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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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어떤 초상화를 원하나요

정중원 입력 2021. 04. 0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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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여사에게 초상화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함께 사진첩을 보았다. 자신을 찍은 여러 사진 중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살피며,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기 원하는지 추론하기 위해서였다. 사진첩을 넘기던 중 한 사진에 시선이 날아가 꽂혔다. 사진에 담긴 얼굴에서 품위와 카리스마가 보였다. 들뜬 목소리로 ‘이 모습은 어떠신지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답했다. ‘엄하고 심술 맞아 보입니다, 이 사진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남이 보는 내 모습과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은 다르다.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이 명제를 끝없이 상기시킨다. 그저 더 젊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한 사람일수록 구체적이고 특수한 형상으로 그려지기를 원한다. 여행을 즐긴다는 한 노(老)기업인은 말끔한 정장 대신 붉은색 가죽 재킷을 입은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군 장교 출신의 대학교수는 초상화에서 부드러운 지성 대신 매서운 강인함을 강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사진첩을 함께 보았던 여사는 친근하고 격의 없는 모습으로 그려드리게 됐다. 그분은 지금도 봉사 활동을 최고의 낙으로 여긴다.

당사자가 속으로 바라는 모습은 허영으로 치부하고 화가가 겉에서 관찰한 모습만을 진실로 여기는 것은 작가의 고집일 수 있다. 나는 이를 지양한다. 타인의 시선과 본인의 시선 사이에 위계는 없다. 각각 개인을 구성하는 여러 단면 중 하나를 포착할 뿐이다. 예술적 개성을 마음껏 펼치는 일도 즐겁지만, 한 인간이 오랜 시간 스스로에 관해 구축한 이미지를 포착하고 다듬어 기록하는 일도 그만큼이나 소중하고 값지다.

더불어 나 스스로에게도 질문해 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나의 지향과 바람을 한 이미지에 함축한다면 어떤 초상이 그려질까. 그 초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을 나는 지금 충분히 살아내고 있는가. 늘 남의 얼굴만 그리느라 정작 내 얼굴은 깊이 바라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거울을 더 자주 봐야겠다.

/정중원 초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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