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오세훈 취임 첫날부터 '딴지'..오 시장의 '스피드 주택공급' 발목잡을 듯

세종=박성우 기자 2021. 4. 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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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첫 출근... 홍남기 "주택공급, 지자체 혼자 못해"
정부-서울시, 상호협력 없이는 정책 추진 어려워
서울시의원 109명 중 101명 민주당도 난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일인 8일 2.4대책 등 그간 추진해오던 공급대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는 재차 천명했다. 오 시장이 선거 공약대로 민간 주도의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등 각종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경우, 발목을 잡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취임 한 달만에 노후 아파트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스피드 주택공급’을 방해하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오 시장 공약대로 민간 중심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활성화를 나선다고 해도 내년 6월까지 1년 남짓 임기가 남은 시장이 독단적으로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서울시내 구청과 서울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것도 현실적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부동산관계 장관회의에서 "주택 공급은 행정 절차상 중앙정부나 광역지방자치단체, 기초지자체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호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오 시장의 민간 중심 재개발 구상에 제동을 걸 수 있음을 시사했다.

(왼쪽부터)오세훈 서울시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조선DB

◇ 서울시장, 공약 이행은 ‘첩첩산중’

홍 부총리의 말은 오 당선자의 ‘부동산 규제완화 공약’을 염두에 둔 일종의 ‘경고성 발언’로 풀이된다. 오 시장이 규제 완화를 공약했지만, 중앙정부의 협력 없이는 공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중앙정부 역시 서울시의 협력 없이는 공공개발 사업을 속도감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홍 부총리의 얘기는 사실상 정부든, 지자체 든 주택공급을 혼자선 할 수 없다는 의미, 서로를 물고 늘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얼핏보면 중앙정부가 협력해서 잘해보자는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행정절차 단계에 중앙정부가 있기 때문에, 협력없이는 공약을 이행할 수 없으니 협조하라는 경고로도 들릴 수 있다"고 했다.

그간 오 당선자는 후보 시절 1호 공약으로 "일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며 스피드 주택공급을 제시했다. 집값 상승을 우려해 인허가를 보류한 민간 재건축, 재개발 사업을 정상화해 총 18만5000호를 공급한다는 목표다. 1년2개월의 짧은 임기를 고려하면 주요 공약 이행에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이 공약처럼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개발의 매력도는 떨어질 수 있다. 2·4 대책에서 제시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이나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 사업을 비롯해, 작년 5·6 대책과 8·4 대책에서 나온 공공재개발과 공공재건축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있어야 만 매력을 갖는다.

만약 규제가 사라진다면 공공이 아닌, 민간 주도 사업에 눈길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이미 오 시장은 서울시의 재건축·재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용적률 규제 완화와 35층 이하 규제도 풀겠다고 약속했다.

◇ 여당밭 시의회, 정부는 절차로 ‘협박’

하지만 오 시장이 공약을 완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앙 정부와 여당의 협력없이는 공약 이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압박은 지난달 31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유세 현장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이번에 뽑히는 시장의 임기는 1년짜리"라며 "싸움을 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싸워야 하고, 정부하고 싸워야 하고, 시의회하고 싸워야 한다"며 "시의회만 해도 시의원 109명 중 101명이 민주당이다. 싸워서 이기겠느냐"고 말해 논란이 됐다.

오 시장이 넘어야 할 산은 ‘구·시의회’도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의회와 자치구와 협의를 얼마나 잘 이끌어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서울시의회 소속 의원 109명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은 101명에 달한다. 자치구 25곳 중 서초구를 제외한 24곳 구청장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오 시장이 공약으로 내건 주거지역의 용적률 상향과 층수 규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의견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변경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오 시장은 8일 첫 출근길에 시의회를 찾았다. 오 시장은 이날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을 만나 "많이 도와달라. 각별히 모시겠다"며 낮은 자세로 시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요청했다.

◇서울시-기재부·국토부 대립각… 규제 풀면 공공개발 매력 ‘뚝’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부동산 관련 정부 부처들도 비상에 걸렸다. 오 시장이 공약대로 민간 주도의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비롯한 각종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경우, 속도감 이는 공공개발 추진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2·4대책을 통해 전국 도심에 83만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가운데 서울이 32만 가구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택공급 절차마다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의 협조 없이 정부의 일방적인 진행이 어렵다.

이에 홍 부총리는 정부의 기존 부동산정책의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강경책을 선택했다. 그는 "보궐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서는 그 취지를 짚어보도록 하겠지만 여야를 떠나 ‘부동산시장 안정’과 ‘주택공급 확대’를 통한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지향점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이러한 지향점을 향해 투기수요 억제, 실수요자 보호, 불공정 거래 근절 등 부동산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주택공급을 기다리는 무주택자, 실수요자를 위해 4월 중 신규택지 발표, 4~5월 중 지자체 제안 추가사업 후보지 발표, 5월 중 민간제안 통합공모 등 2.4대책을 포함한 주택공급대책을 일정대로 추진해 나갈 방침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오 시장의 공약대로 규제들이 풀어질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개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여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개발이 정상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속도를 내야한다는 조바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사태로 리더십에 금이 간 변창흠 장관을 교체하지 않고 시한부 장관으로 놔둔 것도 속도를 지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오 시장의 짧은 임기 등을 고려했을 때 부동산 정책의 180도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다만 정부와 서울시가 사안마다 충돌할 가능성은 크다. 당장 공공개발의 폐지는 몰라도, 속도 측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느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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