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합쳐 1.91% 득표율..'성평등 후보들'의 의미와 한계는?

임재우 2021. 4. 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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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7 재보궐선거]

9만3843표, 득표율 1.91%.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운 5명의 후보들(김진아·신지혜·신지예·송명숙·오태양 후보)의 성적을 합산한 결과다. 3년 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내걸고 출마한 신지예 당시 녹색당 후보는 8만2874표·1.67%의 득표율로 4위의 성적을 거둔 바 있다. 후보는 4명이 늘었지만 표는 1만여 표 느는 데 그쳤다.

5명의 후보가 이번 선거를 ‘왜 하는지’ 일깨우고, 양대 정당이 외면하는 ‘성평등’을 의제화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5명의 후보가 ‘각자도생’으로 선거를 치르면서 득표에 한계를 보였고, 결과적으로 양당체제에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구호를 넘어 정치력과 실력’을 입증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양당 대결에 묻힌 ‘성평등 의제’, “소수정당이 본질 일깨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이 발단이 되어 치르게 됐지만, ‘성평등 의제’는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에서 찾기 어려웠다. 당헌까지 개정하며 서울시장 후보를 낸 더불어민주당은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주장했던 의원들을 박영선 후보 캠프의 주요 보직에 앉혔다가 피해자 쪽이 강력하게 비판하자 모두 하차했다. 박 전 시장 사건으로 민주당과 날을 세우던 국민의힘은 정작 성평등 정책을 묻는 시민단체의 질의에 답변하길 거부했다.

여야의 거대정당은 ‘성평등 의제’를 외면하거나 이용하는데 그쳤다. 이런 선거 국면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 계기를 일깨우는 ‘5명 후보’의 존재 자체가 의미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치르는 이유를 의도적으로 회피했고, 국민의힘은 정략적 공격수단으로만 사용했다. 두 정당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선거판에 머무는 사이, 소수정당들은 양당체제의 근원적 한계 속에서도 어찌 됐건 성평등 의제를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고 짚었다.

“다채로운 의제 의미 있지만, 케미는 발생하지 않아”

공통으로 ‘성평등’ 기치를 내걸었지만 다섯 후보가 저마다 차별적인 의제와 선거방식을 선보였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는 탄소중립·동물공존·데이터주권 등 기존 기성정치권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의제들을 중심으로 공약을 구성했다. 신지예 후보의 ‘팀서울’은 특정 개인을 중심으로 선거본부를 꾸리는 관행을 탈피해 각자 다른 전문성을 가진 6명의 부시장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앞세워 눈길을 끌었다. 미래당의 오태양 후보는 양대 정당 후보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소수자 인권’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이들 후보가 성평등 정책과 더불어 기성 정치권이 간과하거나 정책·입법 과정에서 무시했던 미래지향적 대안들을 내놨다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했다.

‘선거는 결과로 말한다’는 냉정한 비판은 피하기 힘들다. 특히 각 후보가 구심점 없이 분산된 형태로 선거를 치르면서 양대 정당의 맞대결에 의미 있는 균열을 내지 못했다는 비판은 뼈아픈 대목이다. 고만고만한 지지율을 나눠 갖는 후보가 5명이나 등장한 상황에서 ‘각자도생’식 선거운동을 펼쳐 이들 사이에 아무런 ‘케미스트리’가 발생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성평등 의제’가 충분히 힘을 받지 못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치력을 발휘해 일정한 득표력을 가진, 무게감 있는 후보를 한 명 만들어냈다면 선거 국면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분열된 형태는 양대 정당에 위협이 되지 못했고, 결국 ‘구호를 외치고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는’ 모양새에 그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작은 단위에서 비전 실현하는 정치·행정적 경험 쌓길”

소수정당의 후보들에게 부족한 것은 “거창한 의제가 아니라 작지만 시민들에게 근접한 정치 단위에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행정적 경험”이라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권수현 대표는 “청년이나 성평등을 앞세운 정당들이 시장이나 국회의원 같이 돋보이는 자리에 집중하는 모습이 아쉬울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순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몰라도 휘발성이 강한 ‘중앙 정치 무대’뿐만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 단위에서 정치적·행정적 경험치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기초의회 등 작은 단위에서부터 자신이 의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시민들에게도 시정을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쌓일 것이다.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정치적 경로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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