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인민일보, 대놓고 "한국전쟁은 美침략"..'北남침' 쏙 뺐다

신경진 2021. 4. 1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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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자청 연구단체 보고서 전면에 게재
북 남침 언급 않고 한국 피해도 미국 탓
한국 정부 무대응이 왜곡 굳히기 초래
"미·중 경쟁에 한국전쟁 역사 왜곡 악용 항의해야"
″한국전쟁은 미국이 시작한 침략전쟁″이라고 주장한 보고서를 게재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10일자 7면 지면. [인민일보 캡처]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방송(CC-TV),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한국전쟁을 미국이 발동한 침략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전쟁을 중국이 북한을 도와 미국에 맞섰다는 ‘항미원조’ 전쟁 주장보다 더 나아간 왜곡이다. 지난 2017년 북한의 남침을 인정했던 입장의 번복이다. 1992년 한국전쟁 개입에 대한 중국 측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한·중 수교가 이뤄진 데 이어 최근 중국의 한국전쟁 왜곡이 거듭되는 데에도 항의하지 않은 정부의 무른 태도가 왜곡의 악순환에 이어 중국의 '왜곡 굳히기'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일 중국의 비정부기구(NGO)를 자처하는 ‘중국인권연구회’는 “미국의 대외침략 전쟁이 심각한 인도주의 재난을 초래했다”는 7500여자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즉시 중국 국무원(정부)이 운영하는 관영 신화통신이 전문을 타전했다. 이날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메인 뉴스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 보도했고,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0일자 7면에 전문을 게재했다.

지난 9일 중국중앙방송(CC-TV) 메인뉴스인 신원롄보 아나운서가 ″미국의 침략전쟁이 인도주의 재난을 일으켰다″는 보고서를 보도하고 있다. [CC-TV 캡처]

“2차 대전 후 미국이 발동한 주요 침략 전쟁”을 다룬 보고서 1장은 ‘조선(한국) 전쟁’으로 시작된다. 보고서는 “20세기 50년대 초 발생한 조선전쟁은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몹시 피가 튀겼다”라며 “전쟁으로 평민 300여만 명이 숨졌고, 난민 300여만 명이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한국 측 손실은 412억 3000만 원으로 공식 환율로 69억 달러에 해당한다. 전쟁 기간 한국은 약 주택 60여만 채, 철로 46.9%, 도로 1656개, 교량 1453개가 파손됐다”고 적었다. 챕터 제목에 “미국이 발동한 침략 전쟁”이라고 적었을 뿐 본문에는 북한의 남침, 중국군의 개입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의 피해를 북·중이 아닌 미국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도적 서술이다. 보고서는 “한국 통일부에 등록된 한국인 이산가족은 13만 명, 그 가운데 7만5000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적었다. 이산가족의 발생과 상봉 방해 세력을 미국으로 암시한 선전 기법이다.
중국인권연구회는 서문에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2001년까지 세계상 153개 지역에서 248차례 무장 충돌이 발생했으며,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201차례로 81%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중국이 미제(美帝, 미국 제국주의)를 소환하는 대미 전략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며 “한국 전쟁의 역사를 왜곡해 미·중 대결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당국의 강력한 항의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천젠강(陳建剛) 중국 인권변호사는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하는 중국 당국이 중국어로 작성한 내부 선전용 문건”이라며 “동원에 능숙한 중국 당국이 지금은 아니지만 가두시위 준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말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중국인권연구회’는 사실상의 중국 공산당 산하 기구다. 공식 홈페이지인 ‘중국인권망’은 중국 인권 분야에서 전국적인 최대 학술단체로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의 특별 자문 자격을 가진 비정부기구로 소개했다. 회장은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시짱(西藏·티베트) 자치구 정부 주석을 역임했던 샹바핑춰(向巴平措·74) 전 전인대 부위원장이 맡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중국 인민일보 해외판이 운영하는 SNS 매체 협객도는 “6·25는 북한이 제멋대로 일으킨 망동”이라고 인정했다. [협객도 캡처]

하지만 중국은 이미 “6·25는 북한이 제멋대로 일으킨 망동”이라며 북한의 남침을 인정했다. 2017년 5월 4일 인민일보 해외판이 운영하는 협객도(俠客島)라는 웨이신(微信·모바일 메신저) 매체를 통해서다. 당시 협객도는 “만일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하려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쟁이 폭발했겠나? 중국이 휘말려 수십만 생명을 대가로 치렀다”며 “북한이 당시 ‘제멋대로’ 저지른 망동의 본전 대부분을 중국이 치르고 있다”고 서술했다. 중국의 이런 입장은 2018년 3월 이후 다섯 차례 김정은·시진핑(習近平) 정상회담과 미·중 패권 경쟁을 거치며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논리로 되돌아갔다.
전환점은 지난해 10월 23일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대회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1950년 6월 25일 조선(한국) 내전이 폭발했다. 미국 정부는 세계 전략과 냉전 사유에서 출발해 조선 내전에 무장간섭을 결정하고 제7함대를 파견해 대만해협에 침입했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한국전 개입을 미화한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붐을 이뤘다. 한국전 당시 금강산 전투를 다룬 영화 ‘금강천(金剛川)’이 지난해 10월 개봉했다. 올 초에는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跨過鴨綠江)’를 방영해 한국전 개입을 미화하는 ‘6·25 공정’을 계속했지만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항의하지 않고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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