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 '내로남불' 아니라는 박범계 장관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현 정권 수사와 관련해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연일 지적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제기가 편향적이고 이미 전현직 법무부장관이 피의사실 공표로 고발돼있는 만큼 설득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박 장관이 문제삼은 사건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현 정부 고위층의 연루 가능성이 높은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에 대해 피의사실 유포를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권력에 대한 보도는 어느정도 허용돼야 하고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장관의 발언 기준은 '내편'"이라며 "내로남불이 아니라고 하는데 정말 아닌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이 '정치적 목적'을 언급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날 "제가 언급한 내용, 형식, 시점 중 특히 시점과 관련해 선거 직전날이었고, 밝히기 어렵지만 법무부장관에게 보낸 사실조회 요구가 언제까지인지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 직전 이같은 보도가 나온 데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언유착 사건이나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사건 등이야 말로 정치적 목적이 분명한 사건들이었다"며 "이 사건들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 대해 전현직 장관이 피의사실 유포를 문제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자신의 SNS에 4차례에 걸쳐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의혹 사건 관련 글을 게시했다. 박 장관이 강조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검사는 기소 전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일절 공개할 수 없으며 내사나 불기소 사건도 비공개가 원칙이다. 이 일로 임 연구관은 시민단체로부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러나 박 장관은 “표현의 자유 범위에 해당한다”며 신중을 당부하는 데 그쳤다.
진혜원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SNS에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 현장 사진을 올렸고, 지난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 공무원의 선거관여 등 혐의로 고발됐다.
전현직 법무부장관들 역시 모두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한 전 총리 모해위증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는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면서 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감방 동료 김모씨의 '법정 증언 허위성을 논의하라'고 했다"며 "김씨가 한 전 대표를 서울중앙지검 11층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것과 공여자 접견 당시 쪽지 내용 등을 언급하며 김씨의 구체적인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씨의 구체적 피의사실과 허위, 위증, 모해 목적 등과 결부시켜 혐의를 예단하도록 하고 유죄의 심증을 갖도록 유도함으로써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을 위반했다"고 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해 피의사실을 유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법세련은 “추 장관은 법사위에 출석해 ’검언 유착‘이라는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는 직무를 행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구체적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피의사실 공표 기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 장관은 이날 “피의사실공표에 관한 문제의식은 늘 가져왔고 전면적 금지가 아닌 원칙있는 금지가 돼야 한다”며 “지금 기준은 설득력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번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면 검토 후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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