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급식 빗장 푼 정부.."우리밥 간섭말라" 직장인 분노

임성빈 입력 2021. 4. 11. 05:00 수정 2021. 4. 11.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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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급식 개방, 기업·직원·정부 동상이몽

삼성그룹 구내식당은 삼성웰스토리가, 범(凡)현대가(家) 그룹은 현대그린푸드가 도맡는 식으로 몰려 있던 대기업 단체급식 일감을 외부에 개방하기로 하자 “급식 퀄리티(질)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업 직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정부는 “일감을 나누면 급식 산업의 서비스 수준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직원과 정부 사이에 낀 기업들은 “급식이 맛없으면 입사도 안 한다는데, 불만이 나오지 않을 다른 업체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 익명 게시판을 중심으로 구내식당 일감 개방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 삼성ㆍ현대자동차ㆍLGㆍ현대중공업ㆍ신세계ㆍCJㆍLSㆍ현대백화점 등 8개 대기업은 단체급식 사업을 경쟁입찰로 전환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착화한 내부거래 관행에서 벗어나라”며 주도한 일감 개방 선언이다.


①직장인 “우리 밥을 왜 정부가”

지난달 서울 명동 음식점 거리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산책하고 있다. 뉴스1

총 4조3000억원 규모인 단체급식 위탁 시장은 삼성웰스토리ㆍ아워홈ㆍ현대그린푸드ㆍCJ프레시웨이ㆍ신세계푸드 등 상위 5개 사업자가 80%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주요 대기업의 계열사 또는 친족 기업으로, 이들의 일감이 다른 중소 단체급식 업체에도 나눠질 전망이다.

공정위의 의도와는 달리, 직장인들 사이에선 정부가 회사 밥까지 간섭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 대기업 직원은 블라인드에 “우리 밥을 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냐”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소 업체가 들어오면) 대기업 구내식당이 군대 식단보다 맛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조소적 반응이 잇따랐다.

일감 개방의 순기능을 기대하는 반응도 있었다. 한 직장인은 “공장 등의 사업장에선 밖에 나가서 사 먹기도 어려워 무조건 단체급식만 먹어야 한다”며 “그런데 급식의 질이 낮아도 경쟁이 없으니 다른 업체로 바꾸든가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예전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②기업 “급식 맛없다면 신입사원 안 온다는데”
애초에 대기업은 급식을 하나의 사업이라기보다 복지 차원의 문제로 접근했다.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구내식당 메뉴와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거래를 이어온 대형 업체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시선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요즘 신입사원은 구내식당 급식이 맛이 없거나, 회사 건물의 근무 시설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나면 입사도 안 한다더라”며 “인재 모시기에 열중하는 기업 입장에선 직원 식사도 공들여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급식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대기업 단체급식의 식수와 위생 기준을 맞추더라도 기존 대형 업체가 제공하던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대기업 구내식당에 단가를 맞춰 무리하게 들어가려다 자금난에 빠지는 등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대규모 식수를 제공하는 대기업 구내식당은 대형 업체가, 비교적 적은 식수를 제공하는 구내식당은 중소 업체가 나눠 가져온 시장이기 때문에 일감 개방의 효과가 작을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③공정위 “세계적 단체급식 기업 탄생 밑거름될 것”

권순국 공정거래위원회 내부거래감시과장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8개 대기업집단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 개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공정위는 “지난 25년간 단체급식 상위 5개사가 수의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일감을 확보했던 거래 관행을 깼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언에 동참한 대기업 구내식당 사업 규모는 1조2000억원으로 식수로는 약 1억7800만 건에 이른다. 중소기업에 대규모 시장이 열린 것은 사실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소기업 등 특정 기업과 거래하도록 강제하거나, 계열사 등 특정 기업과의 거래를 무조건 배제하도록 한 것이 아니다”라며 “8개 대기업이 스스로 일감 개방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번 일감 개방을 통해 국내 단체급식 업계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앞서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한국에도 미국 아라마크ㆍ프랑스 소덱소ㆍ영국 콤파스 등과 같은 세계적 단체급식 기업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물류ㆍ시스템 통합(SI) 분야의 일감 개방을 유도하겠다”이라고 밝혔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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