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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정보 가치·이익 실현 따라 유무죄 갈려.. 투자금도 몰수대상 [심층기획]

이창훈 입력 2021. 04. 11. 10:01 수정 2021. 04. 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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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투기 일벌백계 가능할까
유죄 판결문 8건 분석해보니
妻명의로 도로 신설 땅 사들인 공무원
"공청회서 이미 공개된 정보" 주장에도
"비공개 회의.. 매도인도 개발 몰라" 유죄
차명 매입땐 금전거래로 실소유주 판단
추징대상도 '이익→취득재물 전체' 확대
제3자 투기는 내부정보 '인지 여부' 관건
“부동산 적폐 청산과 투명하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 질서 확립을 남은 임기 동안 핵심적 국정 과제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겠습니다.”

지난달 1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전방위로 확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공언했다. 이후 정부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부동산 적폐’로 명명하며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꾸리고 검찰과 국세청 등 관계기관을 총동원했지만, 투기사범을 적발해서 실제 처벌할 수 있기까지는 법리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앞서 부동산 투기로 유죄를 받은 지자체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 등의 판결문에서는 △비공개 여부와 정보의 가치 △정보 접근성 △차명의 경우 자금 조달에 기여한 수준 등이 입증돼야 유죄를 받을 수 있었다. 공직자로부터 정보를 건네받아 투기에 나선 제3자의 경우 정보의 가치에 대한 인식, 가담 정도에 따라서 유무죄가 엇갈렸다.
지난 3월 16일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관련한 제보를 받는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 경찰 신고센터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내부 ‘비밀’ 여부, 이익 실현 가능성에 달려

4일 세계일보가 분석한 8건의 부동산 투기 사건 관련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우선 투기에 이용한 내부 정보의 가치와 비밀 여부를 우선 판단했다. 투기에 나선 공무원들은 건설·도시계획 관련 부서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경기 남양주시의 건축녹지과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04년 6월 도시기본계획 변경에 따라 건설될 새 도로 인근 농지 1700㎡(약 514평)을 아내 명의로 샀다. A씨는 “공청회를 통해 보도됐고 도로 신설 내용도 공개돼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법령에 의해 비밀 분류 명시된 사항에 한정하지 않는다”며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비밀의 범주를 이익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지자체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회의가 비공개였던 점, 구체적인 도로계획을 A씨에게 땅을 판 매도인도 몰랐던 점 등을 근거로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공무원이 부동산 개발업체 요청으로 개발계획 도면을 건네 업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직접적인 증거 부족, 비밀 누설과 재산상 이익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 부족으로 무혐의 처리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준공 자료를 건네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이미 부동산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었고 준공 자료를 이용함으로써 얻게 된 이익 사이에 어떠한 차액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상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향후 LH 직원과 공무원이 내부의 비밀을 이용했다는 것을 입증할 때도 당사자의 정보 취득 경위, 구체성, 토지 매입 시점을 기준으로 외부에 공개된 정도, 가격 변동 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인척 동원한 차명 매입, 차액→ 전체 몰수·추징

토지 매입은 대부분 친인척과 지인 등 명의를 내세운 차명 거래로 이뤄졌는데, 재판부는 토지 매입 자금 조달과 관련자 금전거래 등을 토대로 실소유주를 판단해 몰수·추징 결정을 내렸다. 전 대구시의원 B씨는 동료 시의원이었던 C씨 소유 임야에 도시계획도로가 개설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해당 부지 일부를 C씨에게서 매입한 혐의로 기소돼 2017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C씨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시세보다 싸게 넘겨받은 땅은 전부 몰수됐다. B씨는 처남과 지인 명의로 땅을 매수했지만 재판부는 B씨가 매매대금을 마련하고 계약을 주도한 점 등을 근거로 사실상 소유주가 B씨라고 판단했다.

2000년 초기에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 사건에서 추징금은 ‘이익’에 한정됐다. 2002년 2월 경기 과천시의 건설과에 근무하던 D씨는 도로개설 예정 부지의 땅을 아내 명의로 4억5000만원에 산 뒤 2003년 9월 16억5000만원에 팔았다. 1심은 징역 2년에 12억원의 전매 차익 추징을 명했다. 땅을 매입한 금액은 추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5년 7월 “재물을 취득하기 위한 대가로 지급하는 금원 등을 뺀 나머지를 추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범죄행위로 취득한 재물 전체를 몰수·추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2009년 3월에는 “추징액이 실제 범인의 재물 취득으로 받은 이익을 초과하더라도 헌법상 재산권 보장,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패방지법 86조의 ‘업무상 비밀 이용의 죄’에서 명시한 몰수·추징의 범위가 점차 확대된 것이다. 투기로 얻은 수익만 추징하라는 항소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어 재물 전체 가액을 추징한 사례도 있다.
다만 내부 정보를 공무원이 아닌 제3자가 이용해 투기했을 경우에는 추징·몰수까지 한층 더 복잡해진다. 남양주시 공무원 A 씨의 권유로 신설될 도로 인근 땅을 산 지인 E씨에 대해 재판부는 “E 씨가 (내부 정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몰수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LH사태 등과 관련해서도 제3자가 신도시 지역 등의 땅을 사기 전 비공개 내부 정보를 인지한 뒤 샀다는 점이 입증돼야 처벌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2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처분·소급카드’ 꺼낸 당정… 법조계 “헌법 무시한 대책” 우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비롯한 공직자 등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 후속조치로 내놓은 ‘부동산 투기근절 대책’에 대한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투기로 얻은 부당이득 몰수를 소급 적용하고, 농지를 강제 처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하나같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급급해 헌법까지 무시한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9일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투기 목적으로 취득한 농지에 대해 즉각 강제처분 명령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신속한 강제처분을 위해 현행 1년인 처분 의무기간을 배제하도록 농지법도 개정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공직자가 부동산 투기로 부당이득을 얻은 데 대한 몰수 처분을 소급 적용하는 방안까지 추진키로 했다.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은 “현행법으로도 공직자 부동산 투기의 부당이익을 몰수하고 있고 이미 추진 중”이라며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몰수를 위한 소급입법에 나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인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 연합뉴스
법조인들은 정부의 이 같은 대책에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헌법상 소급입법은 명확히 금지된 행위인데도 정부 여당이 LH 사태에 분노한 국민감정을 이용해 헌법도 무시한 채 일을 진행하려 한다고 봐서다. 헌법 제13조2항엔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부동산 전문가인 권재호 변호사(법무법인 센트로)는 “(소급 적용의) 위헌성 자체를 부인할 수 없다”며 “공익상 필요가 엄청날 때 소급 적용이 허용될 수 있는데 이번 사태가 본질적으로 그 정도의 공익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서울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 역시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벌어질 때마다 소급입법을 하겠다는 건가”라고 반문하며 “결국 헌법 위반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 강남구 LH 서울본부의 모습. 뉴스1
토지 강제처분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김예림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이 부분도 분명히 위헌 소지가 있다”며 “강제처분을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건지도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김한규 변호사도 “정부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내용의 정당성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도 중요하다”며 “지금처럼 국민적 분노가 큰 상황에서 누가 대책에 반대할 수 있겠나.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더욱 절차적 정당성과 법적 안정성에 대한 고려와 존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훈·이희진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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