 지역 땅값이 폭등한다. 땅 투기를 막고 불로소득을 환수할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고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니 돈 밝은 투기꾼이 농지를 노린다. 심지어 수지 안 맞는 농사보다는 땅이 전용돼 한몫 잡기 바라는 농민도 적지 않다.

국민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공기업인 LH 임직원들의 농지 투기처럼 사회 지도층, 특히 공직자들이 농지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발표에 의하면 고위공직자의 38.6%, 국회의원의 25.3%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1.3.17
ⓒ 이희훈
 
지난달 17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차로 3기 신도시 후보지에서 농지법 위반 의혹을 폭로하면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공공주택특별법이나 부패방지법 등의 위반 여부만 가지고 수사를 한다면 LH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수사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라며 "농지법이나 부동산 실명법 위반 여부로 수사의 범위를 넓혀 중앙정부 및 각 지자체 공무원, 국회의원과 광역·기초의원, 최근 10년간 공공이 주도한 공공개발 사업에 관여한 공공기관 임직원은 물론 기획부동산, 허위의 농업법인, 전문투기꾼 등 투기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농지법이 이렇게 허술하게 운용돼온 데에는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접수·발급하는 각 기초지자체(시・구・읍・면)와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할 중앙정부(농림축산식품부), 광역지자체(경기도 등)가 자신들의 역할을 방기해온 것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은 1970년 229만 8000ha에서 1990년 210만 9000ha, 2010년 171만 5000ha, 2019년 158만1000ha로 급속히 줄어왔다. 50년 동안 71만 7000ha, 전체 경지면적의 30% 이상이 감소했다. 경지면적이 줄어든 이유는 농지가 다른 용도로 전용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지면적은 1975년의 224만ha에서 2018년에 159만 6000ha로 64만 4000ha가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농지전용 면적은 총 46만 6286ha로 72%를 차지한다. 최근에 올수록 농지전용에 의한 경지감소가 가팔라지고 있다. 다른 한편 농사가 수지맞지 않아 놀리는 농지도 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허황한 명분으로, 다니는 사람 거의 없는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늘리고, 4차선 옆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입주할 업체도 없는 산업단지를 필요면적 이상으로 크게 건설하고, 주택문제 해결한다고 신도시 건설을 남발하는 따위의 농지파괴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경지면적은 0.03ha로 세계 평균 0.24ha에는 말할 나위 없고, 중국 0.1ha, 일본 0.035ha에도 미치지 못한다.

곡물자급률이 21%로 세계 최저인 나라에서 더는 농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농지 수탈로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는다. 농지전용이 주로 이뤄지는 수도권과 대도시 근교 농지는 대부분 이미 비농민 소유이다. 이 땅을 경작하는 소작농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농지를 빼앗긴다.

농지 수탈은 식량안보와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농업과 농촌의 경제·사회·문화·생태환경적 가치의 토대를 파괴하여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 더욱이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탄소의 흡수·저장 능력을 지닌 유일한 산업인 농업과 농지, 토양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121조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하고 예외적으로만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농지를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소유하는 농지가 전체 농지의 50.5%이다. 2015년 농업총조사이니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현행 농지법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농지를 취득할 수 있고, 쉽게 전용이 가능하게 돼 있다.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保全)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므로 소중히 보전되어야 하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농지에 관한 권리의 행사에는 필요한 제한과 의무가 따른다'는 농지법 3조 1항의 농지 이념은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크다.

헌법이 무시되고 법이 지켜지지는 않는 나라, 더욱이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들이 앞다퉈 농지 투기를 하는 나라, 국민들은 이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냐고 묻는다.
 
 정의당 강은미 비상대책위원장과 참석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3기 신도시 농지 불법거래 규탄 및 농지소유실태 전수조사 촉구' 정의당 농민대표자 기자회견에서 LH직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고위공무원들의 농지불법취득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1.3.11
ⓒ 공동취재사진
 
농지전용 가능성 차단해야

LH 사태를 계기로 농지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무성하다.

농지취득 농민 자격 기준 강화, 농지취득증명원 발급 심사 엄격, 농지법 위반 농지 즉각 처분명령, 8년 자경 양도소득세 감면제도 폐지, 농지 투기 엄벌, 농업법인의 비농업인 참여 제한, 농지관리기구 신설,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 투기이익 소급 환수,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 보유세 인상... 모두 시급히 도입해야 할 조치이다.

그러나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지킨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농지전용으로 수 배 혹은 수십 배의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는 한 농지 투기를 막을 수 없다. 농지 투기의 근본 원인인 농지전용을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농지제도는 너무 쉽게 농지전용을 허용하고 있다. 농지법 28조 1항은 '시·도지사는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농업진흥지역을 지정한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이 유명무실하다. 우선 농지 가운데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된 면적이 너무 작고 그나마 지켜지지 않는다.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는 2004년 92만 2000ha(전체 농지의 50.2%)에서 2019년에 77만 6000㏊(전체 농지의 49.1%)로 감소했다.

전체 농지의 절반 이상이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인 셈인데, 이 땅들은 쉽게 전용돼 투기 대상이 된다. 심지어 농업진흥지역 내의 농지조차 매년 전체 농지전용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2000∼3000ha가 전용되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수도권과 대도시 인근의 농지는 모두 잠재적 투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농업진흥지역 농지전용의 70% 이상이 공용·공공용·공익시설이란 사실에서 보듯이 국가가 농지 전용에 앞장서고 있다.
 
 농지를 잠식하는 태양광 아래 잡초만 무성하다.
ⓒ 한국일보 제공
 
최근에는 국가의 재생에너지 계획에 의한 태양광 사업으로 농지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태양광 시설을 위한 전용면적은 2016~2018년 3년간 5618.8ha로 여의도 면적의 19.4배에 달한다(태양광 산지 훼손 면적은 4407ha). 국가가 농지 수탈과 땅 투기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와 농업 조건이 비슷한 일본은 우리나라의 농업진흥지역에 해당하는 농용지 면적이 농지의 89.6%를 차지한다. 이 농지에 대해서는 전용을 금지하고 있다. 농업진흥지역 면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농업진흥지역 대폭 확대에 대한 농지소유자의 반발이 두려우면,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를 등급화해 전용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불필요한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소중한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산업용지나 주택용지는 농지 수탈이 아니라 기존 용지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농부이자 경제학자였던 아더 영(Arthur Young)은 <여행기(Travels)>(1792년)에서 '소유는 모래를 황금으로 만든다'고 했다. 농지는 농민이 소유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된다. 소유에 비할 바 아니지만, 장기간 안심해서 농사 지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차선이다. 젊은이가 귀농하려 해도 농지를 구할 수 없다. 전국의 농지에 대해 필지별로 소유와 이용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여기에는 단순히 소유자와 이용자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농지에 어떤 작물이 어떤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는지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농식품부는 식량자급률 목표를 기존 60%에서 55.4%로 낮추면서 필요한 재배면적에 대해서는 "따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서 질책을 당했다. 농지의 필지별 전수조사를 통해 제2의 농지개혁에 준하는 근본적 대책 없이는 농업과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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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농정>에도 실렸습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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