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히스토리, '강골검사'에서 野 대선주자 반열 [레이더P]

이석희 입력 2021. 4. 10. 08:03 수정 2021. 4. 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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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엘리트] 朴정부·文정부 거치며 '정치적 자산' 축적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돌잔치 시절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 [출처=윤석열 팬카페 "열지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73년 대광초등학교, 1976년 충암중학교, 1979년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모의재판서 사형 구형 뒤 강원도로 도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학 동기, 선배들의 전언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학창시절 활발하고 친구를 잘 챙기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또 야구를 좋아해 교내 대회에서 법대팀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학교 졸업사진 [출처=윤석열 팬카페 "열지대"]
'강골' 기질을 보여주는 일화도 전해진다. 1980년대초 법대생들이 모여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건에 대한 모의재판을 열었는데 당시에도 검사 역할을 했던 윤 전 총장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안기부 요원들이 주요대학에 배치되고 학도호국단이 운영되던 시기였다. 그는 모의재판 사건 이후 한동안 강원도 모처로 도피했다고 한다.

법대 79학번 동기로는 김선수 대법관,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 남기춘 변호사, 석동현 변호사 등이 있다. 특히 이철우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죽마고우' 사이다. 김선수 대법관과는 사법고시를 함께 준비하면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 대법관이 필기전형인 2차 전형까지 붙고 면접인 3차 전형을 앞두고 있었는데 당시는 전두환 정권이라 그의 과거 시위 전력이 문제가 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철우 교수의 아버지인 이종찬 의원은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실세인 원내총무를 맡고 있었다. 소식을 접한 이 교수는 윤 전 총장에게 김 대법관을 데리고 아버지인 이 전 의원을 찾아가도록 부탁했고 윤 전 총장은 이를 들어주었다. 김 대법관은 그해 최종 합격했다.


9수 끝에 사시 합격


군복무는 신체검사 결과 부동시로 면제 받았다. 윤 전 총장은 오랜기간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83년 학사 졸업 후 서울대 법학대학원에 진학해 사법시험을 준비를 이어간다. 1988년 석사를 졸업 이후 3년 뒤인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9수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1992년 사법연수원 제23기로 입소해 2년 간 연수과정을 거친다. 연수원 동기로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이용구 법무부 차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주광덕 전 국민의힘 의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용석 변호사 등이 있다. 동기들은 그에 대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 "지식이 깊었다"는 등의 평가를 내놨다.

박범계 장관의 경우 윤 전 총장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항명 파동'으로 징계를 받자 페이스북에 그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며 "윤석열 형"이라 부르고 "의로운 검사"라 표현하기도 했다.

연수원 수료 후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로 첫 발을 내딛는다. 이후 1996년 춘천지검 강릉지청, 1997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일하다 1999년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특수2부 소속이었던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수사는 경찰청 정보국장 뇌물수수 사건이었다. 경찰 직제상 정보국장의 계급은 치안감으로 치안총감(경찰청장), 치안정감(경찰청 차장 등)에 이은 3번째다. 그런데 현직 치안감이 구속된 것이다.


대검 중수부 활동


이후 2001년 부산지검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 이듬해인 2002년 사표를 제출하고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가 된다. 그러나 1년 만에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평양을 나와 다시 검찰로 복귀한다.

2003년 광주지검으로 복귀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검 중수부로 간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을 비롯해 여야 불문 유력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이 줄줄이 수사했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안대희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필두로 남기춘 중수1과장, 유재만 중수2과장, 이인규 원주지청장 등 부장검사급 3명을 포함해 총 15명의 검사가 참여한 매머드급 수사팀이었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박찬호 제주지검장도 당시 함께했다. 윤 전 총장은 당시 노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과 고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 이상수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등을 구속시키며 수사팀에서 활약했다.


특수통 검사


2005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06년엔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에서 핵심 역할을 하며 '특수통'의 면모를 키워간다. 대검은 수사팀에 윤 전 총장을 합류시키고 규모를 확대하는데 멤버가 화려했다. 당시 박영수 중수부장, 채동욱 수사기획관, 최재경 중수1과장을 비롯해 '소윤' 윤대진 검사, 한동훈 검사 등이 함께했다.

수사가 마무리로 접어들고 기소 단계에서 윤 전 총장의 '강골' 면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가 전해진다. 2006년 4월 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속 여부를 두고 검찰 안팎과 언론에선 재계 및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은 "하루 종일 고민하겠다"며 고심에 빠졌다. 이에 윤 전 총장과 윤대진 검사는 정 총장을 찾아가 '법에 따라 정몽구 회장을 구속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고 선언했고 끝내 정 총장이 구속영장 청구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2007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에 부임한 윤 전 총장은 2008년초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연루된 'BBK 사건' 특검에 파견검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엔 대전지검 논산지청장을 거쳐 대구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 범죄정보담당관 등을 지냈다. 2010년과 2011년엔 연달아 요직인 대검 중수2과장과 중수1과장을 지냈으며 2012년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에 부임한다.

중수1과장 시절엔 부산 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이끌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을 구속기소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조국 전 장관 수사로 여당과 갈등한 직후 열린 국정감사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현 (문재인) 정부 중 어느 정부가 검찰 중립을 보장하냐"는 이철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저축은행 수사 경험을 들며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측근과 형 뭐 이런 분들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었던 것으로,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항명 파동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3.10.21.[이승환기자]
윤 전 총장이 '살아있는 권력 수사'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된 건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하면서부터다. 그해 4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특별수사팀 구성을 지시하고 윤 전 총장을 팀장으로 임명한다. 수사팀은 원세훈 국정원장을 소환조사한데 이어 국정원을 13시간에 걸쳐 압수수색하는 등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국정원 압수수색은 2005년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에 이은 역대 두번째였다.

정권과의 갈등은 6월부터 불거졌다. 윤 전 총장은 원세훈 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을 보고했는데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재검토를 주문하는 등 부당한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이후 9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불거졌고 황교안 장관은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다. 채 총장은 사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윤 전 총장도 압수수색 영장 처리 과정 논란으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그는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 등장해 작심발언을 쏟아낸다. 선배였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앞에 두고 "수사를 앞으로 치고 나가게 해줘야하는데 자꾸 따지고 '도가 지나치다'고 한다면 수사하는 사람들은 그런 걸 외압이라 느낀다"고 했다. 또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수차례 보고했다며 "검사장이 수사를 승인하지 않았다. 검사장을 모시고 사건을 더 끌고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하기도 했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검찰 조직문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항명 파동'이란 말까지 나왔다.


"사람에 충성하지 안는다"


당시 검찰 기강 해이를 지적하는 의원으로부터 "조폭보다 못한 조직이다. 증인(윤 전 총장)은 조직을 사랑합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대단히 사랑한다"고 했다. 이어 "혹시 사람(채 검찰총장)에 충성하는 건 아닌가"라는 물음에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총장은 12월 법무부 징계위원회로부터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게된다. 당시 윤 전 총장의 법대 79학번 동기이자 검찰 '특수통' 동료였던 남기춘 변호사가 그의 특별변호인을 맡기도 했다.

항명 파동 이후 암흑기가 찾아온다. 2014년 1월 좌천성 인사로 대구고검 검사로 발령 받았고 2년 뒤인 2016년에도 직급의 변동 없이 대전고검으로 자리만 옮겨갔다.


국정농단 수사팀장

박근혜 대통령이 연루된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1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열었다. 왼쪽부터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 이규철 특검보. [한주형 기자]
좌천 당한 그에게 정권의 위기는 기회로 돌아왔다. 2016년 말 정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여야 합의로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 특별검사로 임명된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은 20명의 검사를 진두지휘할 수사팀장으로 윤 전 총장을 지명한다. 윤 전 총장은 수사팀 전체를 총괄하는 동시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담당해 활약한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과 출범과 함께 윤 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다. 전례가 없는 파격인사였다. 전임 이영렬 지검장은 사법연수원 18기로 윤 전 총장보다 5기수 위였고 직제상 아래에 위치하는 노승권 1차장검사도 2기수 위인 21기, 이동열 3차장검사도 1기수 위인 22기였다. 첫 출근 당시 노승권 1차장검사가 지검장인 윤 전 총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는 "중앙지검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공소 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적임자"라고 이유를 밝혔다.

특수 수사를 포함해 주요 사건들이 모이는 자리에 오른 윤 전 총장은 거침없는 '적폐 수사'에 나선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는 물론 이명박 정부 국정원 댓글 사건 후속 수사, 이명박·박근혜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 수사, 사법 농단 사건 수사 등을 줄줄이 몰아쳤다. 이 과정에서 2018년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기도 했다.


문정부 검찰총장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2019.7.25 [이충우기자]
2019년 6월 그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다. 야당의 반발 속에 청문보고서 채택은 무산됐지만 문 대통령은 7월 임명을 강행한다. 문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식에서 "권력형 비리에 대해선 권력에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엄정하게 임해달라"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한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든 정부는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국과 윤석열, 그리고 정권과 갈등


한달 뒤인 8월 문 대통령은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다. 직후부터 조 전 장관 및 그의 가족을 향한 비리 의혹들이 쏟아졌다. 아내 정경심 교수가 주도한 자녀 입시비리 의혹, 정 교수와 조 전 장관 5촌 조카의 사모펀드 불법투자 의혹, 조 전 장관 동생의 웅동학원 채용비리 의혹 등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검찰은 의혹 제기 11일 만에 전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딸 입시비리와 관련된 부산대 의전원부터 서울대, 웅동학원, 코링크PE 등 20여곳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 수사는 초유의 일이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일엔 정경심 교수를 기소한다.

논란과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 윤 전 총장은 멈추지 않았다. 검찰은 조범동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조 전 장관의 딸을 소환조사한다. 이어서 조 전 장관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 윤 전 총장의 지인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이때의 수사 결정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이미 고소·고발이 접수된 상황에서 '오히려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비춰질 것'이라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은 결국 취임 한달만에 사퇴한다. 하지만 정권을 겨눈 수사는 오히려 더욱 확대됐다. 조 전 장관 사태를 넘어 청와대의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에 대한 수사도 개시됐다.


추-윤 갈등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충우기자]
2020년 1월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추미애 장관이 임명된다. 추 장관은 취임 후 연속된 검찰 인사에서 윤석열 사단을 대거 좌천시킨다. '윤석열 패싱' 논란이 불거졌고 '식물총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후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대해선 수사지휘권 발동해 윤 전 총장을 수사에서 배제한다. 역대 2번째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이른바 '추-윤 갈등'이 극에 달하자 윤 전 총장은 작심한 듯 정치적 발언을 했다. 그는 8월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라고 말했다. 당시는 민주당이 임대차법 등 부동산 3법을 단독 강행처리한 직후라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급기야 여권에선 윤 전 총장 자진사퇴 요구와 해임건의 주장까지 나왔다.

이후 윤 전 총장은 압박을 받았다. 11월 추 장관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함께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다.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는 즉시 법원에 직무정지 효력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준다.

추 장관은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소집하고 2개월 정직을 결정한다. 그러나 법원은 징계에 대해서도 효력 정지를 결정하며 다시 한번 윤 전 총장의 손을 들어준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추 장관은 사퇴했다.


대선 지지율


'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그에 따른 '정권의 핍박'이라는 서사는 윤 전 총장을 '순교자'로 만들었다. 그는 12월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른다. 현직 검찰총장이 1위 대선 주자로 등극한 것은 전무한 일이었다. '윤석열 신드롬'이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정작 검찰총장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후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 과정에서도 '윤석열 패싱' 논란이 불거졌고 여당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기 위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을 발의했다.


총장 사퇴와 ‘별의 순간'


결국 윤 전 총장은 사퇴를 결심한다. 그는 사퇴 전날인 3월 3일 자신이 검사 생활을 처음 시작한 대구지검을 찾아 여당의 검찰 직접 수사권 폐지 추진에 대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작심 발언한다. '검사 윤석열'에서 '정치인 윤석열'로의 변신을 예고하는 수사(修辭)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1.3.4.[이충우기자]
이튿날 오후 대검으로 출근한 그는 사퇴를 선언한다.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지금 파괴되고 있다"며 "제가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하루만에 사표를 수리했고 윤 전 총장은 27년의 검사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사퇴 이후 그는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9일과 10일 연달아 LH 투기 사태를 비판했다. 그는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고 했다. 또한 "청년들이 공정한 경쟁을 믿지 못하면 이 나라의 미래가 없다"며 "게임의 룰조차 조작되고 있다"고 했다. 4·7 재보궐선거를 일주일여 앞둔 29일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왜 하게 됐는지 잊었느냐"며 "(이번 선거가)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정치인' 윤석열 행보에 촉각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2~2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윤 전 총장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는 34.4%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사퇴 이후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3월 19일 원로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찾아 자신의 정치 경험이 부족한 점 등을 이야기하며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엔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사전투표에 참여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정치적 행보를 컨설팅해주는 전문가가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정치인 윤석열'의 성공 가능성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엇갈리지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장점과 단점은 뚜렷하다. 장점은 '스토리'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유력 정치인들의 인기 비결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스토리를 가졌다는 점인데 '역경을 거친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온 국민이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정치는 '능력있는 사람'보다 '사연있는 사람'이 더 큰 포텐(가능성)을 가지기 마련"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은 이미 좋은 자산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단점은 역시 '세력'이다. 여론조사에선 1위일지라도 현실 제도권 정치에 안착하기 위해선 세력과 조직이 필요한데 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윤석열 개인에 대한 도전과 검증으로 연결된다. 세력 마련을 위해선 제3지대 구축이든 제1야당 입당이든 기존 정치세력과 손을 잡아야하는데 그 순간부터 주변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쏟아질 것이다. 야권 경쟁 주자들의 견제구도 상당할 것이다.

그가 정치 문법을 잘 흡수해 이런 과정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가 남아있다. 한 중진 의원은 "정치판에 뛰어들면 후배 검사 여러명보다도 내 편인 시·구의원 한명이라도 더 있는게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기성 정치권에 잘 동화되는게 관건"이라고 관측했다.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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