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고 더 많은 배 몰리며 '제2 수에즈 대란' 조마조마 [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입력 2021. 4. 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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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물류업계, 북극항로·제2 수에즈 운하 개설 기대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3월23일 수에즈 운하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가 좌초하면서 전 세계 해운 물동량의 12%를 차지하는 수에즈 운하의 통행이 한순간에 차단됐다. 1869년 개통한 수에즈 운하가 단 한 척의 사고로 인해 완전히 차단된 최초의 사례였다. 이집트 정부와 전 세계 해난구조 업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좌초됐던 에버기븐호가 3월29일 사고 지점에서 벗어나면서 수에즈 운하의 통행은 재개됐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국제적 갈등으로 인해 몇 차례 수에즈 운하 통행이 중단된 바 있지만 그 후 전면 통행 중단은 없었기에 이번 사고는 국제적으로 큰 충격을 줌과 동시에 해운업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었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된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를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모습ⓒEPA 연합

환경·계절적 한계로 북극항로 경제성 떨어져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길이 193km의 수에즈 운하는 1869년 개통됐다. 지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운하만 건설하면 엄청난 거리를 단축할 수 있기에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려는 노력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계속됐으며 현재의 수에즈 운하는 19세기 프랑스 주도하에 건설됐다. 1952년 이후 이집트 소유가 된 수에즈 운하는 물동량 증가 및 선박 대형화에 발맞춰 2015년 총공사비 82억 달러(약 9조2000억원)를 투입해 전체 구간 가운데 72km에 대한 확장 및 증심 공사를 진행해 양방향 통행을 가능하게 하는 등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번 사고로 취약점을 드러냈다.

수에즈 운하를 운항하는 선박은 월 1500여 척에 이르며 이 가운데 컨테이너 선박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컨테이너선의 대형화 추세에 따라 이곳을 이용하는 1만7000TEU(TEU는 20피트 표준 컨테이너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150척에 이르고 있다. 수에즈 운하의 통행 중단으로 세계 해양물류망이 입은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체됐던 선박들이 일거에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항구의 체선이 발생하고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컨테이너 수급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사고 직후 북극항로가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북동항로를 이용할 경우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운항시간이 10일 감축될 뿐만 아니라 점차 운항기간이 증가하고 있어 수에즈 운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북극항로는 환경 및 계절적 제약이 따를 뿐만 아니라 선박 규모도 제한되기 때문에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운하 건설이 다시 활발해졌다. 시나이반도의 동쪽에 위치한 아카바만을 통해 지중해로 연결되는 노선과 카이로-룩소르를 지나는 노선이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 기업들에 의해 검토되고 있지만 비용 및 완공까지의 시간 등을 고려하면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만한 현실적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이번 사고는 운하 문제뿐만 아니라 선박 대형화로 인해 해운업이 직면하고 있는 리스크를 드러냈다. 사고 당사자인 에버기븐호는 길이 400m의 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해운업체들은 물동량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컨테이너선 대형화에 주력해 왔다. 이에 따라 간선 항로를 운항하는 컨테이너선 크기는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커졌다. 단위당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한 대형화 추세에 따라 과거 상상하기 힘들었던 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VLCS)이 속속 취항하고 있다. 실제로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기존 1만5000TEU급 선박에 비해 13%의 연료비 절감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선박은 대형화됐지만 이에 부합하는 기술적·물리적 인프라 구축과 확충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 해운산업의 현실이다. 선박의 대형화에 따라 하역량이 증가하고, 이는 선박 접안시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원활한 입출항을 위한 수심 확대, 증가하는 컨테이너를 취급할 수 있는 장치 공간 추가 확보, 안벽하역장비 증설 등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투자는 선박 크기의 확대에 비해 늦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기항하는 항만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주요 항만 간의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선박의 대형화는 화재·충돌·좌초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수습·구조하는 데 더 큰 어려움으로 작용함을 이번 수에즈 운하 사건은 단적으로 보여줬다. 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자체 하역설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고로 인해 배가 조금만 기울어도 적재 화물을 하역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고 수습이 매우 어렵다. 만약 이번 수에즈 운하 사고에서 적재한 컨테이너를 하역하기로 결정했다면 수개월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이유다.

대형선박 사고 나면 빠른 수습 힘들어

대형선박의 등장과 확산에 따라 선박사고 수습을 담당하는 국제구조협회(ISU)·해상보험연맹(IUMI) 등은 구조장비 현실화를 위한 투자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무시돼 왔다. 현재 해난구조장비는 6000TEU급까지는 처리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2021년 현재 세계적으로 5000TEU급 이상 선박이 건조 중인 것을 포함해 1700여 척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할 때 현재의 해상운송 환경은 대형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위험성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설비 확충 투자는 외면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국내의 경우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주요 항만이라 할 수 있는 부산항, 여수·광양항, 울산항, 인천항 및 평택·당진항 등 5대 항만에서 대규모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국가 위기사태로 확대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수습체계는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주요 항만 이외에 우리나라 주변 공해상에서 대규모 선박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원에 나설 수 있는 장비나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항만이나 영해 주변에서 발생한 해난사고의 경우 대부분 일본의 닛폰(日本) 샐비지나 후카다(深田) 샐비지가 담당해 온 것이 현실이다. 해양수산부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해양구조·구난공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세계 해운업계는 대형화의 길을 걷고 있으나 그만큼 리스크도 커지고 있음을 수에즈 운하 사고는 보여줬다. 구난·구조의 경우 개별 기업의 투자로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지만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업 재건을 위해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대표되는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항만 및 구난 시스템 등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과만큼의 리스크 대비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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